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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Oct 08. 2019

물이 떨어진다




불 꺼진 방에 홀로 있는 것은 고독과 맞서는 일이다

어둠은 낮기도 하고 높기도 하고 차갑 먹먹하며 용서 없다 

소파 밑에서 의자로 의자에서 테이블 위로 빠르고 견고하게 힘을 키운다

사람의 말을 지우고 찻잔의 온기를 지우고 아이의 그림 아내의 접시 어항 물고기 

도망갈 현관을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물이 떨어진다

소리를 따라 떨어진 물의 흔적을 쫏지만

마른 바닥만 있을 뿐 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불 꺼진 방에 홀로 있는 것은 슬픔과 맞서는 일이다

현실의 벽 그리운 아버지의 굽은 어깨 어머니의 수술 아내의 한 숨 아이의 투정

내일의 기억 사라진 기억 눌어붙은 기억이 살아나 뼛속에서 혈관에서 발톱 손톱에서 입속에서 눈구멍 귓구멍에서 쏟아져 나온다

어둠보다 격렬하고 집요하고 우악스럽게 살아나고

살아나고 살아나고 살아나고




 묵직하게 허공을 가르며 수직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날 세운 비명처럼 어둠을 타고 벽에서 벽으로 천정으로 바닥으로

기어코  나에게로




손목을 그었다는 아이가 찾아왔다고

손목을 그었던 아이에게 말했다

쇳조각이 살을 해 할 때 고독이 슬픔이 기어 나와

눈을 떠도 보이지 않고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는

걸쭉하고 선명한 어둠의 덩어리가



어둠에선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들을 수 있다는 건 생이 이어진 다는 것

어둠의 약점은 유일하다

먼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 고독과 슬픔을 견딘다





낮과 밤의 사이에서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서 사람과 사람의 거리에서

생과 사의 시점에서 기억과 환상의 차이에서 살과 피의 구멍에서  빛과 어둠의 틈에서



계속 물이 떨어진다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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