돈도 안 주는데 애를 왜 낳아
#미국의 출산율 #지원도 없는데 #많이도 낳아
미국 와서 처음 든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아기를 많이 낳지?'
우리나라에서 서른 중반 넘어가는 내 친구들은 이제 결혼 한 친구 반, 안 한 친구 반. 그나마 결혼한 친구들도 아기를 가진 친구보다는 안 가진 친구들이 더 많았다. 태교 교실이나 문화센터에서 만난 아기 친구 엄마들도 하나로 끝인 엄마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거의 연년생으로 둘을 낳은 나는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런데 나도 아기 안 낳는 친구들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계획했으면 못했을 일이다. 건강 때문에 또는 눈치가 보여서 이런저런 이유로 경단녀가 된 엄마들은 외벌이에 기대야 했다. 하지만 신랑은 툭하면 야근에, 회식이다. 기업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들 하지... 하지만 피부로 느끼기에 아직 멀었다. 또 내 일을 지키기 위해 맞벌이를 선택한 친구들은 하나를 데리고 '워킹맘'으로 살아가기에도 충분히 삶이 고단했다. 환경은 말해 무엇하랴. 코로나 아니어도 밖은 나가기 어려웠다. 미세 먼지에, 매연에, 흡연자들까지. 아이 둘을 데리고 꾸역꾸역 나들이를 나가도 갈 수 있는 곳은 대형 쇼핑몰밖에 없었다. 거기에 실질적인 집 문제, 생활비 문제, 시댁 눈치, 직장 눈치... 내가 내 삶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고려해야 하는 바깥 요소들이 참 많았다. 또 괜찮은 엄마로서 뒤쳐지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시키는 것이 다 고만고만하다 보니 '요새 애들 다 하는 어떤 것'을 나만 안 하는 것에는 참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기 전과 참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미혼인 친구가 '결혼해서 좋은지' 물으면 좋다고 답한다. 아이가 없는 친구가 '육아를 해서 좋은지' 물으면 행복하다고 답한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지' 물으면 그냥 웃었다. 정말 행복한데 삶이 참 많이 피곤했다.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정부에서 수십조 원의 지원을 쏟아붓고 있다. 우선 임신을 하면 국민행복카드에 60만 원 금액이 바우처로 들어와 산부인과에서 쓸 수 있다. 아기를 낳으면 다시 출산 장려금과 각종 선물 세트가 지급된다. 또 산후조리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이 바우처 형태로 지원된다. 동시에 아이들을 집에서 데리고 있을 경우 가정양육 수당, 그리고 아동 수당까지 차곡차곡 통장으로 입금된다. 대기가 길어서 그렇지 양육 수당으로 어린이집은 거의 무상으로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소소하지만 전기료도 할인해주고, 둘째부터는 난방비도 지원해준다. 요새는 둘만 낳아도 다둥이 카드를 발급해주어 대중교통 할인, 공공기관 주차료까지 할인된다. 뭐 그래 봤자 몇 천원도 안되지만 기분은 좋다. 심지어 몇 군데 레스토랑도 할인이 된다고 한다. 필수 예방 접종과 검진 역시 무료였다. 저출산이 심각하긴 하구나 몸소 느낄 만큼 없던 혜택과 지원이 더 늘어났다. 심지어 첫째 낳을 때와 둘째 낳을 때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는 매 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 곳에 와서 보니 내 나이에 둘은 많은 편도 아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떤 종교 집단이나 이민자들의 경우에 아이들 수가 더 많은 것 같아 보였다. 산책을 하다 마주치는 가족들을 보면 아이들이 셋, 넷인 집은 종종 보였고, 다섯 이상 되는 집들은 맏이가 주로 막둥이들을 거뜬히 안고 다녀서 누가 엄마 아빠인지 헷갈려 보이기 일쑤였다. 한국 촌놈인 나는 그 광경이 그저 신기했다. 자주 못 본 풍경에 눈이 커졌다. 다 민족 국가라 국적도 다양했고 언어도 다양했고 피부색도 다양했고, 여러 피부색이 섞인 경우도 흔했다. 두둥... 그런데 반전은 정부에서 주는 출산 지원금? 보육료 지원? 그런 건 정말 1달러도 없다는 것이다. 개인 보험과 병원 그리고 건강 상태에 따라 출산 비용은 천차만별이지만, 이 곳에서 출산 의료비로 만 불(1000만 원) 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어린이집은 최소 월 200만 원이 넘는다. 출산 휴가? 길어야 6주 정도 준다. 아기 낳고 시원한 물로 샤워하고 자기가 운전해서 집에 오는 미국 엄마들은 몸조리의 개념도 없고, 직장에서도 육아를 위해 따로 유급 휴가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애를 왜 이렇게 많이 나아? 어리둥절하다.
와서 여러 아기 엄마들과 만나다 보니 이 곳에서는 아이를 갖는 것이 전적으로 '부부의 선택'임이 느껴진다. 아니 적고 보니 이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슬프게도 한국에서 당연하지만은 않았던 것들이었다.
우선, 외벌이로 생활이 좀 더 여유롭게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집 값이다. 물론 비싼 집도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저렴한 집의 옵션이 서울보다 많다. 생활수준을 조금 낮추면 남편 혼자 벌어서도 생활이 충분히 가능했다. 외식비는 비싸지만 식재료비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조금 덜 화려하게 살면 외벌이로 사는 것이 서울보다 더 여유 있게 가능했다. 우리는 결혼하고 시댁 어른들과 함께 살았다. 물론 시부모님께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권하셨기 때문에 함께 시작했는데, 만약에 서울에서 집을 얻는 것이 여기만큼 쉬웠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 같다. 물론 이 곳에서는 전적으로 내가 밥을 하고 아이들도 돌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만 사는 집에서 우리가 선택해서 육아를 하고 외식을 줄이는 것은 차라리 즐거운 노동이었다.
둘째, 사회 문화 자체가 몹시 '가족 중심'이었다. 회사는 당연히 칼퇴가 가능했다. 가족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갑자기 휴가를 쓰는 것에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신랑은 새벽같이 출근해서 오후 4시면 퇴근한다. 더 일찍 퇴근하고 싶으면 더 일찍 출근하면 되고, 그 마저도 하고 싶지 않으면 가끔은 집에서 일을 할 수도 있는 좋은 조건이다. 물론 근무 조건은 직장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야근에 비하면 여기는 근무 시간이 훨씬 짧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육아를 남편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저녁 식사 후 자기 전까지의 시간은 아빠와 함께 놀이하는 시간으로 아이들도 인식하게 되었다. 아빠가 집으로 출근하면, 엄마는 육아에서 퇴근할 수 있다. 나는 정신적으로 훨씬 더 여유로워졌다. 또 한국은 놀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성인 중심의 실내 도시 문화였다. 영화관, 카페, 식당, 노래방, 게임방 그리고 술집들. 밤이 화려한 '재미있는 지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노는 문화 자체가 캠핑, 산책, 교외 나들이, 공원 바비큐,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이다. 유흥 문화를 즐기기엔 술 집이 너무 멀고 택시는 귀하다. 대리 운전 같은 좋은 시스템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술도 집에서 마시는 것이 편해진다. 가히 '지루한 천국'이라 할 만하다. 대신 아이들 데리고 자연 속에서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 집에서 가족들과 노는 것이 이렇게 재밌는 일인 줄 몰랐다.
셋째, 워킹맘에게 관대하고, 전업맘을 존중한다. 나는 임신했을 때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양가 어른들께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멀쩡한 직장 그렇게 열심히 다녔으면서 경력이 아깝지 않은지' 아무도 묻지 않으셨다. 아기가 생기는 동시에 나는 내가 아니라 이미 '아기 캐리어'로서 전환되어 있었고 그 시선의 무게는 꽤나 무거웠다. 또 두 돌이 다 된 첫 째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면서 얼마나 어른들께 쓴소리를 들어야 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곳은 워킹맘이 대부분이다 보니 어린 연령의 아이들이 전문 시설에 맡겨지는 것에 대한 시선이 훨씬 자유로웠다. 그리고 직장에서 역시 내가 내 근무 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아파서'라는 이유로 조기 퇴근을 하거나 갑작스럽게 휴가를 쓰는 것이 얼마나 눈치가 보이고 죄인이 되는 일인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아프던 아이가 아프던, 사람이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진심으로 건강을 걱정해주었다. 아니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보다 훨씬 친절하게 건강 상태를 물어봐 주었다. 나는 일의 성과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지, 회사에서 시간을 지키는 것으로 평가받지 않았다. 아플 때는 쉬고 안 아플 때 열심히 일하면 된다. 일 한만큼 돈을 준다. 합리적이다.
그리고 전업 주부로 산다고 해서 쉽게 '경단녀'로 부르지 않는다. '맘충' 같은 혐오를 품은 단어도 쓰지 않는다. 아무도 '능력 없어 집에서 애 보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데이케어 비용 자체가 너무 비싸다 보니 아이를 본다는 것 자체가 훨씬 더 많은 경제적 비용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기 둘만 풀타임으로 데리고 있어도 월 500만 원 그 이상의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경력을 내려놓고 아이를 돌본다는 것 자체를 존중받아 마땅한 일로 생각하고, 그 이상의 경제적 가치 또한 인정하는 것이다.
넷째, 비교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늘 해왔듯이 경쟁적으로 삶의 시기를 맞춘다. 줄 서기에 익숙하다 보니 남과 다른 것에 대해 불안함을 크게 느낀다. 자연스럽게 졸업 시기도 취업 시기도 이어서 결혼 시기도 임신 시기도 내 집 마련도 사회적으로 정해진 '적절한 시기'에 수행하지 못하면 남들보다 뒤처진 듯한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아무리 눈치를 안 봐도 여기저기서 당당하게 눈치를 준다. 자녀를 가지고 가지지 않고의 문제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없고의 문제도, 아니 심지어 돈이 있는데 그걸 어디에 쓰는지 조차도 시선에서 아주 자유롭기가 어렵다.
물론 미국도 학교에서의 학업 경쟁이나, 학군과 직결되는 집 값 경쟁은 치열하다. 하지만 온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섞여 살아가다 보니 내가 어느 대학을 졸업해서 어떤 스펙의 신랑을 만나 어느 지역의 화장실이 몇 개인 집에 사는지 들어도 좀 감이 안 온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나랑 너무 다르니까 들어도 모르겠고, 그래서 재미도 없고 비교도 잘 안된다. 한국에선 남 얘기만큼 재밌는 것이 없지 않은가. 비교하는 것을 멈추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안 하는 것이 어렵다. 반대로 여기서는 비교를 하려고 해도 비교가 어렵다. 오대양 육대주 당신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문화권에서 와서 어떤 삶의 형태를 중시하는지 나와는 너무 달라서 좀 비교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자유롭다. 학군을 포기하고 시골에 넓은 집을 택하든, 자녀를 포기하고 여행을 택하든, 심지어 남자를 택하든 여자를 택하든 그냥 '아 나랑 다르구나.'하고 만다. 딩크족으로 사는 미국인 친구 부부가 한국에 있는 딩크족 친구 부부보다 가족과 사회에서 오는 여러 시선에서 더 자유로운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물론 미국도 점점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출산율을 높여주는 이민자들이 아니면 이 나라도 출산율 저하 문제에서 아주 자유롭지만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정부에서 돈을 좀 더 주고, 패밀리 레스토랑 외식 할인을 해주고, 어린이집을 늘이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린 모아 놓은 돈도 없지만, 이 나라에 와서 아기가 더 낳고 싶어 졌다. 이 곳에서는 신랑이 집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원하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넓은 잔디밭과 맑은 공기가 있다. 아무도 비교하지 않고, 더 낳으라 덜 낳으라 눈치 주지 않는다. 마음이 참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