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pr 01. 2020

못생긴 게 싫어



 내가 고기를 입에 댄 것은 무려 서른을 넘어서였다. 어린 시절 난 유별나게 고기를 멀리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못생긴 게 싫었다. 사과와 딸기도 가려먹었다. 예쁜 것만 먹기로 유명했다. 멍든 사과, 흐물거리는 포도, 딸기 모양이 아닌 딸기는 끝내 입에 대지도 않았다. 정육점의 붉은 조명이 싫었고 마장동이나 낙원상가의 돼지국밥집을 작정하고 피해 다녔다. 빠짝 마르고 입이 짧은 어린 막내의 식성에 대해서 어머니는 걱정은 많았지만 힘이나 억압으로 만사를 일관하는 가정은 아니었기에 성인이 돼서도 기이한 식성은 계속되었다. 지금은 채식주의라든가 비건이라는 용어가 있다. 무슨 무슨 주의라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거나,  환경을 대하는 신념을 가진 자를 일컬어 부르지만 난 그런 것들과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단지 형태의 고름, 빛깔의 영롱함, 재료의 선함, 부드러움, 당도 등이 음식의 선결 조건이었다. 군 신참 시절 생일을 챙겨준다는 이유로 족발과 소주 한 상을 마련해 준 고참은 황당해했다. 도쿄의 주방에서 아르바이트했을 때였다. 점장은 어느 날 먹고 싶은 것을 뭐든 사준다고 했다. 작은 체구인데 (당시에 난 50kg을 겨우 넘겼다) 악착같이 아르바이트 시간을 확보하려는 나에게 점장은 어떤 연민이 있었다고 했던 것 같다. 음식을 싼 것만 주문하는 나에게 점장은 가격 신경 쓰지 말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싶은 만큼 시키라고 했었지만 이내 사정을 알고 돈이 굳었다며 남을 돈을 용돈으로 주셨던 기억도 있다.



 난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살아왔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내는 끝끝내 고기를 먹였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 게 가능했냐 하시며 고개를 저으셨다. 아내는 나를 본 첫인상을 곧잘 이야기하는데 꽉 마른 더벅머리가 새우깡을 들고 비실비실 지나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독 먹거리에 신경을 쓰는 눈치이다. 아내는 내게 서서히 고기 맛을 알게 해준 것으로 알고 있겠지만, 실은 내가 적당히 먹어준 것이다. 지금도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먹어준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먹을 뿐이다. 아직도 도저히 삼킬 수 없는 고기 음식이 많다. 돼지머리, 닭발과 막 곱창, 순댓국, 그 뭐더라 피가 둥둥 떠다니는 국밥 그것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일그러진다. 음식은 언제나 우선순위가 있다. 수제비와 칼국수, 냉면, 빵과 과자다. 약간의 우아함과 멋진 소비를 곁들인다면 푸딩도 좋겠다.




 어느 순간에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그것은 의외로 고기가 듬뿍 들어 있는 갈비찜일 확률이 높다. 나는 가게에서도 갈비찜을 주문한 적이 없다. 어는 부패에서 또는 가족이 모일 때 어머니가 해주신 갈비찜을 먹어 본 적은 있지만,  눈치 봐서 한두 점 먹어봤을 뿐이다.  2002년 오사카에서 나는 먹을 수 없었던 갈비찜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내와 데이트가 한참이었을 때였다. 아내는 당시 이모님 댁에 신세를 지고 있었는데 이모님의 성화로 인사차 이모님 댁에 갔었다. 이모님은 화려한 요리를 해주셨다. 식탁만 봐도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스케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모님의 스케일은……. 아 그 어떤 기막힌 묘사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유는 갈비찜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묵직한 찜 냄비 속에는 고추의 초록이 있었을 테고, 매끈한 주황색 당근, 밤과 감자, 붉은 대추가 올려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갈비도 있었을 것이다. 이모님 특제의 양념 소스에 버무려져 조리고 조린 끝에 대동단결하여 걸작으로 탄생한 갈비찜은 냄비뚜껑 아래서 숨죽이고 있다가 뚜껑이 열리는 순간 아이슬란드의 바르다르붕가화산처럼 강렬한 임팩트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려왔다고 고백이라도 하듯이 순순히 본색을 드러냈을 것이다. 달아오르는 침을 꿀꺽 삼키기에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난 같지 않은 가짜 채식주의자를 내세워 먹지 않았다. 그날 갈비찜에 손대지 않을 것은 작고 사소한 실패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실패이기도 하다. 일본을 떠난 후로 이모님을 뵙지 못했다. 야속하게도 어느덧 20년이 지나간다. 혹시라도 이모님을 뵙게 된다면 염치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갈비찜을 부탁드려야겠다.






죠-타이거

instagram@illruwa2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분들에게 안부 전화해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