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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05. 2020

어둠을 부탁해

  다행히도 한때 유복한 생활을 경험했다. 회사를 차리고 사업이 궤도에 오를 때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돈이 생겼다.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아들에게는 고가의 옷을 사입히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주말마다 캠핑했다. 백화점에서 발랫파킹서비스를 받거나, 고가의 원두커피를 즐겨 마실 때였다. 하지만 난 지금도 예전에도 소비에 익숙한 편이 아니다. 책 몇 권을 사던가 군것질할 과자 정도가 지출의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물욕이 없는 건 아니다. 당시 난 몇 가지 로망했던 물건이 있었다. 아이맥과 라이카 카메라였다. 모두 업계에서 정점을 찍은 고가의 브랜드인 이유로 간단히 구매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다행히 아이맥과 라이카는 아내의 동의를 받고 집에 들일 수 있었다. 지금은 아이맥도 라이카도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됐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남은 생을 다 해도 쉽게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애장품이 있다. 앵글포이즈를 닮은 스탠드다. 어쩌면 진품일지도 모른다. 원서동의 작은 빈티지 숍에서 한눈에 반하고 세 번 방문해 구입했다. 물론 세 번째 방문은 아내의 동의를 구한 후였다. 라이카와 아이맥처럼 애지중지하는 애장품이다. 하지만 멋의 쓰임이 결코 같다 할 수 없다. 이 멋진 스탠드는 어떤 공간에 무심코 있어야 진짜 매력이 드러난다. 아이맥이나 라이카처럼 자신만을 위한 매력이 아니다. 60W 백열전구가 밝히는 은은한 조명은 공간 분위기를 순식간에 주도한다. 사물은 빛과 그림자로 나뉘나 그것은 따로따로가 아닌 대화합의  공간으로, 아무리 좁은 공간도 좁지 않고, 보잘것없는 광활한 공간이라도 썰렁하지 않다. 빛이 닿는 만큼, 그림자가 떠받치는 만큼 하나의 어우러짐을 만들어 낸다. 난 이러한 이유로 새벽의 조명을 선호했다. 조명의 기본 쓰임새가 그렇다면, 스탠드 본연의 빈티지한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픽사의 오프닝으로 잘 알려지기도 한 앵글포이즈는 세계 3대 조명브랜드 중 하나이다. 빈티지의 천국 영국 태생으로 무려 100년 전통의 디자인을 자랑하는 브랜드이다. 지금은 동네 마트 전기 코너에만 가도 무수의 짝퉁 관절 스탠드를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왜 앵글포이즈인가 왜 전통인가를 생각하면 물건을 만나는 순간 앵글포이즈와 짝퉁 앵글포이즈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게 있는 관절 스탠드가 순수혈통인지 아니면 짝퉁인지 나는 모른다. 확인한다고 하면 확인 못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확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은 때로 어떤 가치도 없을지 모른다. 소유자와 사물의 관계가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가? 얼마나 함께하는가? 이런 질문에 망설임이 없다면 말이다.


  어쩌면 나와 10여 년을 함께한 이 스탠드는 나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지 않을까.






죠-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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