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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Feb 14. 2020

내일은 새벽 비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새벽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침형 인간 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부지런함과는 더더욱 거리가 있습니다. 나는 그냥 새벽에 일어나 이것저것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영화를 본다든가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찾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편지와 오래된 책, 앨범을 뒤적거립니다. 컴퓨터 폴더 속에서 잊고 있던 데이터를 발굴해 내기도 합니다. 새벽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하여 커피를 들고 달을 찾아봅니다. 나는 잠들기 전 일찍 일어나기 위해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새벽의 거리는 어쩌면 어제의 그곳과 같은 장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새벽은 오늘 하루만을 위해 새롭게 태어난 신상일 것입니다. 눈앞에 커다란 선물 상자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새벽을 기다립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새벽 산책도 즐거운 일입니다. 갓 만들어진 것 같은 신선한 공기는 달고 맛있습니다. 나는 동경과 오사카에서 아침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 거리를 나서면,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번화가는 여행지에서 또 다른 여행지로 이동한 것처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해있습니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 앞을 청소하고 청소차가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을 봅니다. 청소차의 소음과 인사를 나누는 소리, 물 뿌리는 소리, 까마귀 우는 소리는 기분 좋아지는 백색소음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아침 거리가 깨끗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은밀한 즐거움은 수백 수만 가지입니다. 새벽에 사물들과 행위에 하나하나 새벽이라는 단어를 붙여보기도 합니다. 새벽달, 새벽 커피, 새벽 산책, 새벽 영화, 새벽 독서, 새벽 인사, 새벽 글...... 이런 것들은 하나같이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나는 토요일 밤이 되면 일요일 새벽을 위해 이른 저녁잠 들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소음에 예민한 투정을 하곤 했습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침이 사라졌습니다. 기상 시간이 여섯 시에서 일곱 시, 여덟 시 이렇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어나도 잠이 따라 일어납니다. 세수해도, 아침을 먹어도, 버스에서도 도무지 잠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잠을 아무리 잔들 개운함이 없고, 오히려 몸에 눌린 뼈는 굳어버려 가벼운 기지개에도 부스러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것은 패배자의 소리입니다. 아침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일상의 패배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가장 재미있을 때 이른바 전성기. 그때가 바로 새벽을 즐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늘은 여덟 시를 한 참 넘겨 일어났습니다. 비가 약하게 내립니다. 나는 우산을 들고 나갈까를 잠깐 망설이다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몇 가지 스케줄이 있습니다.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2월의 비는 봄을 알립니다. 입춘은 지났고 종일 내리는 비는 언 땅을 녹일 것입니다. 꽃이 필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땅도, 하늘도, 나무도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오늘의 비는 가벼운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나의 아침도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바랍니다.


 세 번째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도 비가 내립니다. 칼국수를 먹었고 특별할 것이 없던 어떤 하루는 조용하게 흘러갑니다. 내일은 새벽 비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죠-타이거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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