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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느무느 Nov 03. 2022

생존에 대한 이야기

너무 푹 잔 것 같은 기분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시간은 새벽 6시가 넘었을 때였어요. 보통은 새벽 4-5시에 남편과 교대하는데 오늘은 왜 안 깨웠지 의아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남편은 깨어있었습니다. 아가들은 그럭저럭 잘 잤다고 합니다. 육아 인수인계를 간단히 하고 남편에게 어서 자라고 손짓하는데 비몽사몽 한 보통 때와는 다르게 남편의 정신이 또렷합니다. 그는 서둘러 자러 가지 않고 저를 붙들고 이야기합니다. “간밤에 이태원에서 사고가 크게 났어…” 차분하지만 떨리는 목소리에 저도 정신이 들었어요. 새벽에 깨서 뉴스를 접한 남편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창밖을 같이 내다보면서 우리는 참담한 마음에 서로 부둥켜안았습니다. ​


사고가 발생한 거리는 저도 너무 잘 아는 골목이었습니다. 저뿐이겠어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늦게까지 밤을 보내는 수많은 청춘들이 오갔을 거리지요. 그 거리는 시민의 것이고 시민의 안전과 편리를 도모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안전을 의탁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거리를 건너기 위해 내가 직접 신호등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요.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일어난 것은 명백히 공공 안전을 위해 힘써야 할 그들이 제 할 일을 다 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어째서 이런 비통한 일이 발생했는지, 어떤 인과관계로 그 거리가 방치되었는지 하나씩 책임을 물어가며 밝혀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책임자라는 사람들은 사과하기를 미룹니다.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올까 눈치싸움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면 희생자들은 모두 개인 과실로 허망하고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걸까요.


​그날 그 자리에 왜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몰렸는지 이해 못 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선입견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핼러윈 파티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안타까운 죽음 앞에 드는 감정은, 같은 동료 시민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고 침묵하는 책임자들은 이 오해와 선입견이 오히려 반가운 것 같습니다. 그들이 명확히 진상을 규명해 사고의 원인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일부 시민들은 이번 사고의 책임이 개개인에게 있다고 굳게 믿어버리는 것 같거든요. 손가락질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희생자 뒤에 숨어버리다니 비겁합니다. 가까운 사람들 중에도 이런 비겁함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슬픔을 마음 편히 나눌 수 없는 상황에 또 화가 납니다. 핼러윈을 즐기러 나간 이들의 마음이 언젠가 이태원으로 향하던 저의 마음과 다르지 않기에 더 가슴이 아픕니다. 무언가를 향유하려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원래 엉뚱한 상상을 잘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상상도 많이 합니다.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혹은 전쟁이 난다면 내 명은 그리 길지 않았을 거야’ 하고 생각해 보지요. 아마도 무의식 중에 나는 그저 우연의 연속으로 여태 살아있구나 하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혼 전 혼자 살 때였습니다. 한밤중에 술 취한 낯선 남자가 제 집에 들어오려고 현관문 번호 키를 마구 눌러댄 적이 있어요. 112와 119에 연이어 신고하고 어느 쪽이든 빨리 출동하길 바라면서 장우산을 손에 꼭 쥐고 울면서 숨죽이던 때. 혹시 경찰은 도착하지 않고 현관문이 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는 공중 화장실에서 누군가 제 뒤를 따라 들어오더니 옆 칸으로 후다닥 들어갔어요. 기분이 이상해 무심결에 위를 올려다보니 그 남자가 옆 칸에서 절 내려다보고 있었을 때의 소스라침을 잊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단순히 몰카범이 아니라 흉기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뉴스에서 접하는 각종 사건사고에 기시감이 듭니다. 신분제도 없고 전쟁 통도 겪지 않았지만 제 삶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일부에겐 도시괴담 같은 일들을 누군가는 동시대에 직접 겪고 있어요. 사과를 미루는 책임자들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제 삶이 언제든 종료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무의식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은 저의 무의식을 옅게 하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요.


​저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생각을 저보다 더 어린 세대들은 결코 갖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어린 여성들이요. 누구든 재난과 재해에서 안전하여 이런 생각이 드는 제가 이상한 아줌마가 되는 사회면 좋겠어요. 길거리든 클럽이든 일터든 공중화장실이든 어디에서도 모두가 안전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참사 희생자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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