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의 근사한 양생8
어느 날 한 여성이 약국에 들어왔다. 이 동네에 이사 와서 이반 일리치 책 모임이 있나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일리치약국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왜 일리치에 관심이 있었을까? 나중에 물어보니 20대부터 읽어온 <녹색평론>에서 여러 번 접했고, 농사 공부를 할 때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일리치 사상을 통해 환경이나 마을이란 주제로 뭔가 이어질 것 같아서 공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 당장은 일리치에 관한 세미나가 없었던 터라 양생 세미나를 같이 하자고 권했다. 그녀는 우리와 한 학기 동안 ‘마음’에 관한 공부를 했다. 함께 공부하면서 보니 그녀는 우리에게 낯설면서도 좋은 자극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닉네임은 아낫이다. 아낫은 환경과 농사에 큰 관심이 있다.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한다. 종이를 아끼기 위해 가능하면 e북을 보려고 노력하고 발제문도 인쇄하지 않고 태블릿으로 본다. 아낫은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제대로 친환경 농사를 배웠다. 올봄 친구들이 약국 앞 데크에 각종 채소 모종을 심을 때 그녀는 오이 모종 두 그루를 가져와 심었다. 나중에 끈을 척척 몇 번 치니 오이는 알아서 끈을 감고 올라갔다. 어디선가 뜯어온 쑥잎으로 오이 옆 흙을 덮어서 수분의 증발을 막았다. 농사에 대해 1도 모르는 내가 보기엔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난 내심 오이가 열리길 기대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열악한 데크 화분에서 오이는 열심히 자랐고 주렁주렁은 아니지만 한 개씩 열매를 내주었다. 갓 따서 먹는 오이의 맛은 아주 좋았다.
지금 아낫은 양생프로젝트에서 에코프로젝트로 넘어가 ‘퍼머컬쳐(Permaculture)’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다. 저번 시즌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녀의 에세이를 들었다. 자신의 신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또 고맙다고 떡을 두 말이나 해서 공동체에 선물했다. 떡을 먹고 있자니 올 초 아낫과 불면증 때문에 상담했던 일이 떠올랐다. 빡빡한 직장 스케줄로 밤늦게 먹게 되는 식사도 문제였지만 낯선 동네에서 1인 가구가 갖는 고립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1인 가구였던 내가 느꼈던 고립감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양생프로젝트 이후 끊긴 공부를 다른 세미나에서라도 이어가길 권했고 그녀는 에코프로젝트에 접속했다. 이제 아낫은 세미나가 없는 요일에도 종종 약국이 있는 파지사유에 온다. 어느덧 우리는 편안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일리치가 맺어준 친구는 그녀만이 아니다. 하루는 약국에 택배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호박, 보리쌀, 고추, 감자와 함께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희경 선생님(문탁샘)의 『일리치 강의』를 읽고 일리치약국과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남 강진에서 ‘일리치 농장’을 가꾸고 있는 초로의 새내기 농부”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세상에! 일리치 농장이라니! 약국 앞에 일리치를 붙여 이름을 지은 우리지만 일리치 농장이라는 이름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보내 준 농작물은 문탁 식구들의 점심 재료가 되었다. 보답으로 우리가 만든 쌍화탕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그만 택배 박스를 버리는 바람에 못 보냈다. 언제고 다시 연결되길 바란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한 적이 있다. 일리치가 살아있다면 일리치약국을 좋아했을까? 일리치 사상을 약국에 잘 녹여내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가끔 이 질문에 답할 자신이 없어진다. 약국이 밥벌이 현장으로 매몰되고 있는 것 같아서. 또 내 입에서 똑같은 소리만 나오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일리치약국이라 일리치의 사상을 의료에 집중해서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의료에 국한되지 않게 ‘일리치’라는 이름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이름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낯선 접속들이 교차하는 약국에서 우리는 어떤 다른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 접속들이 우리를 다르게 만들 거라는 기대를 한다. 그리하여 여러 담론이 촉발되는 약국이 된다면 ‘일리치’란 이름에 누는 되지 않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