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잘 안 사준다. 처음에는 집이 워낙 원룸에 가까운 평수라 소위 '국민 문짝'으로 불리는 장난감을 들여놓으면 진짜 방 문짝이 안 닫힐 지경이었기에 부피가 큰 장난감들은 들였다가도 답답해서 얼른 비워내야 했다. 만 나이로 3세, 1세 한참 놀잇감이 필요한 두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이것저것 사주고 싶은 것이 많다. 물론 장난감이 있으면 잠시나마 아이들이 혼자 놀아주니 감사하지만, 그것도 사실 정말 잠깐 뿐이다. 장난감 중에도 특히 정답이 정해져 있는 장난감이나, 인위적인 불빛, 소리가 나는 것을 안 사주려 한다. 물론 아이들은 엄청 좋아하지만! 안 주면 다행히 금방 잊어버린다. 안 사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고가의 예쁜 장난감들도 몇 번 가지고 놀고 나면 지겨워하니까. 그나마 여기저기서 얻은 것들도 다 숨겨 놓고 한 번씩 로테이션시켜 꺼내 준다. 그럼 새로워서 더 잘 갖고 논다. 사실 장난감이라는 표현도 '놀잇감'으로 고쳐져야 하는 것이 맞다. 물론 모두에게 익숙한 표현은 장난감이지만.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성장하는데, 그 놀이를 주도하는 것이 놀잇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주도할 수 있는 놀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답이 정해져 있는 장난감은 거부감이 든다. 숫자, 문자를 학습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 그때 적절한 학습 도구를 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 3세 이전에 정답을 고를 것을 유도하는 놀잇감을 쥐어주는 것은 글쎄, 몸에 안 맞는 사이즈의 옷을 입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소리와 불빛 나는 장난감은 내가 머리가 아파서 치우기 시작했다. 내 기준에 너무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무엇을 들려주고 싶으면 차라리 동요를 불러주고, 악기를 연주해주고 조금 구시대적이지만 동요나 클래식 CD를 틀어준다. 그리고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산다. 우리 집은 엥겔지수가 높다. 하지만 잘 먹고 건강하고 행복하면 그게 더 남는 장사라 믿고 싶다.
그래서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장난감 없이 살아가는 다섯 가지 방법'!
첫째, 집 안의 온갖 물건들이 다 놀잇감이 된다. 그냥 집에서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준다. 그러면 놀잇감을 따로 사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부엌, 화장실, 안방, 옷장, 신발장 다 돌아가며 열심히 탐색한다. 일단 최애 장소는 아무래도 부엌. 엄마가 부엌에 있는 시간에는 같이 부엌에 있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다. 부엌 살림살이들이 모두 놀잇감이 된다. 혹시 깨지거나 베일 위험이 있는 것들만 빼고 다 내어준다. 대신 다른 흥미로운 장소로 넘어갈 때는 반드시 정리하도록 한다. 정리해서 넣기 전에는 다음 살림살이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러면 정리하는 법도 배운다. 다음은 화장대로 간다. 역시나 다칠 위험이 있거나 삼킬 위험이 있는 색조 화장품이나 의약품을 제외하고 다 내어 준다.(아, 혹시 고가의 립스틱이나 쉐도우는 필수로 치운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러면 아기 로션을 꺼내 찍어 발라 보고, 냄새 맡아보고 동생도 칠해주고 열심히 엄마 놀이를 한다. 화장 도구들이 미술 도구들 같이 생겼으니 더 재밌어한다. 볼터치 붓으로 선반의 먼지를 털 때는 인상이 살짝 구겨지지만, 참는다. 위험하지 않고 고가의 물건이 아니라면 그냥 지켜본다. 지겨워질 즈음 함께 정리한다. 그 다음은 옷장을 뒤집는다. 양말을 손에 끼웠다가 아빠 팬티를 머리에 쓰고 난리도 아니다. 사진을 몇 장 찍는다. 각자 결혼할 사람 생기면 보여줘야지, 요 귀여운 꼬마 악당들!
둘째, 유일하게 다 꺼내놓고 보는 건 책이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께서 유일하게 제한을 두지 않고 열어주셨던 곳이 서점과 집의 서재였다. 오래 본다고 뭐라 하지 않으셨고, 어려운 것을 읽는다고 뭐라 하지도 않으셨다. 읽어 달라하면 읽어 주셨고, 글자를 알고 나서는 내가 읽었다. 그래서 나도 책은 원 없이 읽게 놔둔다. 열심히 이고 지고 온 한국 책을 열심히 읽어준다. 다만 강요는 하지 않는다. 읽어 달라고 가져오는 책만 읽어줘도 목이 쉰다. 덕분에 첫째는 제법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 듣기를 즐기며,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이제 여러 번 읽은 책은 줄줄 외우기는 모습을 보니 목이 쉬도록 책을 읽어준 보람을 느낀다. 사실 이제 1살인 둘째는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탐색한다. 다 꺼내고 기어 올라가고, 무거운 책을 들어보고, 성경 지퍼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반복한다. 종종 좋아하는 그림을 찢어 먹지만 이것 역시 성경책과 어른 책만 아니면 적당히 안된다 일러주고, 열심히 투명 테이프로 붙여준다. 웬만하면 종이책 말고 하드북(찢어지지 않는 두꺼운 책)으로만 주고 싶지만, 엄마가 잘 안 사주는 비싼 사운드북 말고 그냥 하드북은 몇 권 없어서 이미 흥미를 잃었다.
셋째, 재활용 쓰레기는 몽땅 미술재료가 된다. 무슨 쓰레기도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난 제로 웨이스트 운동가는 아니지만 한 주만 해도 장 본 후 쌓이는 종이 박스, 비닐봉지, 플라스틱 통, 유리병들을 보고 있노라면 죄책감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서 최대한 그걸로 뭘 해보려 한다. 오늘은 탄산수 박스가 애매하게 구멍이 잘 나있길래 같이 포장해서 우체통을 만들어 보았다. 매일 아빠 엄마에게 편지를 써놓으면 우리가 퇴근길에 확인하고 편지를 수거 후에 답장을 다시 넣어 놓는다. 비록 아직 재택근무 중이라 옆 방으로 출근하는 아빠지만. 부모님께서 어릴 때 해주셨던 놀이인데 기억나서 함께 해봤다. 물론 아직 아가는 어려서 한글은 못 쓰고 약간 바이러스 같이 생긴 '가족 그림'을 그려서 꼬깃꼬깃 넣어놓는다. 할 말이 있으면 엄마가 대신 받아 적어주기도 한다. 행복한 엄가다(엄마 노가다)이다. 그리고 쿼런틴으로 몇 달째 친구를 못 만나니.. 이렇게 집에서 온 가족이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우리 가족은 넷인데... 동생은 잘 안 그려준다. 현실 부정일까? 내 꿈에 난 아직 늘 결혼 전인 것과 비슷한 의식의 흐름일까.
넷째, 정답이 없는 열린 놀잇감을 제공한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엄마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솔직히 자주는 못해준다. 하지만 보너스 같은 시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물놀이, 물감 놀이, 찰흙 놀이, 요리 놀이, 모래 놀이, 베란다 흙 놀이 등이다. 그나마 쉬운 것은 흰 전지와 여러가지 색연필, 크레용을 주는 것인데 그나마도 소리지르지 않고 끝내려면 큰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하다. 놀이 내내 함께 해줘야 하고 온 몸을 써야 하고, 계획이 필요하며 놀이 후에 거의 샤워를 시켜야 하니 이런 열린 놀잇감들은 꼭 큰 맘먹고, 엄마 체력이 빵빵할 때 그리고 가능하면 아빠와 함께일 때 하는 것이좋다.
다섯째, 밖으로 나간다.역시 우리 체력이 허락되고 날씨가 허락하는 한, 아이들을 데리고 최대한 자연 속으로 나간다. 다행히 한국에 비해 사람 없는 자연을 찾는 일이 훨씬 쉽다. 한적한 공원으로 계곡으로, 잔디밭으로, 산으로, 트레일로 뺑뺑이 돌린다. 흙을 만나면 흙을 주고, 모래를 만나면 모래를 주고, 물을 만나면 젖게 두고 (여름이니까! 그리고 여벌 옷 한 세트는 필수), 식물을 만나면 뜯어먹지 않는 이상 만지게 둔다. 다만 대 자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무서운 포이즌 아이비(독풀) 또는 각종 곤충들 -모기, 벌, 라임병을 옮긴 다는 무서운 틱(진드기)-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은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놀잇감이자 교육 자료가 되고, 놀이터가 된다. 대근육 발달에 좋고, 체력이 길러지고, 자연 자체의 색감을 배우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건강한 호흡을 배운다. 생명 존중과 자연 보호에 대한 개념은 덤이다. 흙 밟고 노는 아이들이 안 건강할 이유는 없으리라. 물론 다녀오면 아이들은 물론 우리도 더 잘 먹고 더 잘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