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희

수희에게는 초능력이 있다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수희



아빠는 생선을 잘 굽는다. 프라이팬 위에 고등어가 구워지는 정도를 관찰하는 눈빚이 그걸 증명했다.

신중하게 불을 끄며 오케이를 외쳤다. 고등어를 굽는 나름의 철학이 있는 듯했다. 수희는 TV 앞에 상을

차리고 수저 분과 접시를 가지런히 놓았다. TV에서는 낯익은 할아버지가 전국노래자랑을 외치고 요란한 음악이 나왔다. 아빠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양손에 밥그릇을 상에 내려놓고 양반다리로 자세를 고쳤다.먹자!

수희는 아빠가 수저를 든 걸 확인하고 수저를 들었다. 생선을 바르려던 아빠 손이 잠깐 멈칫한 동작을 수희는 보지 못했다.

수희야

젓가락을 입에 물고 TV에 시선을 고정한 수희는 아빠의 말도 듣지 못했다.

수희야!

그제서야 아빠를 보았지만 정작 눈에 들어오는 건 공중에 둥둥 떠있는 고등어였다. 고등어가 접시로부터 일어나 수희와 아빠 사이의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고등어가 다시 접시로 내려앉고 원래 위치로 돌아갔을 때 수희의 눈은 아빠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수희야 TV를 끈다고 생각해봐

수희는 우수꽝스러운 노래자랑프로그램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꺼져라!

브라운관이 검은색으로 변하고 소음이 사라졌다. 아빠는 다시 한 번 수희를 부르고 말을 이었다.

우리 가족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것 뿐이다.

수희는 아무말도 못 했다. 아빠는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TV를 키고 생선을 바르기 시작했다.

수희도 아빠를 거들었다.

그때가

초2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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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는 다양한 방법으로 능력을 테스트해봤다. 하지만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안 될 때가 더 많았다. 초2의 초능력 테스트라는 것이 신호등 파란불이 켜져라든지 엘리베이터가 서있어라 전철이 도착해라 공사장 소음을 향해 조용히 해라 정도였다.

사실 그것이 초능력의 힘을 받았는지조차도 애매한 것이 있었다. 그렇게 수희의 초능력 사건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렇다.

가을 수련회가 끝나고 집으로 왔을 때 꺼진TV를 바라보는 동생과 등 뒤로 TV콘센트를 뽑아든 아빠의

손을 목격했던 것이다.

사기였다.




2년 후.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상대하는 대한민국은 박지성에게 약간의 희망을 걸고 있다. 대한민국은 4점을

헌납하고 1점을 만회한 상황. 동네 사람들이 모인 열띤 응원전은 경기가 시작한 후 2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세 번째 실점을 허용했을 때 이미 열기는 식어버렸다. 어른들은 축구보다 맥주나 마시자는

분위기였고, 아이들의 관심은 치킨과 피자였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는 단연 노호였다.

또래에 비해 압도적인 체구인 노호는 덩치를 앞세워 아이들을 괴롭히기를 자랑으로 삼았는데

오늘은 지연이 타깃이었다. 지연은 말수가 적은 피부가 하얀 수희의 단짝 친구이다. 손가락에 묻은

치킨 소스를 지연의 얼굴에 바르거나 피자 토핑을 머리 위에 올려 키득거리며 웃었다. 노호를 따르는 남자애들도 같이 웃었다. 지연의 여린 방어는 노호에게 웃음거리 이상도 아니었다. 지연에게는 아빠도 없었고, 그것을 말리는 어른도 없었다. 그런 지연과 노호를 보며 수희는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아빠 아르헨티나가 어디야?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나라라는 답이 돌아왔을 때 갑자기 노호가 사라졌고 알아챈 사람은 수희와 지연뿐이었다.




며칠 후 노호의 어머니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 상태로 노호~노호야 중얼거리며 헤매는 모습을

봤다. 발바닥이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수희는 무서웠다.

노호가 사라져 엄마는 미치고 아빠는 알코올중독에 걸려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희는 노호가 사라진 것에 자신이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쉽게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죄책감이었고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모든 것이 밝혀진 후 수희는 감옥에 들어가고 알콜중독의

아빠와 미친 사람이 된 엄마, 귀여운 동생이 불량배들과 방황하는 악몽이 수차례나 수희를 괴롭혔다.

어디 갔을까? 노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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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초능력이 있다면 살 것이고 없다면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두발에 힘을 주어 공중에 몸을 맡겼다. 바람이 일어나 머리띠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주차금지 푯말의 그림자 속에 숨었던 나비가 보였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래층 아기가

총총 걸음으로 걷다가 엎어졌다. 사람들이 아기를 향해 달려갔다. 놀이터 나무에 걸린 배드민턴 공을 향해 경비원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아이들이 라켓을 흔들며 응원하고

있었다. 수직 강하 이런 말이구나. 수희는 생각했다. 팔, 다리, 머리카락이 하늘로 향해있고 머리가 점점 바닥으로 기울어지자 엄청난 가속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수희를 받은 건 엄마였다.

수희를 가볍게 받아들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문을 거칠게 열고 칼같은 목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여보!




수희 방으로 아빠가 찾아왔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던 수희는 아빠에게 심술이 나있었다. 이유는 알지만

왜 그래야만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을 때 아빠의 이야기는 덤덤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초능력이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은 하루에 한 번만 가능하고 거리가 3m이내에서만 효과가 있다는 말을 아빠는 이야기를 뱅뱅 돌려가며 말하고 서있었다.

반응은 하지 않았지만 아빠의 이야기에 귀를 세웠다. 부작용에 대해서도 말했다.

하루에 한 번 쓰는 능력을 쓰지 않으면 몸 안에 염분이 뭉쳐 몽우리가 여기저기서 만져진다는 것이었다. 수희는 왼 팔꿈치 아래 몽글몽글한 덩어리를 만지작거렸다. 아빠를 미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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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안에서 일어나는 하루 한 번뿐인 초능력 사용법은 있으나 마나 했다. 귀갓길 혹시나 일어날지도

모를 괴한과의 만남을 대비해 아껴두었던 초능력을 잠자리에 누워 형광등을 끈다던가 라디오 채널을

돌린다던가 스마트폰을 순간 충전 시키는 일이 대부분이다. 몸이 아주 지친 날에는 깜빡 잊고 잠들어

버리는 일도 흔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며 하루의 피고를 달랜다. 포털의 메인 기사는 한국계 아르헨티나 축구스타 마르크스 노호의 레알마드리드 이적 소식이다. 세간의 관심도 메시를 잊는 한국계 슈퍼스타 마르크스 노호의 이야기 뿐이였다. 그가 누군지 수희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노호 사건 이후 수희에게 축구는 트라우마였다. 그보다 눈두덩이, 목덜미, 장딴지에 봉긋한 몽우리가 잡혀 신경 쓰였을 뿐이었다.



수희는 문화재단에서 일한다.

재단업무 특성상 촉박을 다투는 일은 없다. 일은 느긋하나 지루했다. 사람은 많고 그만큼 다양했다.

심형은 가장 엉뚱했고 괴이했다. 매일 병원을 다니고 매일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매일 짜증을 부린다 그 짜증이 수희에게 닿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초능력을 써 골탕을 먹이기도 했다.

심형의 액셀 데이터를 날려버릴 때도있고, 복사기를 고장 내 그 앞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손을 깨끗하게 닦고 로션을 꼼꼼하게 바르고 의자에 등을 바짝 기대어 준비한 커피를 마시며 심형이

허둥거릴 타이밍을 기다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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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지구불시착에 가는 날이다.

오늘은 심형의 짜증도 없었다 복수도 없었다.

따라서 아직 능력을 쓰지 않았다. 월곡역 막 들어설 때였다 모두가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었고 수희 역시 인스타에 최근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진을 찾았다. 빨간 매니큐어를 가진 가느다란 손가락은 스마트폰

갤러리를 검색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액정 위를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때 액정 위로 비친 무언가를 보았다. 반들반들한 아이폰 액정에 반사된 지하철 손잡이였다. 홀린 듯 고개를 들자 열차에

흐름에 맡게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리는 지하철 손잡이가 보였다. 다른 손잡이의 리듬과 달리

관성의 법칙을 비웃듯 유일하게 반대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는 빨간 손잡이. 수희는 단번에 알아봤다.

초능력이다. 전철 안에는 빨간 손잡이를 응시하는 사람이 수희 말고 한 사람 더 있었다. 깡마른 체형,

날선 콧날, 하얀 피부, 수북한 생머리, 몸에 밴 듯한 놈코어 스타일의 그는 중지 손가락으로 왼쪽 귓 볼에 마우스 볼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오늘 몽우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수희는 초능력에 관한

아빠의 마지막 조언이 떠올랐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만나게 돼있다.

라는 아빠의 말씀을.




끝.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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