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12. 2020

젊음은 돌아옵니다

 책방 지구불시착 어딘가에는 택수 아저씨 도대체 몇 살이에요? 라고 쓰인 포스트잇이 붙어 있습니다. 글씨는 삐뚤빼뚤하고 맞춤법 몇 개는 무시 되었지만 궁금한 것은 직구로 묻고 마는 어린이 특유의 꾸밈없고 순수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메모는 누가 썼는지 짐작도 안 가지만 내 이름을 알고 있고, 날 아저씨라 부르는 어린 단골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처음 이 메모를 발견한 건 지구불시착을 자주 찾는 작가였습니다. 깔깔거리고 웃으며 내게 보여줬습니다. 책방을 찾는 손님은 이 메모를 사진에 담아두기도 합니다. 이 글은 제법 지구불시착을 대표하는 포토 스팟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는 몇 살인가? 


 이렇게만 써놓고 좀처럼 문장이 나가지 않습니다. 내 나이는 얼마 전 기어코 어떤 숫자에 닿았습니다. 상상도 못 할 만큼 크고 무겁고 우울한 숫자입니다. 내가 설마 이런 나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만, 그것은 생각만으로 도망가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이는 것? 이렇게 쓰고 또다시 글은 나아가지 못합니다. 받아들이는 것이라니 지나가는 것이라 해야겠습니다. 아니 몰랐던 것으로 합니다. 말도 안 되는 거부감이 꾸역꾸역 떠오릅니다. 


 나는 1녀 3남의 막내로 태어나 어리고, 여리고, 가난이 익숙한 환경 속에서도 마음 하나만은 태평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부족하면 낭만으로, 넘치면 사랑으로 큰 파도 없이 비교적 잘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엉뚱하고 가볍운 내가 수많은 약점을 노출하면서도 이토록 만족하면 살아가는 건 이웃과 동료, 지인들 덕분입니다. 애정 어린 잔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삼불고기와 카레를 갖다주시는 지인, 라면을 같이 먹는 책방의 사람들, 냉장고에 먹을 것을 넣어두고 간다는 문자를 남기는 손님. 귀찮을 법도 할 만한 도움 요청에는 정감 있는 투정은 덤이지만 결국에는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정도면 인덕은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의 과제는 이분들의 감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자에 이자를 부쳐 꼭 보상하려 합니다. 다만, 시간은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나이와 다르게 너무나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겐 연륜이란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온 만큼의 지혜. 그것을 아들과 딸, 책방을 찾는 어린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상상은 즐겁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어린 딸과 그림 동무가 되어줄 수 있으나 그들이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혜를 줄 수 있을 때가 언제쯤일까요? 오기는 오는 걸 까요? 


 이제 곧 봄입니다. 봄은 젊으며 산뜻합니다. 또 토요일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더 젊어집니다. 나이는 직선이지만 젊음은 돌아옵니다. 메모를 적었던 그 아이의 마음은 토요일을 기다리는 나를 본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죠-타이거

instagram @illruwa2

매거진의 이전글 앰버이야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