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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Jan 13. 2021

진상 2호,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다.

#아니 얘는 대체 누굴 닮은 거야? #난 순했대. #아니 나도 순했대! 

우리 첫째 딸은 정말 FM 효녀다. 이상적인 자녀의 정석이라고나 할까. 영리하고 착한데 애교까지 많다. 어릴 때부터 일찍 하면 좋은 것은 다 일찍 시작했고, 늦게 하면 좋다는 것은 다 늦게 했다. 언어나 이해력은 또래보다 빨랐고, 1년 완모(완전 모유수유)를 거쳐 이제 그만 먹자, 하니 쭈쭈를 가리키며 "아니야?" 하고 그만 먹었다. 기저귀도 두 돌이 되기 전에 완벽하게 뗐다. 강요도 없었다. 그냥 때가 되어 알려주고 연습시키니 실수도 안 하고 잘 따른다. 그렇게 다른 친구들이 그만두며 애를 먹었다는 어떤 것도 너무 쉽게 잘 따라 주었다. 이는 늦게 나면 좋다 했더니 정말 늦게 나기 시작하여, 이 닦기도 속 한 번 안 썩이고 스스로 잘한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아이가 세상천지 어디 있겠냐만, 얘는 생떼 한 번 부린 적 없이 순하게 잘 따라왔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영특함이라 뭘 가르쳐도 재미있었다. 워낙 잘 먹고 잘 자는 아이라, 편식 없이 자리에 앉아 딱 주어진 양을 먹고 일어나고, 잠도 재우면 12시간을 그냥 잤다. 잘 먹고 잘 자니 건강하고 성격 좋은 건 덤이었다. 어린이집을 돌 지나 보냈는데, 교사들에게 돌아가며 얼마나 칭찬을 들었는지 모른다. 어쩜 온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다 이 친구 매력에 쏙 빠졌다면서 말이다. 내가 집안일을 하다 힘들어하면 언제 왔는지 살포시 다가와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말없이 내 일을 돕곤 했다. 어쩜 이런 효녀 심청이 같은 사랑스러운 아이가 우리에게 왔을까.


우리가 만약에 정말, 이 예쁜 딸 하나만 키웠다면 얼마나 기고만장했을까 싶다. 육아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마터면 아이를 키우고도 이해하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우리의 거만함을 두고 볼 수 없으셨을 것이다. 잠시 목에 힘이 들어갈 뻔했지만, 그 시기는 길지 못했으니 바로 연년생 남동생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 최대의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아 단지 성별이 달라서라거나 첫째가 순하면 둘째가 별나다는 말을 들어서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다른 아기가 나왔다. 


이 둘째로 만난 아들은 정말 보고 있으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난다. 내가 차마 내 배 아파 낳은 이 귀한 생명체를 앞에 두고 욕을 할 수가 없어 "얘는 무조건 성공할 거다."하고 만다. 정말이다. 항상 본인 바라는 바가 몹시 분명한데, 그것이 성취되기 전까지는 어떤 것으로도 협상이 불가능하다. 단호하기 이를 데 없고 그 대쪽 같은 성정은 대나무도 울고 갈 지경이다. 부모의 의사라는 것과 본인이 원하는 것 사이에 고민이나 협상 따윈 없다. 교육이라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성향이란 것이 있는지... 심지어 나는 교육을 전공했음에도 의문스럽다. 극단적 경험주의자도 아니고 모든 배움은 모두 스스로 부딪혀서 얻으려고 한다. 목청은 또 얼마나 좋은지.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시여! 시여! 노노노!"다. 아 정말 말을 시작하자마자 엄마 아빠도 아니고 자기주장이라니. 고집이~ 고집이 아주 말도 못 하게 질겨서 이겨 먹으려다가는 우리가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아 뒷목을 잡고 만다. 아 어쩜 한 배에서 연년생으로 나와놓고 이렇게까지 다를 일인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절대로 안 되는 것 말고는 자기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도록 돕기로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루 종일 이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안된다고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드시고, 원할 때 주무시고, 원하시는 대로 혼자 씻으시고, 놀잇감은 본인 원하는 방식으로 정돈하도록 두었다. 하지만 우리도 협상이 불가능한 것이 있으니 바로 위험한 것, 더러운 것, 고가의 물품이 그것이다. 면도칼, 식칼, 가위, 변기, 쓰레기통, 기저귀, 카메라, 랩탑 등이 주요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치울 수 있는 것은 절대 그분의 눈에 안 보이게 숨겨 두지만 변기와 기저귀같이 옮길 수 없거나 매일 사용해야 하지만 더러운 것들이 문제가 된다. (이것들을 가지고 무슨 분탕질을 하시고 싶어 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 아이를 보며 우린 항상 "얘는 대체 누굴 닮은 거야?" 하곤 했다. 생긴 건 정말 아빠 어린 시절 붕어빵인데, 하는 짓이 시댁에서 듣던 바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시어머님께서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애 셋 중에 너네 신랑을 제일 예뻐했다. 금같이 귀하고 예뻐서 어딜 가든 내어 자랑하고 싶었다. 정말 잠시만 안 봐도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물고 빨고 했는지 모른다."였다. 우리 신랑은 딱 봐도 순하고 착하게 생겼다. 지금도 효자지만, 학창 시절에는 더 착실하고 모범생인 데다 워낙 과묵하고, 기억하는 한 본인 입으로도 부모님 뜻을 그르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했었다. 반면에 나는 학창 시절에 꽤나 '호기심 천국'이었다. 친구들이 하는 것은 나도 다 따라 해보고 싶었고, 워낙 친구들과 어울리고 노는 것을 좋아했었다. 어린 시절엔 온실 속 화초같이 키웠던 아이라, 중고등학교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들 속엔 제법 엄마 속을 썩였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막연히 착하고 순한 첫째는 신랑을 닮았고, 저 세상 텐션으로 자기주장을 목놓아 외치는 둘째 상전님은 나를 닮았으리라 생각해왔었다. 우리 부부 모두 암묵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와 영상 통화 때마다 빽빽 소리를 지르며 온 사방을 뛰어다니는 2호를 보며 "엄마 나 키우느라 애 먹었겠다. 얘가 얼마나 지랄 맞은 지... 엄마가 맨날 너 닮은 애 낳아 키워 보라더니 얘가 그 역할을 맡았나 봐." 하면 엄마가 참 의아해하시곤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사춘기는 좀 별나게 겪었어도 어린 시절엔 참 순하고 고분고분했었다 하는 것이었다. 말도 빨랐고, 영리한데 하자는 대로 잘 따라서 중고등학교 때 배신감? 이 더 컸다고 하셨다. 이 말을 전하니 신랑도 의아해했다. 


지난 주말이었다. 시댁은 영상 통화를 상대적으로 적게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이들이 좀 컨디션이 좋을 때 잠시 앉혀서 곱게 인사드리고 짧게 끊는다. 그러나 지난 주말은 우리 의도와 달랐다. 2호가 자고 있었고, 천사같이 예쁘게 자고 있는 모습만 보여 드리고 원래 원조 천사인 1호를 집중적으로 보여드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나 앉으신 상전 2호님은 심기가 불편해지시고 말았다. 진상 풀가동 시작! 시부모님 앞에서 40분간 자기주장을 목놓아 하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내 빨대 컵을 내놔라. 뚜껑을 돌려서 열어라.(열어주면 보통 물을 다 쏟는다. 그래서 몰래 화장실에 물을 비우고 뚜껑을 열어 주었다.) 아니 물이 없지 않으냐! 당장 물을 채워라. (누나 물통을 가리키며) 저 물을 내 빨대 컵으로 옮겨라. 당장 시행하라. (결국 들어주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 말소리가 안 들렸기 때문. 그러자) 내가 물통을 돌려서 닫을 테다. (아직 어려서 소근육 발달이 덜 됐다. 물통을 자기가 돌려 닫을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자기 마음대로 물통이 안 닫히자 극도의 화를 샤우팅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휴우... 그때 시부모님께서 당장 쟤를 놔두고 건넛방으로 건너가서 부부 둘만 들으라 하셨다. 우리는 그 샤우팅을 애써 무시한 채 옆 방으로 왔다. 어머님 왈, "저거 너네 신랑 어릴 때랑 아주 똑같다. 하는 짓이 판박이네 아주. 저거 가만 놔두면 큰 일어난다. 철저하게 무시해라. 안아서 달래주지 말아라.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안 된다." 하셨다. 그 순간 우리 부부는 빵 터져서 웃고 말았다. "아니 어머님, 신랑 어렸을 때는 너무 순해서 울음소리 한 번 들어보신 적 없다 하셨잖아요..... 쟤랑 어떻게 똑같아요? 저렇게 고집도 부렸었어요?" 했더니 목청을 크흠, 가다듬으시며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이야기해주마." 하셨다.


신랑이 그렇게 순했다는 이야기만 들어서 첫째도 둘째도 임신 때마다 '아빠 닮아라, 아빠 닮아라.'를 주문처럼 외웠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이제 2호가 소리를 지르고 진상을 부릴 때마다 이제 신랑이 내 눈길을 피한다. 그리고 가까이 와서 소곤소곤 "미안해요." 한다. 


전화를 끊고 우리는 마주 보고 깔깔깔 웃고 말았다. 우리 사랑스러운 진상 2호,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다. 그대의 미니미 책임지세요 신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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