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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pr 14. 2020

금문교, 그리고 태종대 그리고 벚꽃나무

by 블루미

있잖아, 그게 언제였더라

그날도 어김없이 잠들지 못하는 중학생의 새벽이었던 것 같아

나는 금문교가 그렇게 가고 싶었어

아니, 금문교는 당장은 무리일 것 같아서 버킷리스트로 남겨두고

유력 후보가 태종대였지,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그 태종대

내 버킷리스트는

정말로 그곳에서 수행하고 나면 내 인생이 끝인, 버킷 리스트였어

어린 마음에 왜 그렇게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에 집착했는지

사실 이 어린 마음은 지금도 똑같아,

어차피 끝은 다 똑같이 추악하게 떨어질 것은 자명한데

풍경이라도 아름다우면 내 엉망인 마지막도 어여쁘게 장식될 것 같았는지

그러고 보니 이건 

지금 내가 진 벚꽃나무에 느끼는 감정이랑 똑같네,

나는 항상 아름다운 마지막을 동경할 수밖에 없나 봐

이 어린 마음은 언제쯤 철이 들고 나이를 먹을까

나는 많이 자란 것 같으면서도, 어쩔 때는 변함없이 무력한 아이 그대로인 것 같아

소중한 기억을 한가득 안고 있으면서도 

소중한 사람을 한 아름 곁에 두고서도 한순간 돌아서버리고 싶은 이 마음은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순수하게 죽음을 열망하지도 못하면서

끝이라는 것이 주는 그 미학감에 매료되어서

한낱 부질없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단명, 시킴으로써 의미를 얹어 장식하고 싶었던 바보 같은 마음 

물론 삶에도 대단한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그렇지는 않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나는 비로소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달아버린 거야

초록빛 길가에 무더기로 떨어진 벚꽃잎에, 

물가에 떼를 지어서 일정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날파리 떼에 나를 이입하면서도

세상을 처음 알아가는 아이의 눈빛으로 지는 석양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푸른 빛깔로 물들어가는 어둠에 넋을 놓고 쳐다보는 거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선들에 내 목을 치렁하게 걸다가도

조각 무늬로 빛을 발하는 하늘에 매혹돼버리는 거야

항상 시선 저편을 바라볼 때 높이 솟아있는 빌딩의 층수를 재면서도

그 안 불빛이 켜지고 꺼지는 순간을 놓지 못하는 거야

언젠가, 정말 그 언젠가

내가 아름다움에 순수하게 경탄만 할 수 있다면

그 아름다움을 뒤집어 비극으로 재생하지 않을 때가 비로소 온다면

나는 그제서야 구김살 없이 웃어 보일 수 있는 거야

내 눈가에 어린 물빛과 눈 밑에 드린 어둠을 들어내고 

햇살같이 웃어 보일 수 있는 거야

언젠가, 그럴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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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미

instagram @bluem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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