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아 Jan 15. 2021

상상 속의 셋째, 제가 한 번 낳아보겠습니다.

#이 시국에 다둥이맘 #대단하거나 #미쳤거나 #생명의 신비

"생명의 신비"라니 이 무슨 교육 방송 인기 없는 시간대 재방송되는 다큐멘터리 같은 제목인가. 식상함을 어떻게 바꿔보고 싶지만 이것 말고, 지금의 기쁨과 감사를 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이 코비드 난리 속에서 셋째를 기도했고 결국 생명을 품었다.(꺄아아아! 소리질뤄어어어~) 임신을 기다리고 테스트기를 확인하던 날, 신랑은 청승맞게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원래 잘 우는 사람이 아니라 보고 있던 나도 울컥 따라 울 뻔했다. 사실 첫째도 둘째도 너무 계획 없이 생겨서, 오히려 계획해 놓았던 가족 해외여행 비행기를 취소하며 수수료가 아까워 눈물이 찔끔 났던 철없는 우리였다. 이제는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임신 출산 육아'의 콤보가 어떤 맛인지 알기에, 함께 정말 고민했다. 그리고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기다렸고, 선물같이 찾아온 아이가 너무 감사해 눈물이 흘렀다. 셋째 임신 확인에 애비가 눈물을 흘리다니 청승도 이런 청승이 없다. 기쁨의 눈물을 흘린 이야기를 듣고 남동생이 지어준 태명은 Joy. (사실 한국식으로 '희야-' 하자는데 뭔가 너무 80년대 갬성으로 '날 좀 바라봐'가 자동 재생되어서. 희야는 묻어두고 미국이란 핑계로 영어 태명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 코비드 사태에 해외에서 임신은 처음인 데다, 하필 예정된 이사까지 겹쳐 우리는 임신 사실을 알고도 산부인과를 찾아보고 결정하고 찾아가는 데에 무려 석 달이 걸렸다. 그래서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는 이미 임신 초기가 지난 후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뒤늦은 초음파를 임신 절반이 지나서야 하게 되었다. 아이의 처음 심장 소리를 들으며, 꼬마곰젤리도 아니고 아예 작은 사람으로 쑥쑥 혼자 잘 크고 있는 아가를 보고 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산부인과 의사도 '셋째라 그러셨죠?' 하면서 살짝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첫째도 둘째도 신기하다며 우와! 우와! 만 연발했지 눈물은 안 났는데, 갈수록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이들을 키울수록 더 뱃속에 사람이 사람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스럽고 놀랍게 느껴졌다. 이건 기적이었다.


내 몸속에 작은 생명체의 심장이 저렇게 건강하게 뛰고 있다니. 이 생명의 신비를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쩜 저렇게 작은 몸 안에 심장이 뛰고, 눈 코 입이 다 있고, 손가락 발가락이 꼬물대고 있다니, 척추와 뇌가 자라나고 있다니. 이 놀라운 기적을 눈 앞에서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인생의 의미가 아무리 더 높고 화려한 것에 있다 해도 지금 내겐 이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없었다. 내가 평생 살면서 해볼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일처럼 여겨졌다. 물론 어서 아이들을 키워 기관에 맡기고 나도 내 공부를 하고, 내 커리어를 이어 '기회의 땅'이라는 이 곳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왜 없으랴. 하지만 저 작은 생명이 내 몸 안에서 꿈틀대며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은 내 모든 욕심을 살짝 미뤄두게 만들었다.


늦게 찾은 산부인과에선 이미 아기의 성별까지 친절히 알려주셨다. 딸이든 아들이든 다 좋았다. 건강하게 아이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고, 신비였다. 하지만 올해가 소띠의 해이니, '우직한 막내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둘째 아들이 아무래도 육아 난도가 높았던 경험이 있어서, 마음속 한 구석엔 '셋째 따님이 예쁘다던데'라는 마음도 동시에 있었다. 하지만 쉽게 키운다고 아이가 좋은 사람으로 자라고, 어렵게 키운다고 아이가 형편없는 사람으로 자랄 리 없었으니. 딸이든 아들이든, 애가 둘이든 셋이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커줘야 될 일이었다. 엄마 아빠가 쉽게 키우는 것이 육아의 목적이라면 아이를 더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니 성별에 대한 기대는 정말 내려놓았다.


"저 임신했어요!"라는 말에 첫째도, 둘째도 주변 반응은 "우와, 축하해!" 였는데, 이번엔 확연히 달랐다. 시기가 시기라서였을까. 내가 해외에 나와있기 때문일까. 정말 생각지 못한 셋째여서 였을까. 다들 첫마디가 버라이어티 하게 터져 나왔는데 순위로 매기자면 '1위가 헐, 2위가 대애박, 3위가 미쳤네.' 정도였다. 친정 엄마도 혀를 내둘렀는데 뭐 친구들이야 말해 무엇하리. 내가 이번 경험으로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셋째 소식에 선뜻 축하하면 그건 시댁이지. 할 말을 잃었다면 친정이 맞습니다." 친구들 누구 하나 선뜻 축하부터 하지 못했다. 다 노산인 산모 걱정이 앞서 서겠지, 그 마음을 알아서일까 대놓고 욕 비슷한 감탄사를 터트려도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들 걱정은 우리 몫이니 건강하게만 낳으라며, 마무리는 훈훈한 박수와 함께 '리스펙트'를 외쳤다.


예정일은 5월, 계절의 여왕이라는 꽃 피는 봄날 귀하게 만날 생명을 가슴 설레며 기다려 본다. 세 번째라고 생명이 더 쉽게 커줄 일도, 더 쉽게 나올 거란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마음 가짐 하나는 한결 여유롭다. 엄마의 장점과 아빠의 장점을 골고루 닮은 아이이길.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주길. 태명대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 주는 기쁨 가득한 아이이길. 그리고 생명을 주신 참 부모이신 그분께 기쁨 되는 맑은 아이이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소중한 생명의 움직임 위에 손을 올려본다. 입덧도 유별나더니, 발길질이 무척 힘찬 걸 보아 확실히 봄날의 소띠가 맞는가 보다. 이 녀석, 벌써 뱃속에서도 기쁠 일이 이리 많은가. 하긴, 이렇게 엄마 아빠 누나, 형아가 마음 모아 기쁘게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생명은 기적이고, 볼수록 참 신비롭다. 물론 시기가 시기이기도 하고, 타지에서 가족 없이 어린 아가 둘을 데리고 또 출산을 해야 한다니, 인간적으로 앞서는 걱정들도 있지만. 생명을 주신 분께서 패키지로 다 알아서 가장 좋은 방식으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리라 믿어본다.


주변에 귀한 아이를 둘 키우고 있는 부부들은 다들 한 번쯤 상상은 해보았으리라. 셋째가 있으면 어떨까... 하고. 그 유니콘 같은 상상 속의 셋째, 제가 한 번 미친 척하고 낳아보겠습니다! 

이전 08화 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어떨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