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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를 임신하다니

by 무느무느

임신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막중한 부담감. 쌍둥이 임신이라니. 내 체력으로는 아이 하나도 간신히 키울 것 같은데 쌍둥이라니. 두 번의 유산을 겪고 생긴 소중한 아이였지만 원망과 억울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10년 넘는 사회생활 짬빠로 인생은 어차피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는 걸 충분히 잘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 것은 임신이었다. 처음 드는 질문은 '왜 안 생겨?', 그다음은 '왜 유산돼?' 그리고 그다음은 '쌍둥이라니?'


임신을 할지 말지도 엄청나게 고민해 온 나인데 갑자기 두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쌍둥이 임산부에게 따라오는 자연임신 여부를 묻는 질문도 매우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이미 출산과 육아를 겪은 분들이 축하 대신 '쌍둥이를 키워야 하니 얼마나 힘들꼬' 하고 염려를 먼저 내비치는 것도 싫었다. 저기요, 당연히 힘들긴 하겠지만 내가 위로를 받을 상황은 아니잖아요... 임신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참을 인을 마음속에 새겼는지.


심리적 스트레스와 더불어, 막달이 되니 신체적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초반에는 단태아 임산부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임신 후기로 갈수록 배에 실리는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허리가 아파서 발걸음 떼기도 힘들었고, 배 무게 때문에 똑바로 누울 수도 없었다. 자면서 뒤척이지도 못하니 불편한 자세 때문에 잠도 3~4시간마다 깼다. 집에서는 바퀴 달린 책상 의자에 앉아 의자를 끌고 다니며 돌아다녔다. 다행히 남편이 하루 종일 같이 있어줄 수 있었기에 남편이 내 수발을 들어주었다. 마냥 시키는 입장이 되니 미안하기도 하고, 집안일이든 뭐든 직접 해버리면 속 시원한데 앉아서 말만 하고 있으려니 답답해서 또 스트레스였다. 출산이 다가올수록 준비할 게 많아 초조해지는데 내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없으니 화도 났다. 남편에게 성도 냈다가 하소연도 했다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


쌍둥이 출산에 노산이라 제왕절개 하기로 되어 있었고, 수술 당일은 새벽같이 병원에 입원 수속하러 가야 했다. 임신 막달에 계속 잠을 잘 못 잤기 때문에 비몽사몽 한 상태로 얼떨떨하게 병원에 도착했다. 안내받은 대로 몇 층 수술실 어디로 갔다. 갑자기 산모는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준비하고 남편은 밖에서 대기하다 수술이 끝나면 병실 안내를 받으라 한다. 24시간 붙어서 내 손과 발이 되어주고 하염없는 하소연을 들어주던 배우자랑 갑자기 떨어져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이제 우리 둘만이 지내던 세계는 종료되고 아기가 나오는 건가. 갑자기 잠이 확 깨면서 처음 유치원에 등교하는 어린아이처럼 낯설어져서 눈물이 뚝뚝 났다. 간호사 선생님이 옆에 계신데 다 큰 어른이 울어서 좀 부끄러웠다. 남편이 안아주며 마지막 위로를 해주고 우리는 분만센터 자동문 앞에서 헤어졌다.


결혼생활 5년 동안 남편과 둘이서 재밌게 잘 지냈다. 이제 갑자기 가족이 두배가 되어서 네 명이 되었고, 둘만 있을 때 부르던 별명이나 이상한 애교 같은 것은 왜인지 안 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귀여움을 담당하는 존재가 둘이나 생겨버려서인 것 같다. 아이가 한 명이었으면 더 쉬웠을 텐데 하는 생각도 가끔 들고 몇 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둘이라 힘들다. 앞으로 계속 힘들게 뻔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둘이 동시에 나온 아이들을 절대 탓하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하나였으면 더 잘해줄 수 있었을 텐데'하고 나를 자책하는 일도 줄이려고 한다. 두 번 유산되었기에 그 아이들이 한꺼번에 와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삼십 몇년의 인생 중에 난도 높은 순간들이 꽤 있었지만, 한층 어려워진 심화 버전으로 우당탕탕 살아가게 된 거라고 마음먹는다. 어차피 아이 둘 키울게 아니었으면 다른 일로 또 힘들었을 거야.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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