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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Dec 02. 2020

언컨택트의 밤




 하던 일을 멈췄다. 우리는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켰다. 몇몇은 짜증이 나 있었다. 아마추어의 사진은 대개 핀이 맞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구글 사이트에서 사진을 다운받아 왔다. 이런 사진은 인쇄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해 주려다 말았다. 연수는 키보드를 톡톡 쳤다. 그건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아니 무슨 사람들이 집에 갈 생각을 안 하지? 벌써 12시가 다 돼 가네. 하는 순간 창밖으로 막차가 붕 하며 지나가 버렸다. 오늘도 여기서 자야 한다는 생각에 키보드를 더욱더 격하게 두드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 주임의 눈짓으로 알게 되었다. 일은 진척이 없는데 보고서는 다음 주까지 나와야 한다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내일 다시 모이자고 했다. 이들은 왜 이토록 회의를 즐기는 건지 모르겠다. 회의가 끝나면 다음 회의를 만드는 이 모임에 심드렁해진 상태이다. 어차피 연수는 발언 횟수도 제일 적었다. 사람들도 그것을 아는 듯 평소 나의 참여 여부에는 관심 없었지만, 정작 보고서 편집이던가 포스터 디자인이 필요할 때면 나를 놓아두지 않았다. 연말이면 유독 회의가 늘어지고 보고서가 많으며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사람들이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기간이다. 하지만 연수도 싫어하는 것만은 아니다. 연수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열정이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그들은 종종 연수를 타박한다. 그것은 관심이고 응원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연수는 모르지 않는다. 은근히 그 타박을 즐기는 면도 있다. 관심 좀 부탁합니다와 같은 뜻으로.


 연수는 동네 책방 언컨택트를 운영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사진작가, 편집자, 그리고 카페 바리스타이다. 대체로 조용히 세상을 관망하고 살아왔다. 또 그것이 좋아 언컨택트라는 이름의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라던가 사회적 거리를 염두에 둔 이름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지금 사소한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에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이다. 창밖으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책방은 대로변이라 이곳에 길고양이는 낯설지만 난 무슨 환상을 본 것 같아 입을 벌리고 멍하게 창밖으로 시선을 유지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의견을 모였고 결국 내일 다시 모이자며 주섬주섬 서류철을 거두어 드렸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책방은 다시 언컨택트의 명성대로 나만의 시간이 됐다. 소파에 누워 백열전구를 바라보았다. 연수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노란 불빛과 그림자는 경계를 만들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스며들 것 같은 빛은 낮은 곳으로 향하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연수는 지금 그 그림자를 안고 누워 카메라 있는 위치를 바라보았다. 카메라 역시 그의 그림자와 나란히 맞닿아 있었다. 편안해 보였다. 내일은 저 카메라를 들고 무슨 나무인지를 찍으러 가야 한다. 그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소리도 없다. 이 상태로 계속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갑자기 땅 밑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아주 미세하게 전구가 흔들리고 그림자를 소유한 모든 것들이 일제히 일어났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마지막 전철이 떠나간 것이다.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어디선가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좀 전의 고양이를 떠올리며 창밖을 봤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낙엽만 수북하게 내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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