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는 아빠에게 물려받은 반곱슬이다. 엄마와 언니는 숱 많은 생머리. 아마도 젊은 시절 엄마는 본인 것과는 다른 내 머리카락을 어떻게 손질해주어야 좋은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빠의 경우에는 적당한 곱슬끼가 근사하게 어울렸던 것 같은데 나는 산만하기만 했다. 그래서 엄마는 어릴 적 내 머리를 뽀글하게 파마시켜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야속하다. 그렇게까지(?) 할 건 아니었는데…. 빛바랜 사진 속 어린 나는 삼각김밥 모양의 머리를 하고 있다. 라지 사이즈 삼각김밥.
엄마는 언니에게 양갈래로 머리도 땋아주고 댕기머리도 해주었는데 나는 영 해주질 않았다. 부러운 마음에 나는 왜 안 해주냐고 물어보니 내 머리카락이 가늘어서 할 수가 없단다. 두둥. 내 머리카락 뭔가 좀 별로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구나. 구김 없던 내 마음의 모퉁이가 한 번 접혔다. 그래도 운동회 날에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멋을 부리고 싶었고, 엄마를 졸라 양갈래 땋은 머리를 했다.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면 아마 처음 양갈래 머리를 한 것 같은데, 그날은 기분이 진짜 진짜 좋았다.
어린 시절 좋아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서는 주인공 에리얼의 머릿결이 바닷속에서도 찰랑였다. 바위에 기대어 손으로 넘기면 차르르 떨어지는 젖은 앞머리. 그 매력적인 분위기를 흉내 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내 머리카락은 앞으로 쏟아지지 않았다. 아니, 헤어라인을 따라 휘어져 자라고 있었다. 곱슬머리인의 비애. 흑. 완벽한 머릿결을 갖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영영 가질 수 없는 걸 욕망하게 되어버렸다.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매직 스트레이트를 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어느 정도 만족스러워졌는데, 이상하게 자신감은 생기진 않았다. 자신감은 완벽한 머릿결에서 나오는 줄 알았는데. 매직 스트레이트로 펴진 머리카락에 그런 건 없었다. 본래 내 머리카락을 숨기고 생머리를 흉내 내는 중이라 다시 뿌리부터 곱슬거림이 올라오면 곱슬머리 티가 날까 신경이 곤두셨다. 그래도 쭉 생머리 흉내를 포기 못 하고 살았다.
우연인지 생머리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여태껏 사귄 사람들은 다 생머리였다. 마치 조성진 피아니스트 같은 머리.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헤어스타일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의 서정적인 연주를 좋아합니다… 갑자기 왜 존댓말일까요…) 근데 대반전. 결혼은 어쩌다 보니 곱슬머리 사람과 했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땐 머리가 너무 짧아서 못 알아봤는데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착하고 다정한 심성에 길들여져 버려서, 고작 곱슬머리라고 헤어질 순 없었다. 나보다도 심한 곱슬인데 자기도 반곱슬이란다. 아니거든? 반곱슬은 내가 반곱슬이지.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구불거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반’곱슬이라고 하면서 생머리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다고 정의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난 진짜 ‘반’곱슬이라고.
임신 때부터 걱정했다. 남편 닮아서 아가들 곱슬이 심하면 어떡하지. 일부러 탓하듯 남편 앞에서 걱정했다. 내 머리카락 정도는 괜찮지만 딸들이 당신 머리카락 닮으면 싫어할 것 같다고. 키 큰 남자와 결혼한 내 친구는 남편에게 자기 삶을 볼모로 잡히고 자식에게 키를 물려준다 하였는데, 난 나 편한 인생 살자고 딸들에게 곱슬머리를 물려주게 되었네.
임신하고부터는 머리에 어떤 파마도 안 하고 있다. 그래도 잘 말리기만 하면 부스스하지도 않고 곱슬거림도 덜 하다(노화일 수도 있을까…). 그 요령이 없어서 그렇게 머리에 파마를 해가면서 많은 돈을 써버렸다. 구겨진 종이 마냥 의기소침해졌던 마음이 고데기로 빳빳하게 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매직 스트레이트는 또 안 할 것 같다. 아가들이 집에서 엄마의 자연스러운 곱슬머리를 보고 자라게 하고 싶다. 곱슬머리가 콤플렉스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 뽐낼 수 있는 개성이 되면 좋겠다. 미용실은 머리의 곱슬끼를 없애러 가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도전해보러 가는 곳이 되길 바란다. 당당한 곱슬인(人) 가족! 엄마가 곱슬머리 관리 노하우를 잘 전수해 줄게. 그래도 곱슬머리가 원망스러울 땐 다 같이 아빠를 째려보도록 하자. 원하면 미용실 가서 매직할 용돈도 달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