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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r 02. 2020

불곰자리



 불곰자리       




        

 오늘부터 사흘 동안 슈퍼문이 뜬다고 했다. 슈퍼문을 바라보며 망원동을 걸었다. 갈 곳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무작정 걷고 싶은 날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합정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멍하니 바라보다 걷고 싶어 방향을 틀었다.      


 독서모임에는 총 5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나이도 성별도 다 제각각인 사람들. 이름 대신 서로 닉네임으로 불렀다. 사회에서 중요하다 여겨지는 정보들이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불곰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자는 여러 의미에서 흥미로운 참가자였다. 독서모임은 매번 모임방과 참가자들을 뒤섞기 때문에 같은 사람을 만날 확률은 로또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관리자는 늘 말했었다. 방에 들어서자 익숙한 닉네임 ‘불곰’이 눈에 띄었다. 로또를 맞은 것이다. 그는 비쩍 말라서 정말 기력이라곤 없게 생겼는데 눈빛은 살아있었다. 뭐랄까, 겨울에 잘못 먹고 체해 살이 오르지 못한 호랑이 같은 느낌. 그렇다고 불곰이 야성적이란 말은 아니다. 집에서 반듯하게 두부를 썰어 된장찌개를 끓이고 캔들을 태우는 사람. 그게 불곰이었다.


 불곰을 처음 만났던 날은 모임에 10분 정도 지각을 한 날이었다. 불곰의 옆자리가 내 자리였는데 불곰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가 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각자 요즘 몰두해 있는 것들에 대해 리더가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차례에 불곰은 별자리라고 말했다. 마치 자신이 별자리 연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꽤 오랜 시간 별자리를 연구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별자리별로 사람을 분류하고 그들을 범주화시키는 작업이었다. 12개의 별자리로 개개인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조금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아는 정확한 방법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했기 때문에. 아마도 그 얘기를 할 때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별처럼 빛나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다 별자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느냐는 리더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직장생활을 할 때,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상사가 있었습니다. 그를 너무도 이해하고 싶었죠. 그러다 별자리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불곰은 왜 그 상사를 이해하고 싶었을까? 아니다, 왜 꼭 이해해야만 하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궁금했다. 마약옥수수가 자기 회사에 이런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불곰에게 물었다. 그 물음을 시작으로 상사, 친구, 애인, 부모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불곰의 별자리로 분류되었다. 신빙성 없는 말 같으면서도 묘하게 들어맞는 구석이 있었다.      


 “제가 볼 때, 냠냠 님이 지금 사귀시는 분은 별자리 상으로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불곰의 말을 들은 냠냠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불곰을 쳐다봤다.      


 “헐, 대박이예요. 불곰 님 말을 들으니까. 저희가 그동안 왜 그렇게 싸웠는지 확 이해됐어요.”    

  

 뒷말은 생략되었지만 냠냠은 제발 헤어져,라고 말해달라는 표정으로 불곰을 쳐다봤다. 신기한 것은 불곰은 그 어떤 커플에게도 헤어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만나는 동안 힘드실 수 있겠네요, 라는 평이한 말을 해줄 뿐이었다. 그건 누굴 만나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게 아닐까? 그날의 책 모임은 책 이야기보다 별자리 이야기와 이해 못 할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불곰의 그를 너무 이해하고 싶었다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바로 옆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자리 때문에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빈자리 때문에 지하철에서 소리를 높여가며 싸우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저들은 원래 저런 사람들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가령 오늘 아주머니가 얼마나 피곤한 하루를 보냈는지. 아저씨가 직장에서 얼마나 시달렸는지 등등 그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했지만, 곧 지하철 문이 열렸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눈물샘 님이 말했다. 책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한다.]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좋아져 버린 걸 수도 있다는 거죠. 불곰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면면을 속속들이 안다면? 그렇게 되면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거지? 불곰이 내 생각을 훔쳐보고 있다고 상상만 해도 지금 당장 뺨 싸대기를 갈기고 싶을 것이다. 대체 지금 뭘 보느냐고.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의 불안이 조금씩 쌓여 오해를 불러오고 싸움을 만들었을지도. 나에게 도대체 뭐가 문제인데 라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졌으니까. 그런 질문은 제발, 네*버 지식인에도 묻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꼭 해야겠다면 네가 날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게 문제라고 큰 목소리로 말해줄 것을 그랬다. 그랬다면.     


 사흘 동안 슈퍼문이 뜬다고 했다.      


 불곰은 오늘 밤에도 별자리 연구에 몰두해 있을지 모른다.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의 마음도 모르면서. 그가 수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란 과연 사람이긴 한 걸까? 이런 질문을 그에게 할 수는 없겠지만.      


 바보들의 행진.      


 세상은 알고 보면 바보 혹은 잉여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자기 일에만 엄청나게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불곰의 연구 문서를 모조리 불태우고 싶다. 그가 잠들었을 시간, 그도 모르게 말이다. 몇 번의 슈퍼문이 떠도 별자리를 향한 그의 집념, 더 나아가 사람들의 별자리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불곰의 직장 상사도 여전히 개새끼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여전히 나일 것이다. 내일 아침 다시 지하철을 타야만 한다. 벌써 피로가 몰려온다. 최악이다. 불곰은 내일도 캔들을 켤 것이고, 네모반듯하게 썬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일 것이다. 아차, 생각해 보니 그의 별자리는 묻지 못했다.      


 불곰을 또 만날 수 있을까?? 내일 밤엔 슈퍼문 대신 불곰자리가 뜨면 어떨까? 조금 상상하다 불곰을 닮은 별자리라니 어쩐지 웃겨서 피식 웃었다. 한 시간째 걷는데 가까워지는 사람이 없다.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차가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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