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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04. 2019

윈터박스1

by 승민

XX에게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내일은 동이 틀 무렵 일어나, 이슬이 땅바닥에 내려앉기 전까지 뒷산을 산책할 계획입니다. 당신은 이 산을 아실 거예요.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교차하는 곳에서 새처럼 큰 나비가 드높이 날아다니던 그곳입니다. 이끼 호수 위의 늙은 소나무 또한 기억나실 겁니다.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 마치 목을 축이는 노루와 같았지요. 지금은 다리가 썩고 속이 텅 비어 껍데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곳을 빠르게 지나치기란 쉽지 않아서 저는 늘 잠시 멈춰 기도를 올립니다. 이는 추억에 대한 예의일 수도, 그저 거만한 동정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선물은 산책이 끝나고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방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깔끔하게 진열된 이야기, 바닥에 고여있는 이야기, 향기를 가지고 부유하는 이야기. 몇몇 이야기는 사람의 소리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창 밖의 소음이 적막하게 가라앉는 밤이 오면, 그런 이야기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누워있는 저의 몸 위로 내리치듯 쏟아집니다. 특히 지난여름의 이야기는 저를 고통스럽게 했지요. 유독 사람과 사람의 목소리가 가득 찬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목소리가 타인을 흉내 낸 거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동경하는 대상을 흉내 내고, 혐오하고, 스스로를 거짓으로 속입니다. 너무 쉽게 그러합니다. 저는 이야기와 이야기 틈에서 도망을 치다가, 지쳐 주저앉은 곳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사랑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고 질문하고, 자신의 밑바닥을 탐험하며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한 채 끝나는 것들. 당신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탐색합니다. 당신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탐색합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자 하였습니다.


부끄럼 없이 사는 것. 스스로에게 떳떳한 것. 이를 위해선 스스로의 생각을 합리화하여 왜곡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감정과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선명하게 직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결심한 저의 세상, 자아를 쌓아 올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미성숙한 저는 대부분의 생각과 행동에 오류투성이였고, 저 스스로 짊어져야 할 책임은 늘어갔습니다. 책임은 짐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어깨에 머리에 발목에 이고 가야 하는 모래주머니와 같은 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래가 새어나가 무게가 가벼워지기도 기억에서 잊어지기도 하겠지요. 절대로 가벼워지지 않고 사람 깊숙이 쌓이는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당신은 제가 이고 있던 책임의 짐을 보았던 겁니다. 우리는 서로를 가여워하기도 하고, 특별히 여겼던 것도 같습니다. 우리는 타인이 아닌 자신만의 목소리로 각자의 이야기를 꾸리고자 하였습니다. 기쁨에 겨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기혐오의 고백을 토로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추억을 여행했고, 당신은 저의 정원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찬란한 행복으로 감싸진 시간들. 이는 달콤한 꿀과 같았고 단 것은 쉽게 권태로워지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소중히 여기기엔 어려운 것입니다.


당신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탐색하였습니다. 골몰하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고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시간을 반복했습니다. 찬란한 행복으로 감싸진 시간들은 위선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점차 느끼는 감정들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죽어갔습니다. 이것이 실리에 맞지 않다는 사실은, 저보다도 당신이 먼저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늪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지요.


나에 대한 이해, 나에 대한 합리화의 배제. 저는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타협하기를 바랐습니다. 스스로의 욕심과 이기심을 자각하더라도, 이를 이용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되길 바랐습니다. 자신을 의심하고, 이해한 후, 이를 이용하는 것. 그것이 성숙이라 믿었습니다. 성숙을 기반으로 쌓아 올리는 자아만이 해답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토록 혐오하던 ‘나에 대한 합리화’ 일지라도 말입니다. 애초에 저는 비겁함이 내재된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러한 비겁함을 이용해서라도, 당신을 내일의 삶으로 끌어오고 싶었습니다.


사랑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고 질문하고, 자신의 밑바닥을 탐험하며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한 채 끝나는 것들. 당신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자책으로 연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간을 뱃속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었습니다. 빛나는 진실 같던 당신의 이야기가 저의 방에선 이제 허상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간 후, 저는 내일을 살기 위한 자세를 가다듬기로 하였습니다.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위한 욕심 그리고 스스로를 죽이는 의심, 모두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당신이 지나간 자리에서 보다 소중한 의미를 찾기로 하였습니다.


당신은 저의 정원을 알고 계시지요. 정원은 죽었고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교차하는 곳에선 싸늘한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리가 썩고 속이 텅 비어 껍데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루 모양 나무 앞을 지나칠 땐, 잠시 멈춰 기도를 올립니다. 추억에 대한 예의 혹은 그저 거만한 동정으로 생각하셔도 무방하지만, 저는 이러한 기도가 당신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의지의 표현이라 믿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며 내가 가진 사랑을 믿는 것. 그러한 사랑으로 타인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정리한 저의 자세이며,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며 지켜야 할 저의 다정입니다. 편협한 저의 세상을 내려놓고 눈앞에 주어진 삶을 감싸 안는 마음입니다. 


다정한 마음. 젊은 날의 회의에 대한 기억. 타인과 세상을 견디는 일. 


먼 곳에서도 행복하세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20XX.XX.XX






by 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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