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I am spring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봄, I am spring





바람이 좋다. 햇살이 곱다. 겨울은 너무 춥고 길다. 여름은 숨이 막힌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은 7일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짧다. 가을은 없다. 세상은 변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들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다. 약간 더 치열해졌다. 그들의 삶이 바뀌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다. 모두 조금씩 달라진다. 그녀는 특히 그랬다. 우리는 아직도 땀을 흘려야 하고, 세금을 내야 하고, 책을 읽어야 했다. 맥주가 필요하고, 커피가 필요했다. 대체로 불황이었고 우울했지만 몇몇이 모이면 시끌벅적 떠들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끝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녀의 이야기가 나왔다. 봄이 오면 특히. 모두가 그리워했다. 겨울 동면을 즐기던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겨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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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한 마을에서의 집단 자살은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었다. 이 집단 자살 사건은 빠른 속도로 퍼지었고 유행처럼 번졌다. 일본과 영국의 자살이 높았고 중국의 몇몇 도시는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변해버렸다고 했다. 서울도 우울증의 파도를 빗겨나지는 못했다. 각국의 정상들은 스위스 제네바로 도착했다. WHO 세계보건기구는 인류의 재앙에 대해 촉을 세우고 있었다. 우울증을 막을 방안을 다방면으로 검토하였으나 최종으로 결정된 건 로봇프로젝트였다. 지식과 성품, 미소, 웃음, 목소리, 마음, 호감도를 엄격하게 분석하여 선택된 최적의 인물을 기반으로 한 로봇 개발. 그것만이 의지가 약해진 인류의 희망 감성을 찾아주기 위한 인류 최후의 프로젝트였다. 기술력은 충분했다. 당시 로봇 분야의 선두는 세계적 기업 구글과 평택의 중소기업 영실 미래연구소였다. 구글과 영실 미래연구소는 로봇 공동 개발을 선언했다. 개발에 앞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표준모델 발굴이 관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구글은 압도적인 데이터로 위스콘신의 글로리아 골드,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선옥, 스웨덴 에테보리의 요하네스 욘욘슨을 후보로 선정했다. 최종으로 선발된 것은 선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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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봄이 끝나가는데도 그녀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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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의 영실 미래연구소가 선옥의 DNA를 가진 로봇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세계의 전폭적인 지지와 인간계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결과 프로젝트의 개발 속도는 엄청났다. 그 해 겨울 단백질을 입힌 SO1이 탄생했다. 로봇 효과는 성공적이었다. 곳곳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선옥의 웃음과 미소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선옥을 아는 사람은 마치 그녀가 옆에 있는 듯한 착각할 정도라고 말했다. SO1의 보급을 위해 생산설비는 풀가동이었다. 우울증은 극감했고 자살률도 원상태로 돌아왔다. 동네에 활기가 넘쳤다. 모두가 SO1동반산책을 했다. 식사할 때 SO1을 앞에 앉히기도 했다. 어떤 식당과 카페는 SO1을 대량으로 구입해 자리마다 배치해 두는 곳도 생겼는데 그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세 번째 봄이 돌아왔다. 그녀가 사라진 3년. 이제는 아무도 그녀의 부재를 묻지 않는다. 사람들은 처음 몇 개월은 그녀의 실종에 무덤덤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다시 마을에 나타나 활기를 보테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그녀의 웃음소리가 그립다 했다. 소녀 미소가 보고 싶다고 했다. 계절이 지나도 보이지 않자 그녀의 부재는 마을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없다. 전화도 문자도 그 어떤 SNS도 부재에 대한 힌트는 없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또 바뀌고 점차 마을은 그녀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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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WHO는 이를 공로하여 공릉동에 SO1의 초대형 동상을 건립하려 했지만, 주민들은 동상대신 공원을 원했다. 이를 받아들여 공원 조성을 약속했다. 공원의 이름은 이서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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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날씨의 폭주에 적응하는 방법은 카페가 유일했다. 카페는 인간이 지내기에 알맞은 온도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 온도를 팔고 커피와 맥주, 책은 서브 메뉴일 뿐이다. 이 공원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은 너무 많다. 마지막주 토요일 열렸던 플리마켓에 우리는 중고도서를 들고 나갔다. 그녀는 커다란 트렁크에 책을 가득 담아 왔는데 그녀의 책은 인기가 많았다. 그 트렁크는 아직 *지구불시착에 그대로 있다. 한 번은 공원에서 보드를 타다 넘어져 크게 웃음을 산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큰 소리로 웃었던 사람이 그녀였다. 욕이 나올 정도로 얄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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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SO1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 일어났고 종종 일어났다.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했다. 로봇의 시스템 오류라 생각하고 수리를 요구했다. 그것뿐이 아니였다.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 제보는 유튜브 조회 수 톱을 찍었다. 밤새 휴대폰에 집중하고, 외출을 귀찮아한다는 것과 점점 불평과 잔소리가 많아진다는 제보도 끊이지 않았다. 날씨에 약하다는 문제도 있었다. 제조사 측에서는 아무런 오류를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업그레이드 버전인 SO2가 개발 중 이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다려 주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기다립니다. 포기할 수 없죠." 그녀를 기억하는 손님이 찾아와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 오랜만에 그녀의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칭찬을 아낌없이 주고 구박이 무한대라는 말에 다소 의야 한 표정을 지으며 그분이 구박도 하냐고 물었다. 구박에 얽힌 에피소드를 시작했다. 배를 움켜쥐고 눈물이 닦아가며 웃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싫지 않았나요?" "싫었냐고요? 좋은 분이셨어요. 그분의 아이디는 I am spring에요. 봄을 좋아하셨죠. 봄은 많은 정서를 가지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spring이란 말은 용수철의 의미도 있어요. 용수철은 공업 물의 심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봄과 용수철이 한 단어라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요?" 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모습이 있을 겁니다. 그분이 무엇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어디에 계시든 어떻습니까. 우리는 모두 좋아합니다." " 그분은 어디에 계실까요?" "글쎄요" "다시 돌아올까요?" "글쎄요. 때가 되면 돌아오지 않을까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활짝 웃으시며"


*지구불시착 -공릉동 동네책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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