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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y 10. 2019

몸의 일기


 부끄러브가 모이는 날이다. 예전만큼 뜨겁진 않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임이다. 빵과 김밥을 사 오고 한 사람씩 등장할 때마다 오호 하며 소리를 냈다. 오늘은 6명이 모였다. 수잔, 수희, 창필, 래연, 해민. 그리고 나. 혹시 더 오진 않을까? 내심 입구쪽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더 오진 않았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우리의 몸 곳곳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성과 연관 지을 때 몸은 부끄럽고 비밀스러운 것이며 그 나머지 몸은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청정무구한 똥 이야기, 발 냄새와 겨드랑이 냄새, 그래서 폐암으로 사망했던 이유가 발 냄새의 곰팡이가 원인이라는 기상천외한 해석도 있었다. 무심코 머리를 매만지는 습관,  생각에 빠질 때 수염을 뽑는 습관, 점에 대한 이야기, 찰싹 때리고 싶은 아기의 투명한 엉덩이, 코딱지의 성질, 재채기와 방귀의 모범적 의성어, 해보고 싶은 스타일에 관해 이야기 했다. 이야기하고 책을 읽을수록 나는 몸에 대해 얼마나 협소한 사고방식만으로 살아왔나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몸의 노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어쩔 수 없음은, 그 순간 아주 사소한 슬픔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오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좌절을 느끼게 했다. 막차의 퇴근 버스 안에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늙어가는 우울함.



 낮에 있었던 일이다. 자주 오던 당골이 나이를 물어봤다. 난 요즘 나이에 관한 질문에 매우 곤혹스럽다. 출생년도를 이야기 했을 때 돌아오는 말은, 보기보다 젊다는 대답과 표정이었다. 씁쓸하지만 내색을 안했다. 안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안 믿겠지만 40대 초반까지 무지막지한 동안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었으나 외모와 나이가 급격한 속도로 역전된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사업의 여파외 여러가지 잘못된 생활 습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때부터가 거울을 보지 않는다. 거울 속 내모습이 끔찍한 것은 예전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늙어 간다는 것. 인정할 수 있다. 난 적응이 빠른 편이니, 이런 정도의 외모로도 근 10년은 넉근히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장기의 기능저하로 내 몸에서 구린내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건 견디기 힘들 것같다. 그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끄러브외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기록적인 최악의 매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우울하지 않았다. 이들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것이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몸의 일기>를 완독하고 다시 한번 이야기하기로 했다.





by illruwa

instagar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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