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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22. 2019

라이카이기 때문이다

  내 사진의 역사는 꽤 길다. 타고난 재능으로 사진을 생각보다 잘 찍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행, 가족, 회사 행사 때는 언제나 찍사로 활약했다. 나의 모든 재능이 그랬듯이 타고난 반면 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사진도 그랬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논할 때 재능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라이카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다루다 보면 장비 욕심에 불이 붙을 때가 한 번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더 좋은 사진을  위해서이라지만  라이카의 경우는 좀 다르다. 트레이드 마크인 동그란 빨간딱지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무조건 적인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당연히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흠집이 많아도 상관없고 카메라 본연의 기능을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빨갛고 동그란 것만 있으면 됐다. 동묘시장과 중고 카메라 시장을 다니며 라이카가 보이면 가격을 흥정했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닳고 없어질 정도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던 중 중고나라에서 꽤 만만한 물건이 매물로 나왔다. 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문정동까지 갔지만 헛걸음이었다. 이유는 판매자의 단순변심. 지인들이 모두 만류한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외로 아무런 동요 없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것이 라이카라면 그렇게 쉽게 손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출장으로 해외에 나갔을 카메라 전문점에서 라이카를 손에 넣었다. 라이카 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안 될 만큼 업무보다 카메라 구입을 목표로 둔 전대미문의 출장이었다. 라이카가 내손에 들어왔을 때 하루 종일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외출할 때면 라이카 특유의 고감성 브라운 가죽 케이스의 스트링을 최대한 늘려 크로스로 몸에 장식했다. 우리 가족은 그것을 패션의 완성이라고 불렀다. 중형 카메라는 무거워서 차에 두고, 라이카는 몸에 걸치고, 주로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라이카는 행여 먼지가 묻을라 간지 나는 가방에 고이 넣어 꺼내지도 않았다. 그것은 주로 섬세한 아내가 매고 있었다.


 그렇게 라이카는 단번에 우리 집 서열 상위권에 올라섰다. 내가 라이카를 들고나갈 경우 난 각서 비슷한 맹를 해야만 했다. 당연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진을 찍으려면 스트랩을 두 번 이상 팔목에 감아야 했다. 그립감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넘어질 때면 라이카를 보호하는 프로세스가 발동돼 거의 무의식적 보호본능으로 카메라를 감싸며 몸을 희생해야 옳았다.


 라이카는 주로 흑백으로 찍는다. 나는 여전히 사진을 잘 모르지만 라이카의 흑백은 로맨틱한 샤방샤방 사진보다는 다큐에 가까운 명암이어서 좋다. 나는 동그란 빨간딱지로 대표대는 비싼 자존감이 너무나 부럽다.




죠-타이거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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