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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ug 04. 2019

영화 한 편쯤

by 수연




 행동장애가 있는 스티브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대학 진학에 성공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하며 듬직한 모습으로 엄마 곁을 떠난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꿈이다. 엄마는 그저 아들이 평범하게 성장하는 것을 보길 원한다.


 스티브의 엄마는 아들의 평범한 성장만을 원하지만, 보이후드의 엄마, 레이디버드의 엄마는 좀 달랐다. 보이후드의 엄마는 아이들이 다 어엿한 성인이 되고, 자신에게 남은 것은 이제 장례식뿐이라며 우울해한다. 인생에 뭐가 더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레이디버드의 엄마는 자신을 쏙 닮은 아이와 항상 티격태격했다. 그러다 성인이 된 아이가 독립을 하니 우울하고 그리워한다. 잘 자란 아이가 대견하고 예쁘지만 표현이 서툴고 공허함이 남는다. 그들의 영화는 어떤 엔딩일까? 천진하게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지 않을까?


 나의 엄마도 나를 다시 공처럼 말아서 아기로 만들고 싶다하곤 했다. 나의 부모님도 여느 부모님들처럼 자식의 독립을 원한다. 평범하게 밥벌이하고 살 수 있는 것. 그러면서도 부모님들이 아이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생각해보았다. 자식이 생기고부터 부모의 우선순위는 항상 자식이다.  하지만 자식의 우선순위는 계속 옮겨간다. 평범하게 밥벌이하고 살기 위해 거치는 것들이 많다. 성인이 된 자식은 부모 품에 안겨있을 수 없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들 사이는 처음보다 점점 멀어지고, 섭섭한 일도, 안타까운 일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메이플스토리 가이드북을 몇 번이고 정독하던 나는 한라산 소주를 먹을 만큼 컸지만 아직도 동물 인형을 데리고 다닌다. 동물 인형을 데리고 다니는 성인인 나는 학벌도 직장도 없어서 불안해했다. 자주 짜증을 내고 주변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늘에도 날씨에도 사람에도 소리에도. 오늘도 똑같았지만, 제주도의 풍경은 나를 멈춰 세웠다. 노을이 지는 것과 바다가 빛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차분해진 후, 오늘 본 가장 멋진 풍경은 내 옆에서 바다를 보며 잠이 든 사람의 모습이다.


 되지 않는 것을 되게 만드는 사람, 사서 불편해하는 사람. 예를 들면 감자튀김 소스 봉투가 뜯어지지 않아 애먹을 때, 가져가서 직원에게 가위를 얻어 봉투를 잘라오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다. 그런 사람을 존경한다. 독립하려면 돈을 벌고 홀로 살 집을 구해 나가는 것보다, 먼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영화를 떠올린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엔딩은, 차가운 은빛 공장 안에서 동료들이 지게차가 내는 파도소리를 듣는 장면이었다. 나는 언제나 영화에 큰 이입을 한다. 항상 제자리에서 조급해하는 나는, 자리가 있는 그들이 만들어낸 조용하고 작은 바다를 부러워했다. 지금도 부럽지만 조금은 다르다. 안정적인 자리를 먼저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바다를 보며 잠이 든 사람,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좋아하는 영화나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존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른다. 보이후드의 젊은이들은 우리가 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영화가 된다면, 나와 내가 존경하는 이들의 영화 엔딩이 회상하는 장면이 아니라 이어지는 장면이길 바란다.





by 수연

instagram @yoridogjorip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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