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May 20. 2020

인생의 피로함을 줄이는 법

#미니멀라이프 #남말고 나를보기 #불안해하지 않기

15년 전, 처음 미국에서 스타벅스를 갔을 때 메뉴를 보고 좀 놀랐다 메뉴판이 단출해서. 주문하는 사촌 언니를 보고 더 놀랐다. '더블샷에 바닐라 시럽 몇 번 넣고 우유 대신 두유로, 얼음 가득 채우고 휘핑크림을 올리고 위에 무슨 가루를 어떻게 뿌려서 어쩌고 저쩌고...' 집중해서 듣다가 놓쳤다. 자기가 마시고 싶은 걸 저렇게 정확히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때는 영어도 짧았지만 내가 뭘 마시고 싶은지도 잘 몰라서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주야장천 맛도 모르고 마셨다. 한국의 스타벅스에는 메뉴판에 친절하게 메뉴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고, 그중에도 잘 팔리는 것에는 보기 좋게 Best, 시즌 메뉴가 표시되어 있었다. 새로운 메뉴에는 New 그리고 그 옆에는 음료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메뉴 이름을 말하면 알아서 주시던데... 메뉴에 그런 적당히 인기 있고 화려한 것이 없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저 다들 많이 시키는 음료가 나에게도 맛있으려니 했다. 이제는 한국도 젊은이들이 자기만의 '커스텀 메뉴'를 갖고 정확하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문한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주문도 나에게 맞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20대의 여성'을 검색하면 지갑, 향수, 가방 같은 스타일 관련 용어들이 자동 완성된다. 또 인터넷 익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장래 희망'과 '취미' 또는 '자녀 이름'까지 어떤 것이 좋을지 묻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니 세상 누구보다 가장 내가 잘 알아야 할 것들인데 의아하면서도 이해가 간다. 나도 검색해본 적 있으니까. 왜냐하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우선 남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 하면 중간은 갈 것 같은 위안이 된다. 미국은 마트에 가면 '채식주의자를 위한 것'또는 '이 지역 특산품' 같이 특별한 식성 또는 취향을 가진 고객을 위해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긴 해도 '가장 잘 팔리는 제품'에 번쩍번쩍 한국처럼 별이 많이 붙어 있지는 않는다. 한국은 어느 코너이든 늘 가장 잘 팔리는 것이 보기 좋게 표시가 되어 있고 그것을 고르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까지 선택 수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공립 사립학교가 모두 교육부 주관 하에 동일한 '교육 과정'을 따른다. 같은 반 친구들은 하루 종일 같은 교실에 앉아 똑같은 시간표를 갖고 산다. 초중고 총 12년, 중요한 가치관과 의사결정 방법이 정해지는 중요한 시기를 거의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고만고만하게 교육받고 비슷비슷하게 살아간다. '창의성'을 강조하면서도 모두 '일괄적인 창의성 교육'을 실시한다. 그렇게 줄 서기에 익숙하다 보니 남과 다른 것에 대해 불안함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는 것, 남들 안 하는데 나만 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따가운 시선을 견디는 힘이 필요하다. 나를 설득하는 것에 더해 남도 설득해야 하는 피로함이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비교했고, 적당히 남들과 비슷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도 동일 선상에서 적용된다.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옷, 신발, 색깔에 예민하다. 롱 패딩이 유행했던 작년 겨울, 코엑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과장 없이 열에 아홉은 롱 패딩을 입고 있어서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신랑은 참 그런 쪽으로 관심도 없고, 센스도 없는데 한국살이 5년 만에 많이 세련되어서 미국 돌아와서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옷을 잘 입는다.' '정장이 너무 멋지다.' '어떻게 그렇게 센스가 있냐.'라는 칭찬을 평생 처음 듣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옷도 잘 입는다. 여기서는 좀 놀랄 만큼 남의눈을 신경을 안 쓰는데 그래서 참 신기했다. 신발과 옷은 패션이기보다는 그저 그 기능에 매우 충실하게 쓰이는 듯해 보였다. 아니 자기의 취향이 확실히 드러났다. 여기서도 멋쟁이들은 많겠지만 유행에 따르는 멋쟁이들이 아니었다. 어떤 옷을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날 만큼 개별의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사람을 만나면 아래 위로 스캔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보던 모습과 이 곳에서 보는 모습이 너무 달라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짓을 멈췄다. 나도 적당히 내가 좋아하는 옷만 골라 입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도 안 봐준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고 해야 할까. 이미 내 옷장에는 비슷한 종류의 옷이 넘치게 있었다. 계절별로 옷이 두 벌 정도만 있어도 되겠다 싶었다. 물론 아직 버릴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드디어 옷 사기를 멈췄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내실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먹는 것, 읽는 것,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습관, 타인을 대하는 태도, 그때의 나의 감정 등 더 본질적인 부분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마라톤을 하듯이 남들과 다 함께 숨을 헐떡이며 결승선을 향해 뛰다가, 이 곳에 와서 달리기를 멈추었다. 주변에서 다 같은 방향으로 뛰니 당연히 함께 뛰며 위안을 얻었는데, 여기서는 함께 뛰는 사람이 잘 없어서 지금 맞게 가고 있는지 헷갈렸다. 그래서 속도를 줄이고 걷기 시작했다. 이제야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 말고, 나에게 딱 맞는 선택하기 위해서는 나를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선택해서 불안해할 이유는 없었다. 대신 내가 어떤 이야기를 가진 사람인지 스스로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변화라 생각한다. 아직도 나는 이 곳에서 이런저런 관점에서 비교하기를 습관적으로 하는 나를 발견하고 바로 멈춘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 말고, 이제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다. 어제보다 한 발자국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의 불필요한 피로함을 줄이는 법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만장자처럼 살기로 결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