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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30. 2019

뽀댕뽀댕

by 수연

  낮,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양갈래 머리를 하고 하늘색 외투를 입은 꼬마 아이를 봤다. 두툼한 후드 모자에는 잠자는 라이언 인형을 업고 있었다. 앞서 가던 엄마가 말을 시키자 "안돼, 깨면 어떡해!"라고 말했다. 서둘러 걷다가도 멈추게 되었다. 웃었다. 이전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으며.

방에 강아지 인형들이 있다. 몇 마리인지 휙 세지 못 할 정도의. 표정들은 다양하지만 말은 모두 "나 좀 봐달라" 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면 방에 무엇들이 쌓인다. 할 일도 미루며 누울 자리만을 간신히 내어 잠에 드니 그들을 볼 수 없다. 어느 날은 발 밑에, 머리 위에, 손목 아래 있었다는 것만 느껴진다. 가끔 만져져서 한번 구겨보거나 피식 웃어보는 게 다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신경 쓸 수 없어.' 인형에 핑계를 대는 것도 우스울 수 있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들을 때, 내 마음도 죽 무거워져 무력해지곤 한다.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힘이 든다. 하지만 어느 경우엔 아무렇지도 않다. "수연아 나 요새 너무 힘들다."는 말에 '미안하지만 신경 쓰이지 않네.'라고 속마음이 말할 때가 그렇다. 요새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찾게 되고 먹기보단 욱여넣는 일이 많아졌다. 변을 보지 못한 날도, 불안한 향이 느껴져도, 엉킨 머리를 뜯어버리며 말한다. '미안하지만 내일 신경 쓰자.'라고. 오늘은 엉덩이를 삼키려는 바지와 검게 말라 가는 피부가 유난스레 보였다. 시간은 또 자정을 넘긴다.

  아기를 안아보았다. 눈도 맞추고 피부도 만져보았다. 아기의 피부는 촉촉하고 보들보들하지 않고, 쪽쪽하고 뽀댕뽀댕하다. 아가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내가 인형을 귀엽게 업고 있지 않았는데도. 아기보다 강아지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기 얼굴을 빤히 보고 있으니까 또 눈물이 고였다. 눈물방울을 흘릴까 봐 눈에 힘을 주고 참아냈다. 아기가 눈물 나게 사랑스러운 이유는 뽀댕뽀댕한 피부 때문일까? 신경 써줄 수밖에 없는 아기, 아기는 바람을 내일로 미루는 법이 없어서 피부가 검게 마르지 않고 빨갛게 뽀댕뽀댕한 것이 아닐까. 뽀댕뽀댕한 피부를 갖고 싶다. 인상도 안 쓰고 미안하단 핑계도 대지 않고. 




by 수연

instagram @yoridogjorip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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