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 싫었지만 PS(피곤한 스타일)...

by 무느무느

9월까진 덥겠지 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공기가 바뀌긴 했다. 뒤돌아서면 애들 손톱 깎을 때가 되었고, 발도 좀 더 큰 것 같다. 화를 낼 때 하는 말도 조금 더 정교해져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할 것 같아 여유가 있을 때 블로그 창을 연다.


우리 집 애들은 짜증이 많은 편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뭐든 열심히 한다는데(심지어 친구들에게 훈수도 둔다는데), 엄마 아빠 앞에서는 툭하면 심통을 부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짜증을 부린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짜증 내는 4살이 또 있을까? 잘만큼 자고 일어나도 아침이 다가오는 게 싫은지 눈을 감은 채 베개와 인형을 손에 잡히는대로 집어던진다. 나쁜 꿈을 꾼 거라고 하기엔 거의 매일 그러는 것을 목격한 끝에, 마침내 기질적으로 예민한 애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크느라 힘든가? 그래도 엄마 아빠를 때리거나 함부로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보통은 훈계를 하지만, 잠결에는 훈계도 귀에 안 들어올 것 같아 아침엔 그냥 당하고만 있는다. 아이가 휘두르는 팔에 한 대 얻어맞으면 출근하는 길에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이 작은 아이의 질풍노도는 언제 끝나려나. 아이가 큰다는게 성질머리가 다듬어지는 거구나 생각한다.


사람 많은 곳에서 악을 쓰며 울 때 제일 난감하다. 아이 키울 때 제일 듣기 무서운 말은 '민폐' 일 거다. 내가, 내 아이가, 우리 가족이 민폐가 되면 안 되는데. 하지만 아이는 이런 내 근심 따윈 알 바 없고 자기가 주우려고 했던 사탕을 내가 주워주었다고 악을 쓰며 운다. 울음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걸 보면 내가 억울해진다. 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다고 울면서 화풀이하나. 사탕이 떨어졌다고 울고 있길래 도와준 건데... 네가 주울 거라고 말을 안 하면 난 모르잖아! 다급한 마음에 변명인지 반박인지를 내뱉으며 아이의 울음을 달래려 하지만 별 수 없다는 걸 안다. 아이를 들쳐안고 빠르게 자리를 피하는 것만이 상책이다. 하지만 어젠 만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악을 썼더랬지. 귀는 찢어질 것 같은데 당장 내릴 수도 없고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악다구니를 몇 번을 마주하고 나면 저녁 차리면서 맥주 생각이 난다. 최근에 출시된 테라 라이트가 칼로리도 낮고 부담 없이 가벼운 맛이라 저녁식사 때마다 반주로 맥주를 그렇게 마셨다. 하도 마시니 쌍둥이가 엄마 아빠 마시는 게 뭐냐고 물어봐서 어른들만 먹는 물이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자기도 물 한 모금 마시고 "캬~" 한다. 맥주 한 모금에 화가 좀 가라앉아서인지 너무 웃겨서 깔깔 웃었는데 사실 하루 중에 이렇게 웃는 것도 다 애들 때문이긴 하다. 어떤 날은 웃기고 이쁜 행동을 더 많이 하고 어떤 날은 그저 하는 행동마다 짜증이라, 내 하루의 운을 점치려면 아이의 기분을 살펴야 한다. 어제는 갑자기 "엄마 전기가 끊기면 물도 안 나와요?"라는 고차원적인 질문을 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물어보니 그 뒤엔 얼버무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뒷걸음치다가 잡힌 고차원이었던 듯.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고 생각이 마구 뻗어나가 자기도 이해 못 하는 말을 해대는 것도 어린아이다.


오늘도 잠에서 깨 꿈틀거리는 아이를 안아주고 출근하려 했는데 매정한 손길에 차갑게 내쳐졌다. 기분 좋을 때에는 빨리 데리러 오라고, 연장반에 있을 때 말고 도담반(자기 반 이름)에 있을 때 데리러 오라고 시무룩하게 말하기도 하는데. "ㅇㅇ이 엄마도 도담반에 있을 때 데리러 오고 ㅁㅁ이도 도담반에 있을 때 데리러 오는데 왜 엄마만 이렇게 늦게 와요~~" 하고 말하면, 애들이 나를 아무리 막(?) 대해도 좋아하긴 하는구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나를 정말 좋아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끊임없이 확인이 필요하다. 퇴근하고 하원하러 가면 또 아이들의 기분을 살펴야한다. 내가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의 시간은 빨리 흐르지 않을테니, 어린이집에서 오래 기다려준 대가로 뭇매 맞는다 생각하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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