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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약방 Sep 06. 2022

마을약사 '되기'

둥글레의 근사한 양생 1

  일리치약국을 연지 어언 1년이 되어간다. 마을 건강 플랫폼 일리치약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는데 정겹고, 문턱이 낮아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약국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또 건강에 대한 상담을 여유 있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약국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마을’이라는 말이 좀 무색하게 동네 사람들은 우리 약국의 존재를 아직 잘 모른다. 보통 약국의 입지 조건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큰길에서 떨어져 있고, 옆에 병원도 없고, 아주 작고, 간판도 눈에 별로 안 띈다. 약품 도매상 배송 담당자들마저 첫걸음엔 잘 찾아오지 못한다. 


  물론 내가 속한 인문학 공동체(문탁네트워크) 친구들은 자주 들러 상담도 하고 영양제도 사고 어쩌다 처방전도 들고 온다. 일리치약국의 매출의 대부분은 이 친구들 덕분이다. 가끔 다른 인문학 공동체에서 학인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마을 NGO 단체들에서 종종 들르시는 분들도 있다. 지나가다 들어오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약국이라는 걸 알아도 선뜻 들어오지 않거나 들어와도 쭈뼛거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약국처럼 진열된 상품들이 많지가 않아서 낯설어하고 그 낯섦이 주는 불편이 있는 거다. 


  상품이 많지 않은 건 작은 약국이어서만은 아니다. 인문학적인 양생을 생각하는 약국이니만큼 책들에 공간을 얼마간 내주었고, ‘갬성’ 돋는 약국 분위기를 위해 여러 약이 서랍 속에 있어서 잘 안 보인다. 무엇보다 나는 과잉의료, 과잉투약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과잉하지 않고 알맞게 약을 주려고 고민한다. 약사인 친구들은 이런 내 생각이 좋다면서도 뭐 먹고살 거냐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래도 약을 더 들여놔야지!” “처방전을 많이 받는 게 좋을 텐데…” “월세 낼 정도는 버니?” 등등. 


  사실 내 마음 안도 고요하지 않다. 월말에 마감하고 나서 다음 달이 시작되면 바로 매출이 걱정된다. 지난달은 어찌어찌 지나갔지만 이번 달은 어떨까? 하루살이가 아닌 한달살이이다. 일리치약국이라는 현장에서 ‘양생’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나를 포함 세 명이 일과 공부를 한다. 이를 통해 세 사람의 안정적인 자립을 바라고 있지만, 아직 어렵다. 친구들과 일도 공부도 같이하다 보니 관계의 접점도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쿨하지 못할 때가 많다. 돈 쓰는 일에도 쪼잔해진다. 게다가 약국이라는 사업자가 되니 따라오는 세무, 근로, 보건 등 서류 업무도 많아서 신경이 곤두선다. 전전긍긍 한달살이에, 알바 약사로 일하며 공동체에서 공부하던 때가 좋았다는 푸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일리치약국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여유’가 있다. 가게처럼 상품만 사러 오는 사람이 적어서, 신속함이 필수인 처방조제 전문약국이 아니어서, 예약된 상담을 느긋이 하고 있어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해서 누릴 수 있는 여유다. 공부하는 양이 많을 땐 주경야독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지만 어쨌건 공부할 짬도 낼 수 있다. 작년 연말 1년 공부가 끝나고 그야말로 유유자적 약국에서 뜨개질을 했다. 한 친구가 약국에 손님이 없어서 뜨개질한다며 혀를 차더니 홈페이지에 내 사진을 올렸다. 그 후 갑자기 쌍화탕 주문이 늘어서 놀랐다. 우리의 먹고살 걱정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영양제를 먹기 시작한 친구들, 월세를 분담하며 공간을 같이 운영하는 친구들, 점심을 함께해 먹는 친구들 덕에 솔직히 굶어 죽을 일은 없다. 그 덕에 약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저렴하게 약을 줄 수 있고, 나도 일리치약국의 비전을 향한 길을 갈 수 있다. 그런데 웬 걱정을 그렇게 했을까? 


  고미숙 선생님 신간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에는 “지금 선진국의 보통 청년들이 누리는 부의 정도가 프랑스의 루이 16세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말이지 ‘부’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가 보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풍요를 잘 못 보고 있는 내가 보였다. 약국 1년 경영 끝에 수입구조가 뻔하니 보였다. 당분간은 내 수입에 큰 변화가 없겠구나… 내 생활을 조절할 수밖에! 비장하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비장함이 뻘쭘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마을 약사가 맞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마을 약사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고미숙 선생님의 책에서는 노동시간과 화폐를 조절한다면 자유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리치약국을 열고 우리는 스스로 노동시간과 임금을 정했다. 또 친구들과 일상을 영위하며 우정을 기른다. 어쩌면 ‘마을’은 ‘자본’과는 거리가 가장 먼 곳이 아닐까? 마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건 ‘고르게 가난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진짜 ‘부’라고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식으로 이틀 약국 알바해서 번 돈보다 5일 마을 약사로 일해서 번 돈이 적다. 하지만 더 풍요롭다. 9년 전 잘 나가던 제약회사를 때려치우고 문탁네트워크에 왔을 때 내가 바랐던 풍요가 이런 것이었다. 그때의 상상 속 풍요는 ‘흔들림 없는 편안함’이었지만 현실 속에 그런 풍요가 있을 리 만무하다. 흔들림 속 ‘풍요’가 가져다준 ‘마을 약사’라는 타이틀이 좋다. 쿨하지 않으면 어때. 마을 약사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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