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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Apr 23. 2021

브런치에 일상을 팝니다.

#어서옵쇼 #저의 구깃한 하루 #브런치에 #곱게 걸어 #나빌레라

이 곳 많은 작가님들이 그렇겠지만, 내게 글쓰기는 직업이자 숨통이다. 일을 하는 공간이고 또 내 것을 쌓아나가는 곳이자 숨 쉬는 공간이다. 소소하지만 글쓰기 강의나, 적더라도 돈이 되는 글쓰기들은 주로 주제가 정해져 있고 독자가 읽고자 하는 것에 맞추어 나가야 하므로 숨쉬기보다는 살짝 숨 막히는 직업에 가깝지만. 적어도 브런치 공간만은 그냥 숨 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래서 아주 몇몇의 친구들 말고는 가족들에게도 이 공간은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유롭게 숨 쉬는 공간에 누군가 나의 존재를 아는 누군가가 내 숨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자연스럽게 쉬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명상과 비슷하다. 혼자 명상을 할 때, 현재 이 순간에 몰입하여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숨 쉬기를 의식 조차 하지 않고 잘 쉴 수 있다. 하지만 옆에서 누군가 '하나 둘 셋,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입으로 천천히 내쉬라.'라고 지시하는 순간 숨을 의식하고 내 컨트롤에 따라오게 하느라 오히려 엇박을 치며 괜히 숨이 가빠지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홍보를 해서 아는 사람을 왕창 끌고 오면 브런치에서 더 글이 잘 팔리겠지 생각해보다가도, 그러면 이 곳이 브런치가 아니라 여느 sns처럼 되어 버릴 것만 같아 그러지 못하고 만다. 


처음에는 이곳에서도 각을 잡고 주제를 정하여 글을 써내려 갔다.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이민과 글 쓰기 자체와 시집살이의 기억과 국제 학교에서의 교육 경력과 늘 관심 있는 인권, 심리학 그리고 문학에 대해서 무언가 성토하고 개운해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뱉어 낸 페미니즘이나 인권, 환경 그리고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재미가 없어졌다. 좀 있어 보이는? 주제에 대해 아는 것 배운 것을 끌어모은 지식을 이리저리 늘어놓는 것은 아무래도 식상했다. 출간했던 책을 이곳에 전시하고 책 판매량이나 더 늘여볼까 고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그러지 않았다. 적어도 이곳은 숨 쉬기 괜찮은 청정 구역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이 곳은 나와 다른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이니, 내 삶 속에서 더 맑은 공기를 찾아 골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점 글은 나의 일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가볍지만 동시에 가볍지 않은 나의 하루였다. 매일 보는 가족에 대해, 육아에 대해, 먹는 것에 대해, 인간관계를 나의 브런치 장터에 늘어놓기 시작하며 나는 더욱더 이 공간이 재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내 사람들에게 이 곳을 알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내는 모든 것이 브런치에 담기고 있으니까. 내가 비춰낸 나의 일상 속 벌거벗은 모습을 그들이 직접 보는 것은 아무래도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멋도 없는 나의 일상을, 친구들을, 가족들을, 먹는 것을 갈아내기 시작하자 더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아와 이곳을 훈훈하게 데워주셨다. 그래서 결국 내 글은 내 일상 속으로 더 가까이 와있다. 내 삶 속에 담겨 있는 가족들을, 지인들을, 먹을 것을 꼭꼭 씹어 글로 뱉어내어 나누어 본다. 그렇게 오늘도 일상을 팔아본다. 브런치 매대에다 하루를 곱게 걸어 전시해본다. 


 "여러분 제가 이렇게 모지리랍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부족함을 근근이 채우며 살아갑니다. 전 그런 가난한 저의 일상이 그럭저럭 웃기고 재밌는걸요. 어쨌든 또 하루는 채워지니까요." 하고 고백하는 편이 영 속 편하다. 그게 나인걸. 가끔은 유튜브와 sns 속에 등장하는 유명하고 젊고 똑똑하고 예쁘고 현명한 엄마이자 사랑스러운 와이프를 보면 어쩜 저리 완벽할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의 몫을 살아내고 있겠지. 아니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겠어. 나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저 그런 괜찮은 하루를 산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그냥 엄마다. 그냥 아내다. 어쩔 수 없다. 내일도 그냥 엄마이고 아내일 거다. 그래도 매끼 열심히 챙겨 먹이고, 유튜브 영상 대신 책을 읽어주는 걸로 교육자 역할을 다하고 있는 양 목에 힘을 주고 생색을 내고 있는 나는 내일도 그냥 그런 엄마일 거다. 억울하면 글을 배워서 직접 읽으렴 허허. 그래도 24시간 재택근무하는 신랑 끼니에 간식까지 잘 챙겨 먹이고, 온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이 좋아 죽겠진 않지만 또 재밌어서 같이 낄낄대는 나란 와이프는 내일도 그냥 그런 웃기는 아내일 거다. 억울해도 어쩌겠어 이미 애가 셋인걸. 그래도 그는 내가 섹시하다 했다. 남들 눈에 백 번 매력 없는 동양인 동네 아줌마라도 상관없다. 집에서 사랑 듬뿍 받아 난 얼굴이 오늘도 기름으로 반질반질하다. 아니 안 씻어서 반질반질 한 건가.


오늘도 구깃구깃한 일상을 가족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밤 중에 솔솔 풀어내어 브런치에 휘휘 둘러 걸어 본다.

어서 오세요, 저의 가난한 일상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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