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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an 14. 2020

너의 마음에 가까이



 단양의 숲속 책방 새한서점과 노트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노트는 지구불시착 노트처럼 사진과 일러스트를 조합한 시리즈가 될 예정입니다. 사진은 단양에서 촬영한 사진이지만 지나치게 관광 사진은 배제하기로,  최대한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1년에 4번은 내려가서 작업하는 것으로까지가 정해둔 이야기였습니다. 작업하기는 혼자가 좋지만 좋은 구경 혼자 하는 것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가족 여행이라도 할 겸 단단히, 생각보다 단단하게 준비하고 내려갔습니다. 와이프도 약간은 들뜬 느낌으로 운전을 합니다. 어딘가  살짝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워낙에 좋은 것에는 티를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이들도 방학 내내 집에만 있어 지쳐 보였는데 오래간만에 활기가 넘쳤습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졸았습니다.



 이렇게 숲속이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한적한 곳에 책방은 이제까지 책방 중에서 손꼽아 볼 정도로 매력 있었습니다. 2층 본건물로부터 쭉 뻗은 파란색 양철지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건물은 서가로만 이어져 있어 예상컨데 새로운 서가가 생기면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구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책방은 개울 옆을 따라 기다란 형태로 확장일로였습니다. 천명관 소설 고래에는 평대리의 벽돌공장으로 돌아온 춘희가 홀로 남아 벽돌을 무한 생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곳 새한서점에서도 소설과 유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로지 서가로만 무한 확장하는 크고 아름다운 고래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멋진 서가에 감탄한 아내도 최근 본 적 없는 미소를 발하고 있습니다. 나도 기분이 좋아 아내의 미소를 따라다녔습니다. 승민이는 이제 고 1입니다. 아기 때는 매주 여행을 다녔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사정을 이해해줍니다. 사려가 깊은 아이입니다. 연우와 놀아주기도 하고 엄마의 모델이 돼주기도 합니다. 아빠가 하는 실없는 농담에 가장 열렬히 지지해주는 척 극한의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가장 신이 났던 건 연우였습니다. 지구불시착보다 백배 더 좋다며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아파트는 싫다 하는 보기 드문 초딩입니다. 연우가 좋아하는 고양이가 3마리나 있고, 경사진 길을 위로 아래로 뛰어다니고 2층을 오르락내리락,  혼자 뛰어다니고, 고양이 따라 걷고, 아빠를 불러 같이 걷자 하고, 오빠 손을 잡고 걷다가, 온 가족과 걷고 싶다 하고, 길마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도 다른가 봅니다. 온 산에 발자국을 찍고 다닙니다. 주머니에서 돌멩이를 꺼내어 보여주며 주어온 곳에 가면 더 예쁜 돌멩이가 있다고 손을 끌어당깁니다. 아빠가 사진 찍을 곳을 훈수하며 지시도 서슴없습니다. 이곳의 일출과 석양, 비와 눈, 밤, 새벽, 봄과 여름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연우 일가는 미련을 담보로 남기고 단양이 자랑하는 도담삼봉과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한 카페 산으로 갔습니다. 지나친 졸림과 무시무시한 겨울바람은 사소할 정도로 멋진 산새와 굽이굽이 흐르는 남한강은 단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고 있었습니다. 카페 산까지 간 이유는 패러글라이딩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추운 날씨에 멋진 사진을 기대하긴 했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고 떠날 즈음에 한 쌍의 패러글라이더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멀어 좋은 사진을 담을 수 없었고 두세 장 찍어 본 것으로 만족하고 내려왔습니다.



 올라오는 길, 작업에 사용할 만한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던 중 연우가 패러글라이딩하는 사진을 삭제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으니 사진이 별로 맘에 들지 않고 패러글라이딩하는 모습이 작아 잘 보이지도 않아서 지웠다고 하는 겁니다. 어쩌지 하는 마음에 연우를 다그친 것 같습니다. 운전하던 아내도 연우에게 함부로 지우면 어떡하냐며 아주 잠깐 거들었지만, 그 정도의 잔소리에 기가 죽을 연우가 아닙니다. 잠시도 조용하지 않게 시종일관 떠들며 우리는 저무는 태양을 뒤로 밀어냈습니다. 바람직하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고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놀라게 한 건 잠들기 진전 다가와 귀엣말로 전하는 연우의 한마디였습니다. 자로 들어갔던 연우가 다시 내게로 와  "아빠 카메라에 그래도 어쩌면 한 장은 남아있을지도 몰라. 핸드폰 사진도 한 번 봐봐 찍었을 수도 있잖아."라고 귓속말을 하는 것입니다. 9살 연우는 올라오는 내내 아무렇지도 않고 시끄럽게 제잘 거리며 왔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미안함이 자라고 있었나 봅니다. 카메라에도 핸드폰에도 사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기 그지없는 아빠란 사람이 투명하고 맑은 연우의 마음에 복잡하고 시끄러운 레이어를 한 장 만들어 올려놓았던 건 아니었는지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한편, 영글어가는 연우의 한 뼘만큼의 성장으로도 봄이 또 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하루였습니다.



 ps. 패러글라이딩 사진은 와이프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이 3장 있었습니다.



죠-타이거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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