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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Jan 19. 2021

신년 계획표를 슬그머니 떼어버렸다.

#신년 계획 세우셨나요 #계획 비우기 #한해 대신 #하루를 사는 법

올해는 화려한 카운트다운도 없이, 보신각 종소리도 없이 조용히 2021년을 맞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연말연초에 어떤 상황이든 꼭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신년 계획 세우기다. 이미 연말부터 시작해서 계획을 대대적으로 세우고 수정하기를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올해 이상하게 세워놓은 신년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지킬 수 있는 것'들과 '해내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계속 방황 중이었다. 내 계획이 제대로 세워졌든 아니든 2021년은 밝았고, 더 나은 내일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가득 채워진 나의 한 해 계획들은 무려 분단위로 빼곡히 적힌 채로 벽에 붙어 무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매일 아침 새벽 6시 기상, 조깅 + 근력 운동, 명상하기, 로사리오 + 성경 읽기, 관심 분야 자격증 따기, MSI 만들기(최소 금액 이상 수익 창출), 건강한 식단(야채와 통곡물 섭취량 늘이기), 주 5회 수업 (수 교육, 한글 교육, 파닉스 포함), 매일 강의 듣기, 강의록 작성하기, 매거진 발행, 글쓰기 강의, 독서 모임 그리고 순산까지. 보기만 해도 (살짝 숨 막히고) 퐈이팅 넘치는 계획표였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야무지게 목표를 채웠다. 하지만 지킬 수 없는 목표를 적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거창하게 붙여 놓은 계획표를 슬그머니 떼었다. 다시 조금씩 현실을 반영하여 수정하기 시작했다. 하나도 이루지 못한 목표를 보며 연말에 좌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실천 가능한 항목들로 목표를 하나하나 수정했다. 결국 나는 오늘까지도 신년 목표를 수정하고 있다.


첫째, 우선순위가 뒤집힌 것들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건강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매일 새벽에 조깅과 근력 운동을 할 몸은 아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좋지만 건강하게 뱃속의 아기를 키워서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의무이기도 했다. 건강을 위해 안 하던 운동을 무리해서 하는 것보다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선 운동의 목표는 '순산과 빠른 회복'에 두었다. 임산부의 몸으로 체중 조절이나 근력 운동, 조깅은 애초에 무리였음을 인정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한계에 도전할 때 더 강해진다는 자기 계발 강의를 들으며 무척 고무됐던 터라 아무래도 임산부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은 미련함이 있었다.) 코어 근육을 키우는 필라테스와 임산부 스트레칭으로 수정해본다. 조깅 대신 주 2회 빠른 걸음 걷기 정도면 괜찮겠다. 갑자기 큰 변화를 주는 대신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둘째, 좋은 습관 만들기에 앞서 나쁜 습관 지우기부터 시작했다. 기도와 명상의 습관을 들이고 싶었는데, 사실 기도와 명상을 하다 보니,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비우고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때 나를 더 단단하게 채울 수 있음을. 매일 명상과 기도, 강의 듣기를 '불필요한 미디어 매체 멀리 하기'로 바꿨다. 폰은 하루 세 번만 볼 테다. 폰을 내려놓아야 하루 중 틈틈이 생기는 시간에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핫딜과 소셜 미디어에서 나를 건질 수 있을 터였다. 폰에서 불필요한 앱을 싹 지웠다. 그러자 폰에도 내 영혼에도 빈 공간이 생겼다. 좋은 것으로 채우는 것은 그다음이다. 빼곡하게 프린트해놓은 건강 식단표를 살짝 밀어 두고 대신 식단에서 설탕 빼기, 가공 식품 없애기, 백미 줄이기 등으로 뺄 것을 좀 더 단호하게 줄여보기로 한다.


셋째, 과정 자체를 목표로 두기로 했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결론을 두지 않기로 했다. '자격증 따고 관련 수익 얼마 이상 만들기'를 가볍게 '관련 분야에 관심 갖기' 정도로 힘을 뺐다. 어차피 알아보고 공부를 시작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될 일이었다. 결과를 목표로 적어 두니 숨이 막혀 흥미가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당장 관심 분야 자격증을 딸 수 있을지, 그것으로 새로운 수익을 만들 수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정보 수집 후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 재운 후 '하루 1시간 자기 계발 시간 가지기' 정도로 수정했다. 컨트롤할 수 없는 결과를 목표로 적어두기보다, 꾸준히 정해진 시간을 계발을 위해 투자하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 삶에 더 큰 변화였다.


더 맑게, 더 가볍게 비워내 본다. 그렇게 가득가득 숨 막히게 채워졌던 신년 목표 노트는 이제 많이 비워졌다. 좀 더 단순하고 깔끔하게. 이제야 눈에 좀 들어온다. 요약하면 "순산과 지속 가능한 자기 계발" 정도가 되겠다. 계획을 여러 차례 수정하다 보니 벌써 한 달의 반이 지났다. 계획을 세우다 지나가버린 보름이 아쉽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기엔 아직 창창한 1월인걸. (전하~ 신에게는 아직 11개월 하고도 반 달이 남아있사옵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그리고 더 현재에 집중할 능력이 생겼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 몸뚱이를 억지로 6시에 일으켜 앉기를 그만두었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한결 아이들에게 짜증이 덜 난다. 아이들 교육에도 학습적인 요소를 너무 두었던 것 같아서 더 가볍게 가기로 했다. 애초에 한국의 조기 사교육 시장이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아이가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던 학생의 나이가 되니 내가 교육 기관에서 가르쳤던 그 커리큘럼 그대로 아이에게 쏟아부어주고 싶었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냥 해야 될 때가 되면 자기가 하고 싶어 할 일이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재밌게 놀고, 건강하게 커라. 잔뜩 주었던 어깨의 힘을 빼었다.


계획 없이 살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일 년 후엔 어떤 결과를 만들겠다!'는 계획과 중압감에 눌리지 않도록, 나를 단단히 세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매 순간의 선택으로 산다. 아쉬움과 만족감이 교차된 지난 시간들은 그대로 두고 지금을 산다. 가볍게 더 단순하게, 오늘을 산다. 지금에 집중해본다. 더 나은 하루가 차곡차곡 모이면 한 해가 또 채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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