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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11. 2021

여기는 지구불시착.

여기는 지구불시착.


지구불시착이 벌써 5년이 넘었다.  회사가 더는 회사가 아니고 돈줄이 막혔을 때 막막했는데, 정말 기가 막힌 몇 번의 우연으로 책방을 하게 됐다. 돌이켜보니 난 철이 모자랐던 건 확실해. 그렇지만 오히려 생각이 깊었더라면 계산만 하고 있었겠지. 다행이야. 위기는 재능을 발굴해주나 봐. 내가 그림을 그리고, 나에게 그림을 배우는 사람이 있고, 내가 그림책을 만들 줄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일들이야. 이처럼 책방은 매일매일 기적이다. 손님이 너무 없어 걱정이긴 해도 이제는 조금 이력이 붙었나 봐. 책 판매에는 피타고라스도 울다 갈 기가 막힌 평균 법칙이 있거든. 오늘 하나도 못 팔면 내일? 내일모레? 에는 엄청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손님이 와. 오늘 많이 팔린다면 내일은 아무도 안 올 거로 생각해두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져. 하루하루에 목숨 걸 일은 아니더라고. 오늘 강릉에 새로 생긴 책방하고 메일을 주고받는데, 전통 있는 책방으로서 새로운 동료에게 번드르르한 말을 했잖니. 책방은 당연히 힘듭니다. 그렇지만 좋습니다. 어떤 때는 손님이 없어도 다 가진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라고 썼는데 이거 너무 오버한 거지? 지금 생각하니 무책임 한 말을 한 것 같아. 나는 그래 매일 오버하고 매일 후회해. 그건 변하는 게 아닌가 봐. 대책은 세우지도 않으면서 걱정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 다행히 책방에 오는 사람은 다 너무 좋아. 그 사람들은 내가 모자란 걸 너무 잘 알아서 내 실수를 좋아해. 동네 책방! 그거 뭔데 좋은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 그래서 책방도 여기저기 계속 태어나고 있어. 무슨 현상처럼. 난 이 현상이 좋아. 이번에도 지구불시착은 새로운 일을 벌였다. 라디오 생방송을 시작한다고 선언했지. 나에게 선언은 너무 중요해. 말해두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가 없어. 일부러 할 거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언제 하는 거냐고 재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 약았지. 오늘은 너무 손님이 없어서 유튜브를 봤다. 그냥 틀어 놓고만 있지만. 계속 뭔가 할 일을 찾다가 결국 체스까지 하게 됐다. 체스는 요즘 나의 일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도 말이야 결국 그것을 했다. 책은 재미없어서 못 읽겠다며. 그림은 머리가 복잡해 못 그린다며. 재미도 없고 머리도 복잡하며 가장 쓸데없는 체스를 했단다. 오늘을 이렇게 의미 없이 보낼 수 없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언제나 그렇지만 너의 안부는 묻지 않고 일방적인 나의 할 말만 하는 것으로.  




by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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