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너무 좋은데!
#자존감 #자신감 #자기애 #건강한 자기 회복
- 인아, 네가 좋아.
- 응, 나도! 나도 내가 너무 좋아.
나는 내가 좋다. 이렇게 글로 적어놓으니 뭔가 이상하고, 좀 변태스럽게 들리기도 하네. (밥 맛이라고? 밥은 맛있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이야 말로 정말 나를 나답게 하고, 삶을 더 생기 있게 살게 한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잘나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냥 어느 부분에서 좀 못난 나도 그냥,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것도 나니까. 언제부터 나는 나를 좋아하게 됐을까.
처음부터 본 투 비 잘난 맛에 살던 사람은 결단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고백건대 어린 시절 나는 지진아에 가까웠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느렸다. 하지만 하필 2월 말 생이었던 나는 지금은 없어져버린 '빠른 생일 입학 제도'에 따라 한 학년 위로 진학해야 했다. 실제로 어리기도 했고, 워낙 늦되기도 했었기에 나는 같은 학년의 어느 집단에 가든 가장 작았고, 가장 느렸고, 가장 뒤처졌다. 늘 우성 집단보다는 열성 집단에 가까운 능력치, 외모 덕분에 열등감 덩어리로 자라났다.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돌아보면 늘 작고 위축되어 있었다. 학교에 가면 혼자였다. 나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내가 하는 말을 친구들이 싫어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서 친구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 누군가 먼저 말 걸어주길 늘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다가온 친구들 앞에서도 작아져버렸다. 그래서 항상 외로웠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노는 것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못하는 것을 사람들이 아는 것이 두려웠다. 딱히 잘못하는 일은 없어 꾸중 들을 일도 거의 없었는데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 것 그것조차 부끄러웠다. 사회적 자존감이 낮았고, 자신감도 너무 없어서 마치 세상에 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동시에 아무 잘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작은 죄인이 되고 말았다.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에게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은 어린 나'가 울고 있었는데 내가 꿈꾸는 내 모습과 사람들 앞에 선 내 모습은 괴리가 커서 도저히 타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느낌을, 군중 속에 외로움을 조금은 이른 나이에 배워야만 했다.
그러다 사춘기를 맞으며 삐뚤어진 방법으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시작한다. 어디에서도 존재감이 없었던 내가 나쁜 쪽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받았을 때, 친구들에게 인정받는다 느끼자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과장된 위악적 행동과 말투를 구사했다. 써본 적 없었던 욕지거리를 배워 뱉어냈다. 귀에는 마이마이 이어폰을 꽂고 '크라잉 넛', '조pd' 같은 음반 테이프를 들으며 센 척하고 다녔다. 괜히 규율에 맞서 싸우느라 교복 치마를 줄이고, 두발 규제가 있었던 시기에 '귀 밑 3cm'가 넘는 두 가닥 양갈래 앞머리를 삔으로 뒤로 넘겨 고정시켜 몰래 길렀다. 우습게도 그렇게 더듬이 같이 생긴 것을 만들어내고는 거기에 내 정체성을 심었다. 소심한 반항이었다. 엄마를 졸라 착한 친구를 꼬셔 미용실에서 같이 귀도 뚫었다. 결국 며칠 만에 담임 선생님께 발각되어 귀걸이는 뺏기고 플라스틱 자로 목 뒤를 맞았지만. 그렇다고 누구를 괴롭힐 만큼 깡이 있었던 것은 또 아니어서 소심하게 규율에 저항하며, 내가 중2병에 걸렸음을 온 천하에 알리고 다녔다. 그 시니컬한 내 모습에 깊이 심취해있곤 했다. 엄청난 이불 킥 감 추억들이 많지만 또 시간 지나 생각해보니 그 허세 섞인 위악적인 내 모습 역시 내면의 한 부분이 되어 붙어 있다. 물론 지금은 어디 가서 괜히 욕을 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렇게 여리고 따스한 햇살도 거센 장마철 쏟아지는 폭우도 지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거울 속 평범한 아줌마가 된 내 모습엔 그 모든 지나온 과거의 내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릇을 조금씩 넓혀가고, 좀 더 세상을 이해하고. 잘 안되면 주저앉아 한참 울기도 하고, 또 일어나서 좀 더 깊어진 나를 발견하면 뿌듯하고. 무한히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내가 좋아졌다. 여전히 나는 김태희처럼 예쁘지도, 킴 카다시안처럼 몸매가 좋지도 않다. 젊은 재벌도 아니거니와 여전히 자아 탐구 중이라 어느 분야에 가야 자아성취를 하고, 돈은 벌 수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잘 살아보려고, 어떻게든 더 낫게 살아내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내가 기특해서 목이 메었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을 정리하여 글로 내려놓을 수 있는 내가 좋다.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을 웃기고 싶은 나도 좋다. 억울하면 감정이 고여 썩기 전에 풀어내고 터트리고 흘려보낼 줄 아는 내가 좋다. 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매일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모습인 내가 좋다. 신랑 앞에서 그래도 잘 보이고 싶어 화장실 문을 닫고 볼일을 보는 예의 바른 아내의 모습도 좋다. 연하의 신랑에게 열심히 높임말을 쓰는 나도 좋다. 사람들을 보면 밝게 인사할 줄 아는 내가 좋다. 손이 부르트도록 요리를 하고 기쁘게 가족을 먹이는 내가 좋다. 사람들을 잘 칭찬하는 내가 좋다.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할 줄 아는 나에게 감사하다. 술을 마시면 바닥까지 솔직해지는 소탈한 내가 좋다. 가끔은 장을 보다 말고 맛있는 와인 한 병을 발견하곤 그 자리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엉뚱한 내가 좋다.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나를 귀하게 대할 줄 아는 내가 좋다. 그렇게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하면 나는 정말 나다운 모습으로 내게 답한다. 어쩌면 아직도 자아도취 중2병에서 못 벗어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어. 내가 예쁘니 날 닮은 아이들도 곱다. 내가 귀하니 나를 귀하게 대해주는 신랑이 귀하다. 내가 사랑스러우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참 사랑스럽다.
있는 그대로, 난 내가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