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녀는 여전히 내 문자를 무시하고 있다.
여자는 정말 이기적이다.
아마도 영원히 그럴 것 같았다.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헤어지는 것일까?
지난 일의 다툼으로 새벽까지 그녀에게 장문의 이유를 설명하고,
애원의 문자를 보내고,
사과와 반성과 분노의 메시지를
수도 없이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더 약이 올라서
문자의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여자의 마음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굳게 닫힌다는 것을 알고도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은밀하게 정해놓은 디데이가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새 휴대폰 문자와
실랑이를 하면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도 지난밤의 연속으로
머릿속은 온통
그녀의 일들로 차 있었다.
혹시 연락이 와 있을까?
스마트폰을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누운 채 손을 뻗어 뒤적거려도
스마트폰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 침대를 털어보기도 했지만
3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
스마트폰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낭패다.
젠장 하필 오늘.
오늘은 합격자 발표 날이다.
난 지난 최종 면접 합격을 확신했다.
합격의 기쁨으로 그녀와의 8년 연애의
종지부를 선언할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와는 냉전 중이고
스마트폰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스마트폰은? 그녀는?
합격 연락은?
이렇게 꼬이면서 시작되는 하루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고시원 복도 끝 공동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잠겨있었다.
하는 수없이 옆 건물 화장실로
이동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온다.
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춰
나와 동행하고 있다.
신경이 쓰이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희미한 벨 소리가
들려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고양이도 걸음을 멈추며
나를 빤히 올려보는 것이다.
난 곧 소리의 근원지를 알았다.
고양이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나는 고양이를 버럭 안았다.
역시 고양이 뱃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귀를 갖다 대어보니 확실히 들려오는
루팡 3세의 사운드 트랙.
내 핸드폰이다.
루팡 3세로 알람을 설정해놓은 사람이
지구상에 나 말고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가 할 수 없었지만,
고양이를 움켜 안고 배에
귀를 더 밀착시켰다.
알람이 그치고, 전화가 걸려왔다.
난 귀를 더욱더 고양이 배에 밀착했다.
"여보세요" 통화 버튼이 눌러졌는지
여보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난 기뻐서 대답하기 위해
입을 고양이 배에 더 세게 갖다 댔다.
그리고 말하려 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필 그때,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에~취! 엣취에 ~~~~~엑칫 에에액티
에에엑치.
고양이 배에 입을 대고 눈물 콧물
재채기를 쏟아내며 울부짖는
나는 분명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결혼하자고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걸음을 멈추고
고양이 배를 움켜 안고서
재채기와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사랑한다. 결혼하자"를 외쳐대는
남자를 지켜봤다.
어떤 이는 휴대폰을 들고
라이브 방송을 하기도 했는데
그 영상은 포털의 실검에 오르기도 하고
BBC와 CNN, FOX, NHK 등
외신의 토픽으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훗날,
애묘 협회에서는 고양이와 혼인을
허락하라는 글을 영상과 함께
청와대 민원에 청원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왔다.
나는 현재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 2년 차의 행복한 삶을 지내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 알람기능을 탑재한
고양이와 셋이서.
-끝-
illru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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