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Jun 19. 2020

백만장자처럼 살기로 결심하다.

#딱 비굴하지 않아도 될 만큼 #딱 자만하지 않을 만큼

"엄마, 다오 손에 피나요!"


아주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순식간에 사고가 터진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 나가며 세상을 배운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하기 전에 손에서 뺐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아이의 능력으로 다룰 수 없는 위험한 것들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불이나 칼 또는 약품 같은 것들 말이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부서졌을 경우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보게 될 폰, 노트북 같은 고가의 물건들.


이제 막 돌을 지난 둘째 다오는 오늘도 분주하다. 화장실의 서랍장과 안 방의 옷장, 부엌의 서랍까지. 까치발을 하면 겨우 열 수 있는 그 장들을 다 열어 자기가 아직 탐구하지 못한 도구들을 찾아 열심히 모험한다. 옷장을 뒤져 자기의 옷 가지와 양말들을 뒤집어엎어 놓는 것까지는 그냥 두고 본다. 하다 흥미를 잃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옷 장을 혼자 닫다가 손이 끼지 않도록만 살펴본다. 화장실 서랍장에서는 아빠의 면도기나, 엄마의 화장품 등 좀 더 새로운 도구들이 있어 더 재밌어하고 동시에 저지해야 할 것들이 많다. 역시 곁에서 지켜본다. 부엌으로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긴장이 고조된다. 엄마가 못 만지게 하는 칼, 포크, 감자채 칼, 가위 등이 잔뜩 있는 그곳을 늘 궁금해한다. 그래서 미리 위험한 것들을 치워 두었다. 하지만 엄마 눈을 피해 재빨리 들고나간 것이 있었으니 바로 '곰돌이 다지기'. 야채를 다지는 기구인데, 누르면 칼날이 나와 야채를 잘게 다져주는 유용한 도구이다. 잠시 누나에게 한 눈 팔고 있는 사이, 그 재밌게 생긴 도구를 가져가 이리저리 굴려보고 눌러본다. 그러다 아뿔싸! 첫째의 비명에 다오에게 다가갔을 때는 이미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을 때였다. 으악!! 소리를 지른다. 아기는 그 소리에 놀라 울고 만다. 얼른 지혈을 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인다. 휴 깊은 상처가 아니라 천만다행이지만 다오는 손을 베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눈치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기가 왜 우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


우리 모습도 비슷하리라.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아주 잘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게 쓰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또 그런 것들이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매력적이다. 예를 들면 부나 명예 또는 권력 같은 것들이겠지. 우리가 그것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이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몹시 갖고 싶다. 누가 갖다 준다면, 저런 도구가 내게 주어지기만 한다면 몹시 바르게 쓸 자신도 있다. 특히 돈이면 다 되는 세상같이 느껴지는 자본주의의 세상에서는 돈만 여유롭게 있다면 모든 세상이 무척 아름답게 보일 것만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돈을 원하는 만큼 손에 넣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 엄마가 맨날 나한테 하던 말처럼 딱 "비굴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지만 자만하지 않을 만큼 주셨다." 이것보다 우리 경제 상태를 잘 표현한 말도 없지 싶다. 어디 가서 구걸해야 하거나, 도덕적 신념을 버리고 빵을 훔쳐와야 할 만큼 굶주린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또 어디 가서 우리 잘 산다고 목에 힘을 줄 수 있을 만큼 무엇을 과하게 갖고 있지도 않다.


하루는 돈이 정말 많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적어보고선 좀 놀랐다. '가족 여행 자주 다니기, 물건이나 음식 고를 때 가격 보지 않고 필요한 것 사기, 주변에 더 많이 나눠 주기, 드림카 사기' 등 우리가 지금 당장 돈이 없어 할 수 없는 것은 별로 없었다. 지금 백만장자가 아니라도 당연히 나눌 수 있고, 당연히 가격을 보지 않고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여행을 다니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돈 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자유와 마음의 여유'였던 것 같다. 그리고 체력과 의지의 문제인 것들이 더 많았다. 돈을 많이 가지면 삶이 좀 더 여유로워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어차피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 의지나 여유는 돈이 있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니까. 그 유명한 소설 안네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 느낄 수는 있겠지만, 돈이 많다고 행복이 보장될 수는 없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그저 하루를 충실하게 살면서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의지와 여유를 선택한다. 더 나누고 더 여유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내 통장 잔고가 엘론 머스크의 통장 잔고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당장 잔고를 늘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백만장자처럼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하루는 길지만 일주일은 짧다. 일 년은 금방이다. 그러다 보면 인생도 눈 깜짝할 사이려니. 채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에 무엇을 그리 원할 것도 그리 원하지 않을 것도 생각해보면 별로 없다. 그리고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얻는다고 한들, 우리 생은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주어지는 어려움 속에 나를 더 강하게 단련시키면서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게 매력적인 것들이 손에 쥐어지는 날도 있고, 가끔은 잘 못 다뤄 그것에 다치는 날도 있으리라.


기도를 하다 보면 저절로 느껴진다. 아 지금은 때가 아니구나. 내가 준비가 되면 알아서 주시리라. 그러니까 조급해할 필요 없구나.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은 필요한 만큼 알아서 주신다. 그래서 더 많이 쌓아두고 더 많이 소비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갖고 있는 주식이 더 오를지 지금 팔아야 할지 조마조마해할 필요가 없다. 그냥 지금 오늘 하루만 살자. 지금 잘 곳이 있고,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생각해보면 필요한 것은 이미 다 갖고 있다. 아직은 드림카만 보면 눈이 저절로 돌아가는 나는 아직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지만,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안 사는 것뿐이다. 나는 백만장자인 걸.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그만 폰을 내려놓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