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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Jan 21. 2021

아기의 발을 힘껏 물었다. 그리고 숨죽여 울었다.

#한밤의 오열 #제발 자라 #정당방위 #화나지만 안쓰러워

이제 겨우 만 3세인 첫째와 아직 두 돌도 안된 둘째, 연년생 아이들이 꼬물꼬물 자라고 있는데 나는 벌써 3개월 남짓 후면 셋째 출산이다. 막내가 나오기 전에 적어도 아이들의 수면 교육과 배변 훈련이 끝나 있으면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다행히 첫째가 일찍 기저귀를 떼어준 덕에 둘째는 누나를 보고 계속 자기도 변기에 앉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배변 훈련도 거의 완성되었다. 기특하고 고마웠다. 


문제는 수면 교육이었다. 우리는 저상 패밀리 침대로 킹 사이즈 베드 매트리스를 두 개 붙여서 네 가족이 다 함께 자왔다. 특히 아이들 둘 다 엄마 없이 자본 적은 거의 한 번도 없었다. '버퍼 법'이니 '안눕 법'이니 유명한 수면 교육을 시도해보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목 놓아 우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 결국 어린 시절 수면 교육은 실패하고 말았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들이 우는 것은 유일한 불쾌 감정의 표현일 텐데, 다른 이유도 아니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랑 살 붙이고 자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강제로 떼어 놓는 것이 아이들 정서에 뭐가 그리 좋을까 싶었다. 물론 우리 부부도 신혼 침대를 다시 가져오고 싶었고, 넓은 침대에서 방해받지 않고 자고 싶은 맘이 왜 없었으랴. 하지만 나중엔 같이 자자고 졸라도 자기 방 문 걸고 들어갈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면서 그냥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양쪽에 아이들을 다 끼고 안고 부대끼며 불편하고 따스하게 다 함께 잤다. 아이들은 양 팔에 꼭 안고 자고 있으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행복감에 휩싸이곤 한다. 둘째를 낳고 혼자 넓게 누운 조리원 침대가 얼마나 넓고 허전하고 쓸쓸했는지 그 2주를 못 참아 눈물 바람을 했던 나였다.  


그렇지만 이제 곧 셋째가 나온다. 지금 다 붙어 자는 가족 침대에 신생아를 눕혔다간 큰 일 날 일이었다. 워낙 잠버릇이 험한 첫째와 둘째를 신생아와 같이 두는 것은 위험했다. 그렇다고 2~3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울고 젖을 먹여야 할 신생아를 혼자 멀리 떨어트려 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분리된 크립 침대에 눕혀 내가 가까이 자다 오며 가며 먹이고 재우고 해야 할 터였다. 그래서 이제야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첫째와 둘째의 수면 교육을 시작했다. 먼저 같은 방에서 침대의 사이를 띄어놓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이불과 배게를 마련해 아기자기하게 아이들 침대를 꾸며 주었다. 첫째는 엘사 공주 침대라며 신나 했고, 첫날부터 아무 무리 없이 떨어져서 잘 잤다. 문제는 아직 두 돌이 안된 둘째. 예상대로 우리 둘째는 첫날 신나 하더니 막상 잘 때가 되자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기어가서 안아 주고, 재우고 우리 침대로 다시 나오고를 반복했다. 나흘쯤 지나자 자기가 엄마 아빠 침대로 기어와 사이에 당당하게 눕고는 '자장자장'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귀여운 뻔뻔함을 보였다. 다행히 사이에서 재워서 안아서 자기 자리에 눕히면 별 탈 없이 잘 자주 었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하는 '수면 교육'이란 잠들기 전 일정한 루틴 (샤워 후 책 읽기, 옛날이야기 듣기, 자장자장 + 토닥토닥)을 마친 후 엄마 아빠가 없는 방에서 스스로 잠드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우리 침대를 옮겨 안방으로 가지고 가야만 했다. 내 머릿속 가득 '어서 빨리 수면 교육이 완성되었으면 그래서 편히 잘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어젯밤에도 불을 끄자 어김없이 2호는 엄마 아빠 침대로 기어와 사이에 누웠다. 새벽에 일을 가는 신랑은 피곤했는지 금방 곯아떨어졌고, 오늘따라 기운이 넘치는 2호는 곱게 잘 기세가 아니었다. 점점 불러오는 배가 무척 무거웠다. 똑바로 천정을 보고 누우면 숨이 찼다. 옆으로 2호를 바라보며 누워 토닥토닥을 하려는데 자꾸 발로 내 배를 차는 것이 아닌가. 이 아이는 장난이었지만, 종일 지쳐있던 나는 벌컥 화가 났다. "엄마가 배에 아기 있다고 발로 차면 안 된다고 했지!" 하며 반대쪽으로 돌아 누웠다. 그랬더니 발을 들어 내 허리 위에 냅다 올려놓는 것이 아닌가! 이건 내가 컨디션이 좋아도 받아주기 힘든 장난이었다. 더군다나 어제는 특히 힘이 들었다. 숨 차하며 그 와중에 1호에게 옛날이야기를 세 개 만들어 들려주고 (첫째는 창작 이야기를 최소 세 개 이상 들려줘야 잔다.) 그 와중에 허리로 올라오는 거친 발차기를 손으로 계속 밀어냈다. 하지 말라며 매몰차게 밀어내는데, 그게 장난치는 것인 줄 알고 더 신나게 발을 올린다. 나는 또 버럭 "한 번만 더 발 올리면 맴매할 거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또 발이 턱 하니 올라왔고 나는 발을 손으로 힘껏 꼬집었다. 그러자 오히려 장난을 받아준다고 생각했는지 더 신이 나서 까르륵 웃음까지 웃으며 발을 또 올린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순간 이성을 잃었고, 어미는 한 마리 개가 되어 아들의 발을 물었다. 아프면 울고 그만 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그리곤 조용해지더니 발을 더 이상 배 위로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까. 내 신세가 너무 서럽고 잠들지 않는 아이들이 버거워 눈물이 쏟아졌다. 그냥 아무 방해 없이 똑바로 누워서 자려해도 이제 숨이 차고, 허리와 골반이 뒤틀리는 듯 아파 힘든 임산부인데, 하소연할 곳 없는 내 처지가 불쌍해서 눈물이 흘렀다. 아이에게 등을 돌리고 혼자 숨죽여 배게를 눈물로 적시고 있는데 금방 새근새근 둘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갑자기 아이가 안쓰러웠다. 평소처럼 그냥 엄마랑 같이 자고 싶었을 텐데. 엄마가 안아주고 토닥토닥해주길 바랬을 텐데. 배 속에 아기가 있는 것이 엄마의 책임이지 이 작은 아기의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다시 아이를 바라보며 누웠다. 아이는 그 짧은 사이에 천사같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를 아이 침대에 눕히려 들어 안았다.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고 있으니 화를 내고 발을 문 내가 너무 한심하고 미안해서 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이 예쁜 아기, 천사 같은 아기가 안쓰러웠다. 아직 한참 더 안아줘야 할 아기인데, 왜 벌써 수면 교육을 하겠다고 아이를 품에서 밀어내고 있는가. 이 작은 아이를 억지스레 '형' 자리에 앉혀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쓰러워 아이를 안고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한참 울고 코도 풀고 세수를 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개운해졌다. 아이들은 천사같이 예쁘고 귀하다. 하지만 나도 예쁘고 귀하다. 쉴 수 있을 때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야겠다. 끊임없이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내가 무너지고 만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매우 의식적으로 건강하게 잘 살아내야만 했다. 나는 이 아이들의 온 세상이고, 우주인 엄마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은 생명체들이 온전히 제 몫을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단단하게 이 세계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가족들이 깰까 조심스레 자리에 돌아와 누웠다. 그러자 들리는 선명한 목소리 "엄마, 왜요? 어디 갔다 왔어요?" 하는 첫째, 아이고 아직 안 잤구나. 토닥토닥. 다시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잘 자라 나의 아가들. 제발 자라 나의 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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