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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너모 Oct 11. 2023

내 인생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나에게 ‘화’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다.

특히, 결혼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화는 더더욱 나에게 풀기 어려운, 게다가 항상 나에게 자책과 죄책감을 동반하는 가장 피하고 싶은 감정이 되었다.     


3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기 전, 나는 그 유명한 화병에 걸렸었다.

우리나라 며느리들이, 엄마들이 그렇게 많이 걸린다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그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다행히도 그 화병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결혼과 육아 이후에 오는 화병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요즘은 아이들이 화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니 나쁘게 인식하지 말고 스스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화를 내는 것은 나쁜 것이고, 화는 참아야 하는 것이며, 화를 발산하는 것은 너의 성격이 지랄 같아서라는 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내 부정적인 감정도 조절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의 감정 교육을 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통 이럴 때 ‘너나 잘해’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나부터 잘해야 할 텐데 말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 때문에, 나의 부족함으로 아이가 나처럼 감정 조절이 어려운 사람이 될까 두려워할 지경이 되었다. 특히 미운 네 살을 시작으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짜증을 내고 울며불며 방방 뛰는 아이를 보면서 내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같이 화를 내면 안 되는데,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되는데 어느새 내 마음은 화산처럼 끓어오르고 펑 터지고 만다. 화는 한번 내기 시작하면 아주 작은 일에도 계속해서 터지고 마는 묘한 습성이 있다. 육아 관련 서적을 읽고 부모 교육을 들어도 그 순간엔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의 화는 좀처럼 잠재우기가 힘들다.     


오늘도 아이에게 화를 냈다. 밤 기저귀를 떼고 어쩌다 이불에 오줌을 싼 날. 아침에 일어나 원래 입고 있던 분홍색 바지가 아닌 다른 바지를 입고 있음을 확인한 아이는 갑자기 큰 소리로 울면서 분홍색 바지를 가져오라 떼를 썼다. 분명 어젯밤 갈아입히면서 대화했는데 잠에 취해 있던 아이는 기억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갑작스러운 울음 소동에 ‘딸깍’하고 나의 화 버튼이 눌렸다. 바둥대며 소리치고 울며 바지 갖고 오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도 고함을 치며 젖은 바지를 던져줬다. 아이는 오줌 젖은 바지를 갈아입더니 어린이집 안 간다며 소리 지르고, 나도 같이 계속 소리를 질렀다. 결국, 서로 “엄마 미안해, 사랑해”, 나도 “미안해, 사랑해”로 끝난 짧지만, 강렬한 아침 소동 이후,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니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또 반복이다. 난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그냥 참았으면 될 텐데, 아이가 혹시 상처받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상황을 곱씹었다. 그리고 자책, 또 자책. 그러다 한편으론 내가 힘드니까 어쩔 수 없이 화가 나는 거라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감정이 차올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결국 문제는 근본적으로 나의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어릴 적부터 이어져 온 감정인 것도 안다. 반항심도 심했고,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고, 이해가 안 되는 건 끝까지 따지고 들었던 나의 어린 시절은 화를 잘 내는 아이, 화를 못 참는 아이로 낙인찍혀 엄마에게 참 많이도 맞고 자랐다. 그 덕분인지 동생은 맞는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화를 잘 참는 아이로 자라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 때문에 그렇게 돼서 미안하다 해야 할지, 그렇게 돼서 나한테 고마워하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화를 내고 나면 뒤따라오는 우울한 기분은 언제나 적응되지 않는다.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방법론에 열까지 숫자 세기를 해보거나 심호흡을 해보기도 하지만 폭발하는 감정을 좀처럼 주체할 수가 없다. 

보통의 나는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잘 웃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화도 잘 안 낼 거 같다 하는데, 실제의 나는 그렇지 않다는 괴리감 때문에 더욱 괴롭다.      


화를 내는 모습은 내가 싫어하는 모습, 미워하는 모습이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화내는 나도 나이고, 살면서 화를 내는 건 당연하단 걸 말이다. 하지만 자꾸만 내 마음은 그렇게 다독여지지 않는다.

나는 화라는 감정을 잘 다루고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변화시킬 방법을 모른다. 알파벳이라도 알면 모르는 영어단어를 찾아서 공부할 테고, 숫자라도 알면 덧셈이라도 공부해 볼 텐데 이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알 수 없으니, 이것은 나에게 인생 최대의 난제이다.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 지금껏 내 방식대로 잘 해결해 가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 ‘화’란 건 정말 정답을 알 수 없다. 해답을 찾는 날이 오면, 그런 날이 있다면 내 마음에도 진정한 안정이 찾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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