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시계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할아버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조그만 목조시계가 있었다. 그 목조시계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했던 꼬마는 언제나 하던 것처럼 시계를 들자마자 벽을 향해 힘껏 던졌다. 벽에 튕겨 나간 시계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 시계는 비크가 샤를 5세를 위하여 만든 기계시계보다 오랜된 시계였다. 말하자면 그 목조시계는 현존하는 모든 시계의 조상이었다. 바로 그 시계가 부서져 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세상의 시간이 멈춰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멈춰버렸다고 해서,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자동차가 멈추던가, 커피를 마시다 그대로 굳어버리거나, 날아다니는 새가 제자리에 떠 있거나, 쫓고 쫓기던 개와 암탉이 정지화면처럼 멈춰버리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꼬마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깔깔거리며 마구 집어던졌고 우리들은 늘 하던 데로 움직일 수 있었다. 시간이 사라져도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있거나 하지 않았다. 시간이 사라져 버렸기에 약속과 규칙을 정하기가 곤란해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그렇게 되어 진짜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듯 세상은 2종류의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기율과 규칙이 필요하다는 그룹과 억압받기 싫고 자유를 중시하는 그룹. 그래도 살아가는 데는 큰 지장이 있거나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

IT로 유명한 모삼성 전자회사에서 휴대폰에 새로운 시간개념 ‘때’를 발표했다. 이는 ‘몇 시 몇 분’이라는 식의 시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때’를 나타내는 것으로 밥 먹을 시간이 되면 휴대폰에 ‘밥 먹을 때’라고 나타나고, 퇴근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고 ‘퇴근할 때’라고 쓰이자마자 짐을 싸 들고 퇴근했다. 졸리면 휴대폰을 바라보고 역시 액정에 ‘잠잘 때’라고 표시되길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잠이 들었다. 이 혁신적인 휴대폰을 반기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기율과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고 세계의 주요 국가에서는 ‘때’를 공식 시간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 그리고 독일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법적으로 ‘때’의 사용을 선포했다. 반대로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휴대폰 사용거부 시위를 벌였고 남미와 호주 프랑스 등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때’의 사용을 거부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세계의 흐름은 점차 ‘때’의 사용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던 중 모삼성 전자회사의 라이벌인 역시 IT로 유명한 모LG 전자회사에서 ‘때’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개념의 ‘즈음’을 발표했다. 휴대폰에 ‘뭐~할 즈음’이라고 문자를 확인하면 사람들은 주변의 상황에 적합한 행동 시기를 결정하면 되었다. 이에 뒤질세라 모삼성 전자회사에서는 ‘예정’을 발표했다.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예정’은 ‘때’와 함께 사용되어 우리 생활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비가 올 예정’ 그리고 곧 ‘우산을 준비해야 할 때’하는 식이다. 심지어는 ‘강도를 만날 예정’ ‘자리를 이동해야 할 때’라고 하면 자리를 이동하면 강도를 만날 일은 없다. 전자회사들은 앞다투어 ‘경우’ ‘다면’ ‘지금이다’ ‘기다려’ ‘진심이다’ ‘거짓이다’ 등등. 휴대폰의 업그레이드는 가속화되고, 반면 휴대폰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전자업체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휴대폰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더 이상 들고 다닐 수 없게 되고 전자회사는 휴대폰을 인간의 뇌 속에 탑재 가능할 만큼의 기술을 가지게 되고 곧 상용화 됐다. 거의 모든 사람은 뇌 속에 작은 반도체를 넣기 시작했다. 부자들은 앞다투어 더 성능 좋은 반도체를 뇌에 투입하기를 바랐고 새로운 서비스가 개설될 때마다 업그레이드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현재의 반도체에 만족하며 살아야 했다. 따라서 빈부의 격차도 극심하게 양극화 됐다. 부자들은 엄청난 성능의 뇌를 자식들에게 상속을 약속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부자들의 뇌를 갈라 반도체를 빼앗는 이들도 생기고 그 반도체를 사들이는 단체도 있었다. 우리가 살던 세상은 더 이상 살만한 세상이 아니었다. 몇몇 양심적인 지도자들은 스스로 반도체를 빼내며 뇌 속의 반도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전자회사의 개발제한에 대한 소송을 걸기도 했지만 언제나 기각당했다. 그들의 반도체 지식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른바 전자회사 습격 사건이 발생한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전자회사를 습격해 모든 전산시스템을 마비시켰다. 더는 사람들의 뇌 속 반도체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모두가 보통의 사람들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원상 복귀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할아버지가 어디선가 부서진 나뭇조각을 모으더니 작은 목조시계를 완성한다. 죽어있던 시계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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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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