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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pr 15. 2020

50원 _ 8번슈퍼

by 수혜


엄마는 한시간 이상 걸어서 가는 시골 거리에 있는 면 소재지 초등학교를 한번도 함께 동행해 준적이 없다, 엄마랑 학교를 걸어가 본 기억도 없다 난 늘 1학년때도 그렇고 6학년을 다니는 동안 혼자서 그 먼거리를 신작로를 지나야했다 등교시간이 8시 30분이였는데 9시에 도착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월요일에는 조회가 있어서 지각을 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끝날때까지 교문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던 적도 자주 있었다.


혼자 학교를 갈때면 아침이라도 제일 무서웠던 것은 공동묘지를 지날 때였는데 학교 도착하기 중간즈음 되면 꼭 그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양 옆으로 작은 동산이 어우려져 있고 그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를 지날때면 크게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곤 했다 그 동산을 넘어서면 비로서 멀리 교회 십자가가 보이고 안심이 되어서 크게 부르던 노랫소리가 잠잠해 지곤 했다. 저 멀리 우체국과 파출소 농협이 보였는데 농협에도 마트가 있었지만 농협에 마트보다는 우체국과 파출소를 지나서 작은 언덕을 오르면 보이는 8번슈퍼가 나의 단골이었다.



8번 슈퍼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매우 작아서 들어가면 과자들이 매번 언덕을 이루고 있었는데 거기 슈퍼 주인 할아버지는 다리를 절뚝거려서 내가 무엇을 사는지 고개만 빼꼼히 쳐다보고 있지 좀처럼 앉아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매일 학교에 갈 때 그 당시 20원이면 살수 있는 새우깡이 값어치를 할 때 나에게 아침마다 50원이라는 큰 돈을 주셨는데 집에 오는 동안 맛있는 것을 사먹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매번 50원이라는 동전을 엄마가 손에 꼭 쥐어 주어서 그것을 행여 잃어버릴까봐 꼭 쥐고 그 언덕길을 올라 비로서 8번 슈퍼에 도착하면 그날마다 사고 싶은 것을 사곤 하였다.




8번 슈퍼를 도착해서 물건을 사서 까만봉지에 담으면 잔돈과 함께 출렁 출렁 거리는 물건들이 한데 뒤섞였다. 학교는 비탈진 언덕 높이에 있어서 거기서부터 올라가기 시작하면 한참이 걸렸다 종종 걸음으로 올라가려할 때 항상 그 옆에 부석식당이라고 중국집 음식을 파는 곳을 지나 양 옆으로 무궁화꽃이 피어 있어 그 사이를 느적느적 걷다보면 한쪽문이 닫히고 한쪽문은 안으로 젖혀져 있는 교문의 상태가 썩 좋지 않는 학교 입구로 들어갔다. 학교 입구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만 양 옆으로 가지치기가 잘된 무궁화 꽃은 내 손바닥보다 커서 볼때마다 나를 잡아 먹을 것 같았다. 힘겹게 도착한 학교에서의 기억은 전혀 없다. 늘 학교를 오고갈 때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공동묘지 두려움이 사라질때즈음 중학교 3학년 때 엄마는 그곳에 장사되었다. 공동묘지를 지나면 비로서 멀리 보이는 빨간 불빛의 십자가 매일 숙제처럼 통과해야 했던 집으로 오는 동안에 항상 거쳐야 했던 그 길이 내 기억에 선명할 뿐이다. 50원을 매일 매일 쓸 수 있었던 일상 미처 쓰지 못하고 50원을 손에 꼭 쥐고 집으로 오다가 한번은 잃어버린적이 있어 집으로 곧장 돌아오지 못하고 그 언덕길을 두세번 오르락 내리락 하며 찾느라 해가 뉘엿뉘엿 지자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만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부터는 엄마가 주는 돈을 그 때 그때 남기지 않고 써버렸다. 한동안 엄마가 아침에 주는 그 돈을 일부러 받지 않은 날도 있었다. 돈을 매일 쓰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8번슈퍼는 하루라도 거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엄마가 돈을 다 쓰지 않으면 그 다음날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 써야 했는지 엄마가 의무적으로 매일 돈을 주었는지 그것은 생각이 나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엄마는 내가 매일 매일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게 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먹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주로 학용품을 샀다.




날마다 엄마가 곱게 땋아준 디스코 머리를 하고서 꼭 쥔 50원짜리 동전을 들고 예쁜 구두를 신고 꽃무늬가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나풀 나풀 거리며 마음에는 공포를 가득 안고 그 길을 걸었던 사랑스런 내가 생각나는 밤이다. 엄마는 왜 그 길을 한번도 함께 가 주지 않았을까?



내가 그 길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비가 오는 날에도 다른 엄마를 통해 우산을 부탁해서 받은 적이 있어도 우산을 들고 찾아온적은 없었다. 늘 집에 도착하면 심통이 나서 아랫집 할머니집으로 가고 똑똑한 척 하는 엄마에게는 가지도 않았다. 들고 오며 먹다가 남긴 새우깡 봉지를 들고 할머니집 노란 장판에 누워 남은 새우깡을 집어 먹는 동안 또래 친구가 없어 항상 나는 오랫동안 혼자 있었다.




by 수혜

instagram @sukyung.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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