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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Jan 12. 2021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할 것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아무도 믿지 말 것 #비빔밥이 식어버리기 전에

정말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놈의 코비드 바이러스. 한 해를 통째로 꿀꺽 삼키고도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다니. 백신이 나왔다고 하지만 변종 바이러스 소식과 수그러들지 않는 신규 확진자 소식에 마음이 쉬이 놓이질 않는다. 더군다나 어린아이들과 함께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는 마음이 늘 조마조마하다.


남편은 코비드 사태가 터지자마자 재택근무가 시작되어 이제 곧 24시간 붙어 있은지도 365일이 될 예정이다. 꼭 봐야 하는 장보기는 2주에 한 번 정도만 사람 없을 시간을 노려 마트에 신랑 혼자 다녀오고, 그 외에 필요한 것은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성당도 직접 미사에 가지 않은지 오래다. 고마운 유튜브가 성당에 가는 수고와 불안을 덜어준다. 인터넷으로 많은 것이 해결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어 참 다행이다.


다만 인터넷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아이들의 친구 만들기. 사람 없는 시간을 골라 집 앞 놀이터에 나가 노는데 또래 아이들이 하나라도 보일 것 같으면 가서 자꾸 다가가서 말 걸고 싶어 한다. 영어는 겨우 '하이'밖에 못하면서. 사람이 그리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하다. 유치원에 가서 한창 놀고 배울 나이인데 집에서 엄마와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줌으로 미팅을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디어 노출을 잘 시켜주는 엄마도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극이란 오직 엄마, 아빠, 자연, 책뿐이다. 집이라는 성 안에 가두어 놓고 1년을 키우고 나니 이 시기에 꼭 노출시켜줘야 할 또래 관계며, 언어며, 사회성 발달에 필요한 적절한 경험과 자극을 주지 못한 것만 같아 많이 아쉽다. 첫째는 이제 자기가 겨울 왕국의 엘사인 줄 안다. 방 안에 갇혀 사는 처지가 비슷해 보였는지 진지하게 감정 이입을 하곤 한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미국에 와있는 우리 가족을 걱정하고, 미국에 와있는 우리는 한국의 식구들이 걱정된다. 한국은 인구 밀집도가 너무 높은 데다 백신이 언제부터 배포될지 기약이 없어 걱정이고, 미국은 매일 신규 확진자 숫자가 상상 못 할 숫자인 데다 변종 바이러스 소식까지 들리는데 한국처럼 병원 가는 것도 편하지 않아 걱정이다. 그래서 가족들은 우리가 절대 누굴 만나지 않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한국인 가족을 우연히 만났다. 애기 아빠는 재택근무에 엄마는 임산부이고 아이들 나이는 비슷하게 어렸다. 시기가 시기라 사실 처음에는 그쪽도 우리도 매우 조심스러웠지만, 한 번 초대받아 그 집에서 식사를 한 끼 한 이후로 그냥 가족이 되어 버렸다. 양쪽 가족들 모두 집에만 갇혀 지냈던 터라 너무 사람이 그리웠던 차에 믿을 수 있는 가족이라 여겨지자 두 가족 모두 마음의 빗장을 풀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유일하게 만나는 가족 같은 사이의 이웃사촌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누 언니, 그러니까 진짜 가족이 타 주에 살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시누나 아주버님 모두 재택근무에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일 년 사이에 두세 번 정도 만났다. 다만 아주버님네 가족(시누의 시댁 식구들)들이 모두 근처에 살고 계셔서 자주 오가며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다들 건강하시고 그중엔 고령의 시부모님과 임산부도 있지만, 그 시누의 시댁 가족들 중에는 재택근무가 아니신 필수 직종 근무자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이유로 시누 언니를 우리 집에 못 오게 했다가 너무 서운해하며 한국 시댁에 전화로 눈물 바람을 하기도 하여 한숨 한 번 내쉬고 '믿자, 괜찮으려니...' 하며 시누 언니네 부부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웃사촌인 친구네도 시누 언니, 그들의 진짜 가족이 가까이 살고 계신다. 그분은 꽤 자주 그 친구네를 오갔다. 시누 언니 분과 그 신랑 분은 재택근무가 아니시고 개인 사업을 하고 계신데 예약제로 손님을 받고 있고 아픈 사람들은 당연히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그 이웃사촌의 애기 아빠가 직접 직장으로 근무를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온갖 보호 장비를 하고 일을 하신다고는 하지만 마음속의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당신들 의심스러우니 당분간 인연을 끊겠다고 선포할 자신이 없다.


이쯤 되니 서서히 머리가 아파 온다. 우리 시누 언니가 만나는 시댁 식구들 중 위험 인자는 없는가.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 유일한 이웃사촌인 친구네 가족들의 진짜 가족인 시누 언니의 사업장에는 얼마나 제한된 손님들을 받는가. 우리는 시누 언니를 일 년에 두 세 번 만나도 괜찮은 것인가. 이웃사촌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데, 그 이웃사촌은 시누 언니를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그들의 시누 언니는 믿을 수 있는가. 만약 두 다리 건너 한 사람이 확진자라면 우리에게 전염되어 올 가능성은 몇 퍼센트이며, 그것을 즉시 알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작년 한 해 유일하게 만났던 그 이웃사촌과 시누 언니에게 만나지 말 것을 이야기하면 서로 상처를 받을 것 같은데, 이해는 해줄 것 같으면서도 또 그것이 몹시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 피곤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의심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도 못 만나다 보니 정말 만나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또 정말 가까운 사람이 있고, 또 그들에게도 정말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모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 저녁에도 우리의 소중한 이웃사촌이 조심스레 카톡을 했다. "내가 비빔밥을 했는데 나물을 너무 많이 만들었거든, 혹시 저녁 안 먹었으면 집 앞에 좀 갖다 주고 가도 될까? 이거 그냥 두면 나물이 상할 것 같아서. 근데 혹시 바쁘면 괜찮아. 시기가 시기라 조심스럽긴 한데, 애들이랑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카톡을 보며 신랑과 심한 갈등을 한다. 아 정말 이렇게 따뜻하고 고마운 호의를 의심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만든 생과일 요거트를 곱게 포장하여 들고 그 친구 집을 들렀다. 친구가 문 앞에 내어 놓은 그릇을 들고, 우리가 가져온 요거트를 집 앞에 내려놓고 돌아온다. 눈물이 핑 돈다. 몸을 지키려다 보니 마음까지 병들 것만 같다.


코비드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안전 수칙 하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할 것!

이제 정말 그만 하고 싶다. 이 따뜻한 비빔밥이 찬 겨울바람에 다 식어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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