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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아 Feb 17. 202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기력함

#육아 우울 #무기력증 #의욕 저하 #회의감 #피로감 #어지러움

가끔은 멍해요.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며 그냥 인생이 다 부질없게 느껴져요. 매일 매 순간 목숨보다 귀했던 아이들도 일순간 내 인생을 가로막는 짐짝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리 열정적이었던 글 쓰는 일도, 상담도 뭐하러 하고 있나 싶기도 해요. 대체 내가 뭘 안다고 지껄이나 생각이 들면 말도 글도 다 닫아버려야 할까 봐요. 그런 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또 이 글을 쓰고 있을까요,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또 아이를 가진 걸까요. 이런 생각이 드니 뱃속의 아이에게도 그리도 자라는 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해지도 하지만. 그리고 누군가는 부모 자격도 없이 무슨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고 말하느냐 물을 것도 같지만... 그냥 하소연이니 잠시만 들어주실래요. 


요즘 들어 부쩍 감정 기복이 심해졌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울컥 눈물이 나요. 맥락도 없고 이유도 참 뜬금없어서 꾸역꾸역 참아보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잘 안돼요. 뭐랄까. 몸뚱이는 여기 있는데 마음은 이 곳에 사는 사람 같질 않아요. 아니 생각해보면 진심으로 슬프지도 진심으로 웃기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소리 내서 웃거나 우는 일이 어쩜 정말 감정이 없이도 가능한 일이구나 싶기도 해요. 예전에는 아이들을 보며 깔깔 웃기도 하고, 육아를 하다 힘들면 화가 나기도 했었는데, 이젠 마음에서 화를 낼 힘도 소리 내어 웃을 의지도 없어요. 그냥 그래요. 이상하게 속이 꽉 막힌 듯 숨이 잘 안 쉬어져서 종종 숨을 크게 몰아 쉬곤 해요. 그렇게 숨을 뱉고 나면 문득, 공허해요. 춥진 않지만 온 몸에 온기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몸속의 피가 다 빠져나가고 빈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 같달까요.


낮엔 계속 졸리고 자고 싶지만, 막상 아이들이 다 잠든 밤이 되면 잠을 쉽게 청하질 못해 뒤척여요. 이렇게 잠들면 이대로 우리 가족 모두 아무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가끔 해요. 이게 '죽고 싶다.'라는 의미와는 다른 것 같아요. 막 너무 죽고 싶게 힘들다거나 죽고 싶게 괴로운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누가 너무 미워서 누굴 죽이거나 아니면 확 내가 죽고 싶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내 삶의 책임이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 놓아 버릴 자신도 없는데, 벌여놓은 모든 것을 끝까지 지고 갈 힘은 없고 하지만 하루하루는 계속 살아내야 하니까. 사는 것이 지루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내 의지로 이걸 끊을 힘은 없으니, 누군가 삶의 절대자가 이제 그만 해도 된다, 허락해주신다면 좋겠다. 그런 상상을 해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냥 좀 지친 것 같기도 해요. 힘을 내야지 웃어야지 생각하지만 어떻게 하면 힘이 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하루 종일 우울한 것도 아니에요. 그것보다는 그냥 아무것에도 의지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가치도 의미도 없어서 의지가 생기질 않아요. 삶이 언제 끝나는지 어떤 순서로 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또 백세시대라 생각하면 제 나이는 아직도 너무 갈 길이 머네요. 20대의 열정적인 혼란과 방황과는 또 다른 종류의 무기력함인 것 같아요.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해요. 집 안에서 늘 만나는 성인은 오직 신랑뿐이니까. 그밖에 사회적 자극이 하나도 없어서 일까요. 안 그래도 경력이 단절되고 목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 나온 운동복에 배어있는 음식 냄새가 점점 익숙해지는 제 모습이 종종 한심하게 가끔은 비참하게도 느껴져요. 한국에서는 그래도 그런 친구들이 주변에 많으니까, 나의 화려했던 시기를 기억해주는 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를 다 잡으려 노력해왔어요. '나는 육아를 선택한 것이다. 아이들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다시 일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았던 과거가 있다. 돌아가려면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기죽지 말자.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끊이없이 되뇌어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맥도널드에서 커피 한잔을 시키면서도 긴장하는 내 모습을 보면 너무 부끄러워 사라져 버리고 싶어요. 분명 저는 외국계 기업에서 제일 높은 외국인 임원과 함께 미팅도, 해외 출장도 다녔었어요. 심지어 한국인 인턴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었는데. 어쩌다 전 이렇게 작아져버린 걸까요. 언젠가 이 나라에서 자라 날 저의 아이들이 절 부끄러워하면 어쩌죠.


지금 여기가 집인데 자꾸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하루 종일 있지만 이제 진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아니 단순히 향수병은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 가고 싶다, 친정집에 가고 싶다, 누가 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아니에요.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어요. 혼자서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고 싶은 만큼 누워 있을 수 있는 내 집에 가고 싶어요.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있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살면서 언젠가 내게 그런 집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네요. 전 지금 집에 있는데 왜 자꾸 집에 가고 싶을까요. 저 집에 보내주세요. 제발 이제 집에 좀 가고 싶어요.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고, 규칙적으로 건강하게 생활하고 운동을 하고, 햇볕을 쬐고, 스트레스를 잘 풀어내라고 그리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라 그런 조언들을 누군가 해주겠지요. 괜찮아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너무 걱정 말아요. 이러다 말겠죠. 제 안의 우울이 가끔은 짙어져서 이렇게 정신을 뒤흔들어 놓으면, 흔들려 탁해진 마음속 먼지들과 함께 부유하다 아래로 아래로 함께 가라앉는 그런 날도 있는 거겠죠. 이런 글엔 함부로 결론을 내기도 어렵네요. 아니 결론이 어딨어요 그냥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또 살아내야 하는걸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축 처져 물에 젖은 솜이불같이 무거운 몸뚱이를 바닥에 뉘면서 차마 말로는 뱉지도 못할 소리를 속으로 되뇌어봐요. 다음 날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 사는 게 살만하게 느껴질 텐데 다음 날도 똑같을 것이라 생각하면 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나니네요. 괜찮아요 저는. 우울증은 아니에요. 죽고 싶은 건 정말 아니에요. 그냥 이대로, 이대로 조금만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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