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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Jan 27. 2021

60대 우리 엄마보다 촌스러운 30대

#인풋과 아웃풋의 불균형 #유튜브 소화하기 #소화불량 #촌스럽게 살기

남들 본다는 유튜브를 이제야 본격적으로 켜보았다. 육아 속에 틈틈이 글을 쓰고 있지만, 제대로 책을 완독 하기도, 집중해서 강의를 듣기도 어려웠기에 인풋 없는 아웃풋이 걱정이 되었다. 어차피 나의 가난한 브런치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학술 정보나, 인문학적 소양을 기대 하시진 않겠지만 적어도 세상의 흐름에 잘 따라가고 있는지 정도를 확인받고 싶었다. 세상이 주목하는 현인들은 어떤 지혜를 전달하는지 들어보고 싶은 목마름이 생겼기 때문이다. 60대 중반인 엄마도 유튜브로 종교 관련 강의를 자주 들으시고, 아빠도 유튜브 영상으로 주식 공부를 하신지 오래되셨다. 나도 유튜브에서 요새 뭐가 유명하다 하면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연년생 집콕 육아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신년 목표 중 하나였던 '유튜브 강의 듣기'. 아이들을 재운 늦은 밤 유튜브를 켜서 관심 있는 주제를 검색해 보았다. 도움이 될 것 같은 영상은 뭐든 보았다. 육아, 인생 목표, 마케팅, 정치, 심리학, 투자, 건강한 음식 장보기까지 여러 주제의 강의 속에서 한참 서핑을 했다. (아니 이거 너무 재미있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미 나를 파악한 것인지,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갖가지 매력적인 제목의 비디오 클립을 내 앞에 늘어놓았다. 사람들이 왜 유튜브에 빠져드는지 이해가 되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났다. 새벽까지 이런저런 정보를 한참 습득하고 나니 정말이지 한결 똑똑해진 느낌이었다. 무언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도 생겼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나는 아이들을 재우고 '세상 공부'를 한다는 이름 하에 유튜브 앞에 앉았다. 이렇게 따라가지 않으면 세상에서 점점 멀어질 테니 이렇게 알아야 할 모든 정보를 알아내고 말겠다는 기세로 온갖 영상을 잡식으로 먹어댔다. 새벽 2,3시는 금방 찾아왔고 그제야 몸을 침대에 뉘었다. 틈틈이 엄마를 찾으며 잠투정을 하는 둘째를 달래며, 무거운 배를 안고 뒤척이다 보면 금방 아침이 밝았다. 분명 영상을 볼 때는 가슴이 뛰고,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지가 넘쳤는데 부족한 잠을 자고 일어나 앉으면 머리가 뿌옇게 흐렸다. 그저 다시 유튜브를 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겨우 이틀 만에 습관이 되어버릴 정도로 유튜브의 중독은 강했다. 볼수록 재미있었고 알고리즘을 랜덤 하게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 내가 뭘 검색해서 무슨 강의를 듣고 있었는지 잊을 만큼 영상 속에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유튜브를 보느라 며칠 간 글을 쓰지 못했다. 인풋이 많으면 더 아웃풋이 멋지고 쉽게 잘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자극적인 인풋은 나를 쉽게 점령했고, 내 뇌는 계속 그 자극을 원했다. 마치 패스트푸드 같았다. 먹을 때 얼마나 맛있게 정신없이 먹는지, 하지만 식도를 타고 넘어간 그 정크 푸드는 내 몸에 고열량을 남기고 영양가 하나 없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떠먹여 주는 재밌는 유튜브 영상들은 내게 찰나의 즐거움을 남기고 제대로 체득되는 정보 하나 없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깨달았다. 아웃풋은 인풋이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쉽게 얻어먹은 음식은 영양가가 없었다. 느리지만 내가 일궈 요리해먹어야 몸에 힘이 되고 살이 된다. 그것이 쌓여야 나는 자란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싶다면, 쉬운 인풋과 쉬운 아웃풋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번거롭고 쉽지 않아도, 결과물이 많지 않아도 스스로 해내야 내 것이 되는 것이었다. 유튜브 속 좋은 강의를 백번 천 번 들어도 그것을 내 생활에 아주 조금이라도 적용하여 내가 꼭꼭 씹어 삼켜 소화시키지 않으면 결코 나는 나아질 수 없었다.


신년 계획에 있었던 매일 '강의 듣기'를 좀 더디더라도 '책 읽기'로 수정했다. 읽어내고 싶은 책은 차고 넘쳤다. 유튜브 강의를 듣고 싶다면 좀 더 규칙을 디테일하게 세우기로 했다. 하루 1시간 미만의 양질의 강의를 하루 한 편만 듣고, 들은 후 강의록을 작성하기로 했다. 유튜브 영상은 희한하게도 듣고 있을 때는 좋지만 듣고 나면 금방 내용이 머릿속에서 증발하고 말았다. 그래서 강의에서 추천받은 책을 읽고, 내 생활에 적용해보는 것까지 해야 비로소 내 삶이 되고 그다음에 아웃풋이, 제대로 된 글이 나오는 것이었다.


2021년 '소의 해'니까. 천천히 우직하게 걸어봐야겠다. 아무리 좋은 것도 많이 먹는다고 즉시 내 몸에서 피와 살이 되진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천천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되새김질까지. 그다음에 내 것이 되면 그때 괜찮은 아웃풋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괜찮다. 세상의 흐름에서 좀 멀어지면 어때. 내 것이 아닌 것을 급히 먹고 체하지 말기로 한다. 나는 아직 30대인데, 촌스럽기가 60대 엄마보다 더 하네. 

매거진의 이전글 신년 계획표를 슬그머니 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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