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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pr 10. 2020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노래가 있나요?"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노래가 있나요?"


 타워레코드가 생기기 이전 신사동 가로수 길, 조그만 레코드 가게 앞에 놓인 앰프에서는 포 논 브루스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햇빛이 관통하는 유리에는 당시 모든 음악 가게가 그랬듯이 빌보드차트 100이 부쳐있었다. 자전거를 가게 앞에 세우고, 차트를 유심히 살핀 후 헤드폰을 목에 걸치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점원에게 그렇게 말했다.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노래가 있나요?"





 일찍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 급료로 소니 워크맨과 헤드폰을 샀고 돈이 생길 때마다 카세트테이프를 사던 시기가 있었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백팩을 메고, 자전거를 탔고, 겉멋을 잔뜩 넣어 음악을 들었다. 볼륨을 최대한 올렸고 다소 위험할 정도로 스피드를 냈다. 강남대로를 질주하고 강남역에 타워레코드가 생긴 이후 그곳을 거르는 일은 없었다. 그 시절은 내 음악의 성장기였다.




 지금처럼 유튜브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음악이 궁금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김기덕과 김광한 DJ의 라디오를 듣는다. 그것이 모두가 공정한 음악이라면 다른 하나는 세운상가에서 해적판 디스크를 구해 듣는 것이다.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꽤 열정적으로 DJ의 노래를 기다리고, 카세트테이프를 사 모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가끔 사람들의 플레이 리스트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들의 리스트는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있을까? 

취향의 난잡함은 음악 영역에서 더욱 극명해진다. 어떤 이유를 찾기보다는 정말로 모든 장르가 다 좋기도 하고 별로이기도 하다. 어떤 가수가 좋아 콘서트를 빠지지 않고 체크하지도 않고, 노래를 전부 찾아 듣거나, 모으거나 하는 오타쿠 기질도 없다. 그래서인지 더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반젤리스의 신시사이져를 들을 땐 눈을 감고 어둠 속에 휩쓸려 다니는 빛들을 그리며 심취해 들었다. 할로윈의 하드록을 들을 땐 볼륨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카펜터스의 목소리를 좋아했고 본조비의 대중성과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문학 같은 음악, 파헬벨과 바흐의 1700년대 클래식도 즐겨 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했을 땐 김광석의 그날들을 수백 번 들었다. 이적의 가사를 질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가장 질투를 느꼈던 건 무라카미 하루끼의 재즈와 팝에 관한 지식이었던 것 같다.



 지중해의 어느 바에서 하루끼는 비틀즈의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무한 재생하며 노르웨이의 숲을 집필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지나와 정확한 기억이라 할 수 없지만, 내가 부러웠던 것 하나는 지중해도 아니고 노르웨이 숲도 아니고 비틀즈도 아니었다. 아무 맥락 없이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라는 알쏭달쏭한 네이밍이었다. 저작권에 관한 개념도 부족했을 시기, 무엇을 하든 이 매력적인 이름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목표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불시착이 돼버렸으니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네이밍에 온통 지배당할 때 가로수길의 그 레코드 가게의 점원은 나의 허세를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네?"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테이프를 찾아요"

점원은 시간을 들여 날 쳐다보고 

"비틀즈요?"

"아니요.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요"

라는 대답을 무시하고 건네준 건 비틀즈의 테이프였다. 비틀즈의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그제야 잊고 있던 하루끼의 문장이 온전하게 떠올랐다. 사실 난 여러 곳의 레코드 가게에서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노래가 있냐고 물었었고 그때마다 그런 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레코드 가게에서도 모르는 밴드를 내가 알고 있다는 건 우쭐하고도 남을 정도였지만, 허세로 포장된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찾기의 마지막 경로는 허탈함이었다. 




 최근 음악은 분위기만을 위해 소비하는 경향이 크다. 아무것도 듣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뮤지션도 노래도 온전히 좋아서 듣는 즐거움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 음악 성장기 시절의 끝과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찾기는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 점원의 묘한 눈치가 변곡점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간만에 그 시절을 기억하며 오늘의 선곡을 준비한다. 

비틀즈의 서전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죠-타이거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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