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an 22. 2020

레몬맛 푸딩(1) 야채청

붉은달

레몬맛 푸딩(1) 야채청

 


 예전에 지인이 가르쳐 준 방법이다. 부엌에서 채소를 다듬다가 생기는 채소의 끄트머리, 아니면 필요 없어 칼로 잘라낸 조각을 설탕이 든 병안에 던져 넣는다(이때 채소는 물론 깨끗이 씻어 흙이 없는 상태여야 한다). 그건 파뿌리일 수도, 당근의 끄트머리, 아니면 가지가 쓰고 있는 그 모자 부분이 될 수도. 그렇게 야채의 조각은 쌓이고 설탕과 한 몸이 되어 숙성되며, 야채청이 된다. 그리고 요리에 필요할 때마다 한 숟갈씩 넣으면 야채의 단맛이 스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살다 보면 삶에서 필요 없는 부분이 생길 때가 있다. 남에 대한 미움이 쓸데없이 오래 지속된다든지, 객관적으로 보기에 질투할 만한 일이 아닌데 질투가 난다든지,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쓸데없이 자신감이 떨어진다든지, 누군가로 입은 상처에 더해 내가 나 자신을 질책한다든지, 이런 순간들. 전부 다 내 삶으로부터 잘라내 버리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다. 이런 순간을 내 인생에서 베어내서, 설탕이 그득 든 그릇에 던져 넣고, 때가 되어 숙성되면, 그것을 알맞은 양만큼 꺼내 내 글과 잘 비벼서, 한 상 거하게 차려놓고 싶다. 내 차려놓은 음식에서는 단 맛뿐만 아니라, 미움의 톡 쏘는 맛, 질투의 느끼한 맛, 절망의 알싸하고 매운맛, 슬픔의 찝찔한 맛이 함께 나겠지. 아마 그건 꽤 중독성이 있어, 과식을 하게 될지 모른다.






붉은달

instagram @red_moon_1007 

매거진의 이전글 장발토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