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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ug 13. 2020

함부로 아끼는 것

by 수연

 함부로 아끼는 것


 많은 사람들은 소중한 사물을 갖고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사물을 소유하기도 한다. 나는 몇 사물을 애틋해하지만 대체로 소중히 여기진 못한다. 물욕도 없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도 없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가지게 되는 사물들이 많았고, 어쩌다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저렴한 것들이라 고민 없이 사들이곤 했다. 그러다보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없는 줄 알고 또 사고, 찾으면 없거나 이미 있는 것들은 먼지가 쌓여 볼품없어지곤 했다. 어쩌면 건들이지 않는 것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일만큼, 나의 사물들은 공간과 마음을 지저분하게 했다. 처분, 정리는 어려워서 ‘되도록 소비하진 말자’며 어설픈 미니멀라이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소비를 멀리하기로 결심하니, 필요와 기호까지도 억제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거나, ‘작동만 되면 마련할 필요가 없다.’ 같은. 포장하는 말은 좋지만 몇 사람들은 나를 보며 속터진다고 한다. 아직 유선이어폰을 쓰는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으면 그냥 듣는다. 그러다가 두 쪽이 안들리면 아예 음악을 듣지 않는다. 혹은, 역시 유선마우스를 쓰는데 어느날 휠이 되지 않는다. 마우스 꽂기 귀찮은데 잘 됐다 싶어 노트북 터치마우스로 갈아타 검지손가락을 열심히 적응시켰다. 비효율적인 생활을 하다보니 점점 귀찮음도 커져갔다. 뭐가 필요한지를 잊고 미루다가 꼭 필요할 때 낭패를 보기도 하고, 왠만한걸 고치지 않고 확인하지 않다가 스스로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참 좋지 않은 습관을 이룬 듯 하나, 누가 뭐라하면 “나는 수고스러운 걸 즐겨”라며 헛소리를 하곤 하였다. 그러나 나도 알고 있다. 나의 공간과 사물만큼이나 내 본체도 고장나고 있다는 것을.


 얼마전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는 다시 ‘기분 좋게 사도 되는 것’을 선정하였다. 그것은 꼭 필요한, 또 정말 즐길 수 있는 수고스러운 것이며 내 기분을 좋게할 수 있는 것이다. 펜이다. 역시 내 손에만 들어오면 없어지는 펜. 분명히 샀는데 필요한 순간에 없고 뜻밖의 곳에서 발견되곤 하는 펜. 그러니 이 또한 낭비와 후회의 사물이지만, 오히려 이것으로 나를 고쳐보기로 하였다. 펜을 주로 들고 다니지만, 언제나처럼 없어지거나 두고 왔을 때 사기로 한다. 사기로 하는 펜은 귀여운 캐릭터가 있고, 굵기가 얇고 선명한 젤펜으로 오래 사용하진 못해도 된다. 금방 다 쓰니 다 쓸 때 쯤 사둔 펜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찾을 때 귀여우면 기분이 좋고 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펜은 꼭 필요한 메모를 위해 쓰이기도 하지만 주로 편지글이나 일기에 쓰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수고스럽고 즐거운 일이니 의미도 다 하였다. 내가 현재 함부로 아낄 수 있는 이 유일한 사물이 나를 천천히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by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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