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29. 2019

태풍은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나는 무엇을 하든 티가 난다. 아프면 아픈 티가 나고, 즐거울 땐 즐거운 티가 난다. 매운 것을 먹었을 때 혀를 늘어뜨리며 맵다를 연발하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매워서라기보다는 그냥 맵기 때문이다. 좋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자주 하지만 싫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견디지 못할 정도로 불편한 상황이 아닐 때가 많다. 그러나 정작 소스라칠 정도로 불편한 상황이 되면 그것만은 유독 티를 내지 않는다.



  평소 가볍기만 한 내 행동을 참고하면 적지 않게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나는 언제라도 잘못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누군가를 오해할 때 심각해진다. 말하지 못하는 병이 생기고, 좀비처럼 걸으며 혼자 중얼거리거나,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환각이 나를 지배한다. 그것들은 주로 혼자 있을 때 이빨을 드러낸다. 그러나 나의 불편함을 알아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티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초 나는 좋아하던, 편애하던, 한 사람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멀어졌다. 그의 행동에서 눈빛과 말투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다. 잘못을 했을 테고 미움이 나타났을 것이고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늘 그랬듯 그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비하를 했다. 당신을 미워할 이유가 없고, 나는 준비가 돼 있으니 당신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만의 방법이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길 기다렸다. 봄이 지났다. 여름이 지났다. 태풍이 몇 번 지나가고, 가을이 됐다. 기다림은 결국 무너졌다. 구멍 뚫린 성은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순간이었다. 불편함은 오해로 얼룩져버렸다. 어떤 세제로도 닦을 수 없는 얼룩의 저력. 되도록 추한 방향으로. 그것은 또 하나의 공식이었다. 오해의 단단한 공식. 나는 또 병에 걸린다. 말하지 못하고 중얼거리며 환청에 지배당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안과 밖이 정확히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마음은 시끄럽게 보낸다. 견고한 내성을 가진 시간에 기대어 보는 것 이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계절이 바뀌고 그는 예전처럼 좋아하는 사람, 편애하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와 난 과거를 이야기 하지않는다. 이유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솔직하지 못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듣고 싶지도 않다.  솔직한 것이 두려워서 일지도 모른다. 이유를 안다는 건 두렵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인간관계의 틈을 노리는 불편함은 언제라도 날을 세울 준비를 한다. 불편함이 또다시 똬리를 틀 때면, 어느 시인의 시로 위안을 받기도 한다.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을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죠-타이거

instagram @illruwa2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