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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Jan 06. 2021

과연 나는 어떤 친구인가

#어떤 친구를 원해요? #향긋한 차 한잔 #몸에 좋은 한약 #시원한 맥주

나는 친구의 스펙트럼이 넓다. 이것은 장점이 되기도 때론 단점이 되기도 한다. 다 같은 내 친구지만 서로 결코 어울리기 힘든 타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으며 교육을 전공했고, 성당을 매우 열심히 다니지만, 술과 여행을 좋아하고 노는 건 더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각기 다른 이유로 만난 친구들은 매우 다른 성향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며 기본을 중시하는 친구와 개방적이며 충동적이고 경험을 중시하는 친구가 늘 공존했다. 각기 다른 성향의 친구들은 나를 다양한 세계관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만나도 나누는 이야기는 천차만별이다.


친구들마다 특성은 다 다르지만 공통점을 묶어 정리해보면 이러하다.

친구 A는 워낙 착한 데다 긍정적이며, 꿈과 가치관이 비슷하여 비슷한 길을 걷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준다. 

친구 B는 팩폭이 특기라 조언을 구할 때 필요하다. 단 자주 통화하면 내 멘탈이 바사삭! 부서질 수 있다.

친구 C는 가치관은 나와 다르지만 취향이 비슷하며 참 유쾌한 친구다. 현재 진행형의 관심사를 나눈다.


예를 들어 내가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해본다고 하자. "외국에서 연년생 키우는 거 장난이 아니네. 도와줄 사람 하나 없고, 기댈 곳은 더 없고. 가족들은 걱정할까 봐 하소연도 맘대로 못하겠다. 한국이었으면 둘 다 어린이집 보내고, 진작 엄마한테 SOS 했을 텐데. 진짜 무인도에서 혼자 육아하는 기분이야. 몸도 아픈데,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해서 너무 서럽다. 여기 진짜 무슨 병원 가는 것도 안 쉬워. 어느 날 갑자기 귀 한쪽이 안 들리는 거야. 당장 병원 가려고 이비인후과 전화했더니 제일 빠른 예약이 2주 후인 거 있지. 이런 돌발성 난청은 하루 이틀 이내에 스테로이드로 조치를 안 취하면 영구적으로 안 들릴 수도 있다는데. 그때 정말 식겁했다.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근데도 살아내야 되는 게 정말 고역이여. 야 진짜 삼시 세끼 해 먹으면서 애들 키우는 게 진짜 이렇게 대환장 파티인 줄 몰랐다. 나 진짜 배민이랑 쿠팡이 제일 그리움. 아 어린이집도."


이때 친구 A는 온 마음을 다해 공감해준다. 이 친구와 통화를 하면 향긋하고 따스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다. 직접 만나 안아주지 않아도, 말로 나를 안아주는 방법을 안다. 이 친구에게 어려움을 실컷 이야기하고 나면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아이고 어떡해... 너무 힘들겠다. 귀는 이제 괜찮은 거야? 어쩜 좋아, 진짜 놀랬겠다. 애들 어려서 제일 힘들 때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먹고 어떻게 사냐. 대단하다 정말. 내가 너였으면 진작 때려치우고 울고 불고 도망쳐서 친정집으로 갔을 거야. 근데도 이렇게 타지에서 애기 둘을 예쁘게 키워내는 네가 대단하네. 진짜 너라서 하는 거지. 네 신랑은 복도 많다 정말. 못하는 게 없잖아 네가. 근데 아프면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정말 힘들겠어. 시기만 이렇지 않으면 나라도 당장 가서 며칠 애들 봐주고 푹 쉬라고 해주고 싶네. 이미 너무 잘하고 있으니 힘내. 멋있다 친구야." 이렇게 적극적으로 위로해준다. 그냥 친구의 존재 자체가 큰 힘이 되고 눈물 핑 돌게 위로가 된다. 


친구 B는 언제나 단호박이다. 속이 답답할 때는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이지만, 그 따끔함이 나에게 향할 때는 쓰디쓴 한약을 들이켜는 기분이라, 몸엔 좋을지언정 입이 몹시 쓰고 때론 삼키기 어렵다. 분명 듣자마자 "그래 내가 가기 전에 말했잖아. 한국이 낫다고. 애들 어릴 때 고생할 거 생각하고 나간 거 아니니. 그래도 네가 한국에 있을 때는 미세먼지 때문에 힘들다, 시댁 어른들 어렵다 얼마나 힘들어했냐. 그거 비하면 지금 다 해결됐는데 천국이지. 한국에 있어도 요샌 어린이집 못 보내는 거 똑같은데 뭐. 연년생이라 그건 좀 힘들긴 하겠다. 그래도 애들 얼마나 순해. 다른 진짜 힘든 애들 네가 못 봐서 그런다. 장난 아니야. 너네 애들은 진짜 순한 거지. 그리고 너네 신랑은 육아 같이 잘해주고, 일도 빨리 끝나잖아. 어려운 것도 아니지. 여기 회사 알지? 빨리 오면 10시다. 비교해보면 힘들단 소리 못할걸. 그러면서 너 맨날 하나 더 낳고 싶다며. 네가 덜 힘들단 증거다." 듣다 보면 내가 한심해진다. 다 맞는 말인데 그래서 힘이 더 빠진다. 하지만 다른 한심한 이유로 힘 빠져했었던 과거의 나를 리마인드 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서 듣고 나면 묘하게 살아갈 힘이 생긴다.


친구 C는 좀 정신이 없고 웃기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아니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끝까지 내 얘기를 듣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얘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향이 비슷한데 애들 나이까지 비슷해서 늘 공통의 관심사를 꺼내고 정보를 공유하느라 바빠진다. "아 그렇지 진짜, 내가 얘 때문에 환장한다 요새. 울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진짜 장난 아니고 한 시간 내내 악을 쓰면서 운다니까. 아 저 성질머리 어떻게 고치면 좋아. 저거 나 닮은 거니? 아 신랑은 어릴 때 그렇게 순했다는데. 아니 이것도 시어머니 입에서 나온 말이니까 뭐 알게 뭐야. 다 좋은 건 자기 아들 닮았다 그러시거든. 아 진짜 더 키우면 좀 쉬워지긴 하는 건지 내가 진짜 요새 온몸이 안 쑤신 데가 없다. 아 맞다. 애들 영어 거기서는 어떻게 시켜? 낯 가리는 애도 아닌데 외국인만 보면 '영어말사람' 무섭다면서 눈을 피하고 멍하니 웃기만 해. 미쳐 진짜. 하기야 나도 너랑 이태원만 가면 말없는 '미소천사'였지ㅋㅋ 아 그때가 좋았는데. 근데 미국 가면 애들이 저절로 영어를 해?" 영어 교육이며 인성 교육이며 요새 좋다는 책, 미디어 자료를 한참 얘기하다 보면 정신이 없다. 그러다 묻어둔 과거의 추억들까지 나오고 깔깔 웃다 보면 내가 무슨 하소연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도 안 난다. 


모두 내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벗들이다. 함께 해온 시간들이 이젠 그들을 몰랐던 시간보다 길어지고 있다. 따뜻한 차 한 잔도, 씁쓸한 한약도, 달콤한 디저트도 때론 술 한 잔도 딱 필요할 때가 있듯이. 이 친구들도 내겐 그런 존재다. 고맙고 소중한 지음들에게, 과연 나는 어떤 친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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