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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11. 2020

금전 일기(05.03)

by 승민

일주일 간 60만 원을 썼다. 생활비와 잔금 치레를 제외하고도 기간 대비 큰 지출이다. 보답이라 하며 남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고, 덩달아 사치를 좀 했다. 환급받은 기숙사 보증금과, 교수님께 사정하여 장학금을 뜯어내고 아빠에게 150만 원을 보낸 후 남은 금액의 합이다. 현재 내 계좌엔 16000원이 남았다. 이마저도 언제 스트리밍 월정액 값으로 빠져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내가 피는 히츠는 4500원이다. 한 가지의 아끼는 행위로 여럿을 아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아끼고 내 장기의 건강을 아끼고 돈을 아끼고 애인을 아끼고 부모를 아끼는 일이다. 난 소액의 식사를 할 땐 몇 개월 전부터 부모의 카드를 빌리고 있지만 담배를 살 땐 내 계좌의 돈만을 쓰려한다. 부모는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전에는 알았지만 모르고 싶어 하였으며 지금은 모르지만 알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여부를 떠나 모르는 것으로 정답을 두는 것이 부모에겐 맞는 것이다. 알아서도, 알더라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의 돈으로 담배를 산 적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그건 죄이다. 지출되는 담뱃값만큼 죗값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담배는 21살부터 폈을 거다. 숨이 막힐 때 담배는 구원이었다. 숨의 들이마시고 내쉬는 리듬을 만들어 나를 진정시켰다. 보통의 병원에선 저혈압이 위험하니 담배만은 안된다고 하고 정신과에선 술은 안돼도 담배만은 피우라고 하는, 아이러니를 듣는다. 말은 그래도 끊는 걸 권유하지 않을 뿐 언제까지고 피는 걸 권유한 건 아니었겠지만. 애초에 몸이 아픈 건 익숙했던 데다 과음에는 질려버린 터에 난 후자를 따랐다. 요새는 감사하게도, 욕심일 수 있으나 몸이 아프고 싶지 않아 진다.


 나는 손석희도 무엇도 아니지만 하루 한 개비만 피기로 한다. 좀 전에 지금 쓰고 있는 금전 일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하루 끝 담배를 피우고, 지금 내 히츠 갑엔 세 개비가 남아있다. 삼 일을 버티고 혹여 내 계좌의 16000원이 삼일 뒤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면 한 갑을 더 사서 20일을 버틴다.


 아빠가 사업을 접는다. 부도난 건 아니고 그냥 접는다. 아빠가 거진 평생직장이었다 할 수 있을 보험업을 퇴직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제조업을 다루는 사장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는 아빠의 말을 평생 기억하기로 한다. 아빠는 인간에게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곧 중문 사업을 접는다.


 머리를 쓰며 일을 하던 사람이 몸을 쓰는 일을 하려니 힘들다고. 소규모의 회사라 분담이라 할 것 없는 사내엔, 한 사람이자 한 사장이, 처리해야 할 업무의 가짓수는 헤아리기가 어렵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잇달아 퇴근을 해서도 끝도 없이 기다리는 업무 전화, 계약서와 고지서의 반복까지, 버겁다고. 그와 같은 현실을 완화시킬 때까지 회사를 부풀리며 안정을 찾을 때까지의 시간은 너무 멀어 지친다고. 고갈된 거다 아빠는. 지난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아빠가 가졌을 압박감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제넘게 상상하며 앓다가, 결국 철없는 말을 쏟아내기만 하는 미련한 자식이다.


 나는 다짐 같은 걸 잘하지 않는다. 다짐은 족쇄와 같아서 반항만 키울 뿐, 선택의 자유에도 실천의 효율에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따라서 구체적인 다짐보다, 비교적 막연하게 무언가를 바랄 뿐이다.


 답지 않게 다짐을 해본다. 담배를 아끼고 집밥을 먹고 수돗물을 끓여마신다. 반찬이 오래오래 썩지 않았으면 좋겠다.






by 승민

instagram @seungm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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