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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Sep 18. 2020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똥과 된장 사이 #나를 닮은 글 #브런치 항아리 #된장담그기 경험담그기

내가 뱉어 낸 글은 나와 무척 닮아 있다. 장점도 단점도 참 그대로이다. 당당하게 (멍멍 썅) 마이웨이! 개인주의를 주장하지만, 어느 구석 오지랖 넓은 것도 나다. 친절하고 섬세하지만 예민해서 피곤한 나를 꼭 닮았다. 삶에 대해 열정적이지만 어느 구석 냉소적인 내 모습 그대로이다. 사실은 소심하지만 쿨한 척하는 것도 나다. 예의 바르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도, 가끔 아는 척하고 싶은 것 마저 내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적어 놓은 것에 약간의 연민과 근거 없는 뿌듯함을 갖는 것도 스스로에 대한 감정과 비슷하다.


1. 반전의 매력이 있다.

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하기도 하다. 여성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성적이기도 하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가이며 투쟁가이길 표방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은 욕심을 놓지도 못한다. (개그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 그래서 내가 구독 중인 웃기는 작가님들이 너무 좋다ㅋㅋ) 모든 상황을 깔끔하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사실 자세히 풀어내면 디테일이 끝도 없다. 페미니스트 관련 글을 쓸 때도 나는 무척 보수적인 입장에 가깝다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불평등한 상황이 오면 싸워서 절대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불의 앞에 쌈닭 본능을 숨길 수 없다. 사람과 관계에 대해서도 큰 열정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또 늘 좌절스럽기도 하다. 좋게 말하자면 두 얼굴의 매력, 좀 나쁘게 말하자면 자아 분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극단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좋다. 처음에는 어느 한쪽은 가식인가 하여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둘 다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속이 편하다. 내가 오락가락하면 우리 신랑은 자꾸 "어 또 나왔다 골룸!"을 외치지만 꿋꿋하게 이것이 내 매력이라 주장한다.


2.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디까지 갔는지 보다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늘 고민한다. 브런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편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고심하고 퇴고하고 다 지웠다가 다시 쓰면서 한 달에 한 편을 발행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정해놓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마음이 무겁다. 양보다 질을 외치지만 정해놓은 양을 채우지 못했을 때의 무력감이란! 독자 분들께서 기다려 주시던 기다려주시지 않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작가 자격 미달같이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느니 만들어 놓고 발행하지 못해도, 글 다운 글을 발행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단 한 분일지라도 독자분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이 곳은 일기장이 아니므로!


3. 잘 균형 잡힌 것이 좋다. 

정리된 것을 좋아하지만 재미없는 것은 또 용서할 수 없다. 내용이 없지만 재밌는 글과, 내용은 알차지만 논문 같은 글 중 나는 어떤 글을 더 좋아하는가. 늘 고민한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싶지 않다. 결국 그것이 잘 되었을 경우 맘에 드는 글이 되지만 둘 다 실패했을 경우 글쎄... 이도 저도 아닌 어디에도 갖다 쓸 수 없는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런 것은 마치 장인이 다 만든 도자기를 바닥에 던져버리듯 과감하게! 쓰레기통으로 넣!! 지는 못하고 (난 아직 장인이 아니므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인공호흡에 심폐소생술을 더해 뭐라도 만들어 보려 노력한다. 그러고도 안되면 조용히 눈물의 발행 취소를 누른다.


주변 작가분들을 만나 보아도 비슷하다. 글이 재밌는 사람은 사람 자체가 유쾌한 경우가 많다. 보고서처럼 잘 정리된 글을 쓰는 작가는 결국 그도 생활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글이 꾸밈없이 소탈한 글을 쓰는 작가는 정말 솔직하고 가식 없이 웃는다. 세상에 대한 냉철한 시각이 담긴 글을 쓰는 작가는 정말로 세상에 대해 고뇌를 오래 해 보았으며 동시에 순수하게 다가갔다가 받은 상처 때문에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은 경우가 있다. 따스한 글을 만드는 사람은 본성이 참 친정 엄마 같다. 글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나는 잘 고쳐지지가 않는데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글은 열 번도 스무 번도 고쳐진다. 지나간 나는 후회 속에서 건질 수 없는데, 지난 글은 꺼내서 얼마든지 더 괜찮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글은 참 매력적이다. 막 말을 뱉어 내버린 못난 나는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로 뱉어놓은 욕지거리는 다듬어서 얼마든지 괜찮은 글로 만들어낼 수 있다. 때론 경험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경험이나 순간들도, 인생에서는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것을 글로 담으면 멋진 소재들로 다시 탄생하곤 한다. 물론 경험 그 자체가 얼마나 강렬했느냐에 따라 그것을 글로 숙성시키는 과정은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잘 숙성시키면 구수하고 몸에 좋은 된장이 되지만, 잘못 시간을 보내면 새까맣게 썩어버린다. 그래서 나도 함께 썩고 싶지 않다면 경험을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고 정성스럽게 살피며 잘 숙성시켜야 한다.


나에게 있어 지금 현재 가장 강렬한 경험은 이민, 육아 그리고 시댁이다. 그런데 그 쉽지 않은 매일의 고통이 쌓이며, 글로 승화될 때 내가 한 뼘 성장해있음을 느낀다. 비교적 가벼운 경험은 쉽게 글에 녹아나지만, 너무 아프고 너무 괴로운 경험은 글로 제대로 녹여지지가 않는다. 말하자면 숙성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 글 만들기, 된장 담그기 ]

경험 덩어리(메주)를 짠내 나는 내 마음 상자에(소금물)에 넣고 숙성 발효시킨다. 그 과정에 눈물과 감정이 (간장이) 우러나면 경험은 소통을 위해 꺼내어 객관화 작업(메주를 건져 부수어 고루 섞는 작업)을 한다. 그 과정에 정제된 감정 덩어리(소금이나 간장을)를 약간 섞어 버무린다. 그것을 브런치 글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고, 글을 발행하여 (항아리 입구를 망사로 씌워), 때론 독자분들의 따스한 위로와 공감을 받으면서 (햇볕이 좋을 때는 뚜껑을 열어 볕을 쪼이고, 해가 지면 뚜껑을 닫으면서) 한 달 정도 숙성시키면 좋은 글이 (좋은 된장이) 완성된다. 그 과정에 그것이 내 안으로만 파고 들어가 고이고, 소통이 되지 않아 (공기가 통하지 않아) 막힌 채로 오래 두면 정말 썩어버리기도 한다. 썩은 내 부분을 도려내는 과정은 몹시 아프다.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프다. 자 그러면 몹시 아프지만 더 썩어 들기 전에 내 병든 부분을 도려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독을 빼내고 새로운 경험(메주)을 다시 가지고 온다.


내가 쓰는 것은 결국 나와 닮았다. 나는 좋은 마음 상자에 귀한 경험을 잘 숙성시켜 정말 괜찮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필요한 어떤 이에게 도움도 되고 또 재미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 맑게 걸러진 눈물은 다른 이들의 아픈 마음 상자를 만났을 때 공감하고 인생의 깊은 맛을 내는 데에 적절하게 쓰이길 바란다. 사실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똥보다는 된장을 더 자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똥내 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아니라 파리만 꼬일 것 아닌가! 구수한 된장 내가 푸근한 고향 같고, 본가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언제든 내 사람이 기대면 보글보글 깊은 맛 우러나는 된장찌개도, 맑은 국물이 시원하게 속을 풀어주는 된장국도 뚝딱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의 브런치 장독에서 그런 글이 구수하게 익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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