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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Jan 08. 2021

집에서 애나 키워요.

#엄마는 에밀레종 #야 엄마도 한때는 공주였어 #지금은 무수리 신세지만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노는 일'이 아니다. 육아를 해 본 사람도, 안 해 본 사람도 이젠 다 아는 세상이다. 직장 생활을 10여 년 하고 결혼을 하여 집안일을 하고 육아를 하고 있는 '전업 주부'가 된 나 역시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퇴근 없는 하루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편이 쉽다. 워킹맘인 친구들 대부분 출근해서 '쉰다'라고 말한다. 물론 밖에서 일하는 것이 더 쉬운지, 육아가 더 쉬운지 비교하자는 말은 아니다. 남의 돈 벌어오는 일은 쉬운가. 당연히 고되다. 하지만 육아는 흔히 '집에서 논다.'와 같이 사회적으로 그 노동 강도가 저평가되기 일쑤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힘들고 지치는 법이다. 애들이 클수록 엄마 레벨도 사원에서 대리, 과장으로 누가 승진시켜주며 성과급이라도 나오면 더 고무될 텐데. 이건 뭐 애들이 클수록 엄마는 늙는다. 체력도, 감정도, 젊음도, 건강도 나를 곱게 갈아 넣어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 같다. 에밀레 종처럼 '에밀레- 에밀레-' 나를 갈아 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점점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얼마 전 '하나 더 낳으면 어떨까?'의 글 아래 댓글에서 그런 시각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전업주부는 '애나 키운다.'라는 말을. https://brunch.co.kr/@illiajungin/46


밖에서 일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하고 애나 키우는 나는 과연 태평하게 쉴 수 있는가. 만약 내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우면서 밥도 빨래도 똥 기저귀도 치우지 않고 고상하게 앉아 함께 시간만 보낼 수 있다면 그 말에 동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육아와 가사노동은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을 돌본다는 의미에는 먹이고 싸고, 씻기고 재우고 기본적인 가사 노동이 집약적으로 함께 들어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두 손 두 발 움직이지 않고, 손을 물에 적시지 않고, 고상하게 앉아서 할 수 있는 육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해야 하는 것이 육아다. 그래야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전업 주부'가 되기를 선택했을까. 3개월 출산 휴가, 1년 육아 휴직, 그 이후에는 데리고 출퇴근이 가능한 보육 시설까지 있었던 복지 빵빵한 회사를 왜 내 발로 걸어 나왔을까. 학교 졸업 후 쉬지 않고 일해온 시간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임신'과 동시에 정말 집에서 잘 쉬고 싶었다. 그리고 온갖 스트레스와 눈치 경쟁 속에서 임신 기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몸에 쌓인 사회생활의 '독' 같은 것을 좀 디톡스 하고 싶었다. 물론 전통적인 가치관이 작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양가 부모님들이 강요 하시진 않았지만, 퇴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후회하는가?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 생각은 해본다. 다시 복직했으면 어땠을까. 아이들을 다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풀타임으로 근무를 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둘째를 가질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복직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렇듯이 복직을 했다면 아마 둘째도, 이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책 출간도 시도해 볼 용기조차 낼 수 없었겠지. 대신 직장에서 자아 성취를 했을까? 아니 하다못해 휴식이라도 했을까? 워킹맘은 집에서도 죄인, 회사에서도 죄인이라던데 이리저리 눈치 보며 살았을까. 그래도 아기 하나인 워킹맘 친구는 해외여행도 다니고, 외제차도 샀던데. 나도 뭔가 나를 위한 소비를 하며 더 멋있게 커리어 우먼으로 살고 있었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게 후회인가 싶기도 한데, 예쁘게 잠든 아가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고 만다. 복직했으면 둘째는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집에서 애나 키우다 보면 누가 나를 '차장'으로 승진시켜주진 않지만, 내가 스스로 삽을 들고 아래로 아래로 깊어져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점점 마음의 내공이 쌓이는 것.(물론 몸속에서 사리도 같이 나올 것 같지만.) 곱게 잠든 아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사랑스러워 셋도 넷도 갖고 싶지만, 동시에 둘이 일어나 내게 기어 오는 순간부터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머리카락을 당기고 눈을 찌르고 발에 배가 차이는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앉으면 드디어 하루가 상쾌하게 시작된다. 하루 중 일어나는 숱한 갈등의 시간 속에서 이성의 끈을 다잡고 심호흡을 하며 오은영 박사님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남으려 안간힘을 써본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관계를 그르치지 않으며, 부모의 말이 권위가 있어 아이가 스스로 따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상황... 은 실상 잘 나오지 않는 장면. 열에 아홉 번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아슬아슬 곡예를 타며 펼쳐진다. 주로 위험하거나 더럽거나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오늘만 해도 첫째가 뜨거운 커피 컵을 만지려고 해서 못하게 막으려 허둥대다 오히려 내가 내 손으로 커피를 쏟고 그걸 얼른 닦아 올리는 동안, 동시에 화장실 변기 물에 담겨 버린 내 화장품을 주워 올려 씻으며, 배변 훈련 중인 둘째가 '엄마 쉬, 쉬'해서 이동식 변기를 들고 소변을 유도하는 명장면 속에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한다. 그 곡예 같은 상황에 첫째는 뒤에서 목을 끌어안고 뜬금없이 '엄마 괜찮아요? 사랑해요!' 한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진짜 미친 듯이 귀엽고 미쳐버리게 힘들다.


그래, 오늘도 나는 집에서 애나 키운다. 그대에게 생때같은 자식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대에게 부모가 있다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애나 키우는 일의 숭고함을. 그렇게 고상하지 않은 일을 최선을 다해 고상하게 해 본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곱게 나를 갈아 넣는다. 에밀레- 에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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