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08. 2019

알바판타지아

by 수연



[인연]에서 피천득이 집에 두고 감상하려 산 장미 7송이를 모두 누군가에게 나눠 주게 되어, 결국 한 송이도 남지 않았다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상황은 다르지만 나 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일터에서의 마지막 근무일마다, 나는 선물을 한 아름 가져 가곤 했다. 나는 4년차 비정규직 노동자, 어딘가의‘알바생’이다. 수능을 끝내고 다음 해 성인이 되지마자 시작했던 아르바이트 경험이 벌써 4년째 이어지고 있고, 총 7가지의 근무지에서 일을 해 보았다. 나의 지난 날, 좋고 나쁜 기억들의 큰 비중 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차지하고 있다. 선물은 왜 가져갔냐면, 그 좋은 기억을 만들 어준 짧은 인연들과의 끝이 아쉬워서였다.


 학창시절의 나는 참 평범한 학생이었다. 공부도 중간, 성격도 둥글둥글하고, 사교 성도 중간. 대학을 들어가서도 그랬다. 학업에도 그닥 열의가 없으며 인싸도 아싸도 아닌 평범한 학생. 그런데 알바를 할 때는 뭔가가 달랐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운 것 투성이지만, 조금만 더 성실해지면, 익히면, 또 평소만큼 웃고 지내면 사람들에 게 즉각적인 호평을 얻을 수 있었다. 친절하다, 일을 잘한다는 칭찬들이 그렇다. 그 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신선하고 좋았고, 더욱 일을 척척 잘하게 되었다. 시키지 않 은 일도 하고,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기도 하고. 또 그러다보니 쌩 모르는 사이였던 동료, 옆 가게 직원, 단골손님과도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항상 비슷한 친구들과 비슷한 걸 하고 놀던 나는 안 해본 일을 잘하게 되었고, 나이도 환경도 다양한 친 구들이 생겼다. 자연스레 어린 나는 학교보다 일하러 가는 것을 즐거워하게 되었다. 능력을 인정받고, 예쁨도 받고 매달 돈도 받는 경험이 참 좋았다.






 특히 ‘관계’에서의 기억들이 좋게 남는다. 나는 일하며 만나는 이들과 대체로 친하게 지냈어서 그들과의 재미있던 일들도, 내가 인복이 많은가보다 느껴지게 참 잘해주시던 분들도 떠오른다. 빵집 마감 일을 할 때 폐기해야되던 빵을 몰래 동료 들과 쓰레기 포대에 담아 가져가던 일, 퇴근하고 같이 산책하고 술도 마시며 사장 님을 욕하던 일, 항상 아침 출근날마다 내 밥까지 싸 와주시던 옆가게 이모님,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 매일 카페에 오신다던 단골손님, 일을 그만두는 날 여러 명한테 받은 선물, 간식들이 그렇게 떠오르는 것들이고, 나의 값지고 뭉클한 기억들이다. 창고형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인디아일]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의 엔딩은 지게차를 몰고 다니는 주인공이 그것에서 나는 소리가 파도 소리처 럼 느껴진다며 동료와 숨죽여 감상하는 장면이다. 나는 그 장면과 영화에 반해버렸 다. 내가 일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원하는 것이 딱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 는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만 아는 의미와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 소속감과 위 로가 내 일을 좋아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당연히 알바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일단 좋았던 관계들도 모두 오래 가진 않았다. 친해질수록 너무 사적인 영역에 관심을 가져 불편하게 하던가, 어떻게 든 충고나 조언을 하고 싶어 안달이던가, 조그만 호의를 한껏 부풀리고 생색을 내 며 나를 더욱 낮추려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외에도 나쁜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일을 못해서, 아님 억울하게 혼이 나던가 주휴수당을 받지 못한 것, 마감하 고 늦게 집에 왔는데 다음날 오픈을 해야해서 5시 반에 일어나 준비를 한 것, 여성 대상의 무례한 언행과 행동을 겪은 일도 적지 않고, 너무 바빠서 생리 기간에 화장 실도 들르지 못한 것, 손님에게 반말과 욕을 들은 것 등등 너무 많아 다 늘어놓을 수도 없다. 그에 대한 대가는 해마다 시간당 6천원, 7천원, 8천원의 돈이었고, 부당 하고 억울한 일들이 참 많았으나 어린 내가 판단하기도 표출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 실이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오히려 그 푼돈 대우도 감사하다고 여기며 더 땀을 내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해야지.’ 다짐하며 잠들었다. 나는 이렇게 손해를 보며 일을 즐거워하는 ‘특이한 알바생’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즐거워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어디서 일을 하든 특이하단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합리화를 했다. ‘일을 즐거워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나는 일에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모두가 나를 좋아하니 특별한 것이고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라고.


 지금의 나는 그 때와 생각이 좀 달라지긴 했다. 남들도 다행이라고 세상물정을 너 무 몰랐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일 이야기를 하다보면 주변에서 많은 말을 듣는다. “일 많이 해봐서 알겠지? 세상에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고 알바는 대우받을 수가 없으니 노력해서 더 큰 위치에서 일을 해야 한다.”, “지금 그런 곳에서 일하는 것 보다 미래를 준비하는게 낫지. 얼마나 번다고.”, “세상물정 모른다, 그럼 손해만 보는거야.”, “사회생활은 더 해. 거기서 버텨야 나중에도 잘 하지.” 대체로 그런 것들이고, 특히 어른들이 알바생인 나를 참 많이 걱정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 걱 정들에 반은 동의하고, 나머지 반은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먼저 동의하며 깨달을 수 있는 점은, 나는 그간 내 가치를 참 값싸게 여겨왔다는 점이다. 나를 부리는 상 대가 좋은 사람이든 좋지 않은 사람이든 ‘충성’하였다. 나는 꼭 일을 더 잘해야 만 했다. 스스로를 비롯한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이러한 태도는 내게 시간당 8 천원의 값이 매겨지는 것에 동의한 셈이다. 일을 잘 하기 위해 근무 시간 외에도 더 애썼고, 퇴근해서도 신경쓰느라 자주 불안했고, 기분이 나빠도 더 웃고 친절하였 지만 그 수당은 시급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 영리한 어른들 ‘갑’은 그런 나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었고, 그럴수록 내 가치는 더욱 떨어지게 되었다. 받는 돈은 같은 데 점점 더 몸도 마음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손해에도 동의할 수 없는 점들이 있다. 일단 바뀌고 성장해야 할 사 람은 ‘비정규직 노동자’인 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대우 받기 싫으면 노력해서 높이 서야 한다는 것은, 노동에 귀천을 두는 것이다. 언제까지 그거나 할래, 이 말 또한 차별을 두는 것이다. 돈을 적게 받는다고 당연히 안 좋은 대우를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며, 나이나 상황이 어떻든 정규직이 아닌 일을 하는 것에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비정규직 노동은 천한 일이, 어서 벗어나야 하는 일이 아니다. 바뀌어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렇게 착각하도록 유도하는 사람들 이다. 지금도 부당한 대우에 상처받고, 서로 위로하며 견뎌내고 있는 알바, 비정규 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그리고 또한 일하는 스스로도 주눅들어 과하게 견딜 필요가 없다. 여기서 못 버티면 다른 곳에서도 못 버틸까 걱정하거나, 그저 알바라서 이 대 우가 마땅하다 여기지 않아도 된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무시하는 사람도, 이용 하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니 노동자인 나 자신을 대우해주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 할 것이다.





 아, 그렇다고 무시를 견디고 자기합리화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일을 하며 얻 은 값진 경험들을 생각한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야기했던 ‘선물’들을 나누는 것 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좋은 사람도, 좋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그들 각각이 나를 어떻게 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선물을 나누고 온기를 전달함으로써 나는 나 스스 로를 밝게 하였다. 웃고, 줄 때마다 기분이 참 좋았다. 또 그보다 받은 것도 많고, 지금도 소중하게 마음에 남아있다. 건네는 선물에는 돈이 들었지만, 진짜 선물인 나 의 호의에는 돈이 들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도 결코 돈은 아니었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일을 좋아하고 싶은 것이다. 작은 노력으로 함께 즐거우면 더 좋 을 일이다. 앞으로도 나는 정규직으로 일할 수도, 또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도,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기분이 상하는 일 은 많겠지만, 나는 그래도 항상 따듯해질 것이며 스스로에게 ‘좋은’ 일을 만들어 낼 것이다.


 어쩌면 황당하고 순진한 판타지처럼 읽혀질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협조해주었으면 좋겠다. 누구든 입가 경련이 아니라, 진짜 웃으며 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안도현 시인은 말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 번 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도 갑들에게 묻고 싶다. “알바 함부로 차지 마 라, 너는 한 겨울 얼음장같은 몸을 옆 가게 이모님의 감자 옹심이로 녹여보았느 냐?” 라고. 콧방귀라도 뀌어 줄지 모르겠으나, 나는 우리의 노동을 그렇게 따듯한 것으로 이어가고 싶다. 





by 수연

instagram @yoridogjoripug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은 잠자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