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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ug 18. 2020

지구를 들어라

헐크



 나의 피겨 삼대장 중 하나인 헐크. 양팔과 몸통 머리 4조각으로 분리되는 조립형 완구이다. 구입처가 서촌인지 연남동 어딘가 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촌이 유력하다. 기억이 헐거운 이유는 10여 년을 훌쩍 넘은 세월을 지나 무엇을 주력으로 파는 상점이었는지 기억이 99% 지워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름이었고 백팩을 메고 있었고 혼자가 아니었고 동행했던 사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최대한 당시의 상황에 접근을 시도해 본다.  가게에는 물건이 많지 않았고, 1,000원짜리 3장을 지불했고 상자를 들고나왔고 메고 있던 가방의 한쪽 어깨를 풀어 앞쪽으로 돌린 후 상자를 가방에 담았다. 그 상자에는 헐크가 있었다. 바로 지금의 헐크이다. 어벤져스의 활약으로 헐크 몸값은 상당히 올랐다 치더라도 이 헐크는 어벤져스보다 이전의 헐크였던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난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부러 사 모으는 취미 같은 것도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헐크를 샀고 그와 함께 10년을 넘게 지내온 것이다. 보라색 팬츠를 입고 몸 색깔은 초록이 아닌 올리브그린과 카키 중간쯤이고 머리는 까맣다. 얼굴은 조각이 아니고 헐크 특유의 화난 표정이 레고 캐릭터의 얼굴처럼 조잡한 페인팅으로 그려져 있다. 한껏 부풀어 오른 승모근과 수직 회전하는 양팔의 조화가 절묘함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도 넓은 발바닥으로 지면을 밟고 서 있는 밸런스가 일품이다. 나는 무언가에 기대야만 한다던가, 중심이 없어 뒤뚱거린다든가 하는 것에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탁 놓으면 탁 서는 쾌감. 이 부분에서 헐크는 나디아 코마네치의 슈퍼 착지를 연상해도 무방하다. 안정감의 카타르시스. 가만히 서 있기만 한 헐크로부터 얻는 치유의 마법이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끼는 물건 중 하나를 집어와 모니터 아래 세워두는 조그마한 습관이 있다.  헐크가 1번이고 BMW 미니 오픈카가 2번, 장위동 플리마켓에서 3,000원에 사 온 자그마한 프랑스 병사 피겨가 3번이다. 이들이 애정을 주고 심리적 안정감을 받는 나의 피겨 삼대장이다. 내일 모니터 앞에서 어떤 아이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직장인의 출근 콤플렉스 예방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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